날짜
1992년 12월 20일
토론자
원택스님/해인사 총무스님
종림스님/장경 연구소 추진위원
박상국/문화부 문화재 전문위원
사회
도각스님/월간 해인 편집장
신년 특집 토론/팔만대장경의 보존과 연구 과제에 대하여
원택스님(해인사 총무)
도각 추운 날씨인데도 멀리서 오셔서 이렇게 토론에 참석해 주신 것에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토론하고자 하는 주제는 팔만대장경의 보존과 연구 과제에 대하여”입니다. 고려 팔만대장경은 대승 불교권에서 만들어진 여러 경전 가운데 체제나 보존의 완벽성에서 가장 뛰어난 장경으로서 우리 불교의 자랑스런 성보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팔만대장경에 대한 인식은 신앙적인 차원에서의 장경수호 불사나 문화재 관람의 차원에 머무른 감이 없지 않습니다. 이러한 원인은 장경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수행하려는 우리의 의지가 부족한 데 있지 않나 보입니다. 다행히 근자에 경판의 과학적인 보존에 대한 연구와 장경을 전산 입력하여 불교 연구의 새로운 장을 개척하려는 노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오늘 토론은 팔만대장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깊이 있게 논의해 보는 자리로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면 먼저 팔만대장경의 신앙적이며 역사적인 의의를 당시 고려사회의 여러 가지 상황을 중심으로 말씀하였으면 합니다.
고려대장경의 역사적 의미에 대하여
원택 고려대장경이 만들어진 직접적인 동기는 몽고군의 침략을 받아 누란의 위기에 처한 고려국의 국난을 장경을 새김으로써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극복하고자 한 염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당시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여 전체국민의 정신적인 의지처로 삼았고, 나라의 많은 부분을 불교 가치나 윤리로 꾸려 나가던 시기입니다. 이때 세계적인 대제국을 건설한 몽고의 침략을 받아 강산은 황폐화되고 민생은 도탄에 빠져서, 어떻게 해서든지 국민 정신을 한곳에 모아 몽고의 침략을 물리치고. 국난을 극복해야 하는 절박한 처지였지요. 특히 이때 국가적 사업으로 완성시켰던 초조대장경이 전란의 와중에 소실되자 이를 복원하는 일도 절실했겠지요. 당시 무신정권의 수장이었던 최우는 강화도 천도 후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장경 주조의 불사를 일으켰습니다. 전란의 와중에서 십육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8,1340장이라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규모가 방대한 대장경판을 만들어 냈습니다. 오늘날의 기술로도 이러한 규모로 장경판을 주조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데, 어떤 위대한 힘이 있어서 이러한 불사를 완성할 수 있었는지 경외로울 뿐입니다. 또 세계적인 장경을 보유한다는 국민의 자긍심도 대단했을 거라고 봅니다. 이것은 불교를
숭상하는 국민의 일치 단결된 마음이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겠지요.
이러한 대장경의 완성은 다양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비록 강화조약으로 끝나긴 했지만 몽고와의 전쟁을 끝낼 수 있었고, 특히 인쇄 기술의 발달을 가져와서. 인쇄 문화의 꽃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종림 최근에 일부에서 대장경을 만든 동기에 대하여 새로운 주장을 하는 일군의 학자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외적의 침입을 불심을 통하여 극복하려는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최씨 무신정권의 옹호를 위하여 만들었다는 사회학적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입니다.
원택 그 주장은 아마 장경 보존 연구회의 일차 세미나에서 허흥식 교수가 제기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대장경을 만드는 일이 몽고 침략을 물리치고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국민의 정신적 집약책이 아니라, 당시의 집권 세력인 최씨 무신정권이 자기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 이반된 민심을 끌어모을 방법으로 불에 타서 없어진 대장경의 주조를 서둘게 되었다는 주장을 했지요.
스님들이 순진하게 고집하는 신앙적인 차원은 절대 아니라고 해서 논란이 많았지요.
박상국 저는 먼저 그러한 주장을 하는 학자들이 갖고 있는 대장경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부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장경의 주조를 초조대장경-속장경-고려대장경의 순으로 말하는데, 이러한 분류에는 커다란 오류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속장경에 대한 오해가 많은데, 속장경은 대각국사 의천이 정장에 들어있지 않은 삼장 연구의 소,초 등을 모아 집대성한
것이지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말하자면 연대순의 주조가 아니라 초조장경에 빠진 부분과 당시 고려 사회의 여러 가지 정보와 함께 보완한 것입니다. 이렇게 장경 주조에 대해서 철저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 새로운 사회적 배경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문경현 교수의 주장은, 당시 몽고병은 경상도의 중심에 있던 부인사까지 내려오지 않았으므로, 초조장경의 소실은 당시백성의 약탈이나 최우 군대와 승병의 싸움 중에 불탔고, 최우가 고종을 위협해서 무신정권의 유지를 위해 대장경을 주조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설은 소설로서의 가치는 있어도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것이 성립되기 위한 역사적인 증거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종림 앞으로 장경 주조의 사회적인 배경을 더 연구할 필요가 있고, 당시 불교 내부의 대응 양식이 어떠했는지도 궁금한 사항입니다. 당시 불교의 큰 흐름인 선종과 교종의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다를 것이고, 정치, 경제. 문화 등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불교가 장경 주조에 얼마쯤 영향을 주었는 가하는 점입니다. 불사의 비용을 충당하거나 장경을 정리하는 수준인가 아니면 당시 각수(刻手)의 역할도 스님들이 맡았는가 하는 것을 대장도감의 인적, 물적 편재를 살피면서 말씀했으면 합니다.
원택 그 점은 근자에 박상국 씨가 기존의 학설을 뒤집고 판각의 장소가 강화의 선원사가 아니고 남해의 분사도감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연결시켜 논의하면 좋을 듯 싶습니다.
박상국 먼저 장경 주조를 담당했던 대장도감과 분사대장도감의 성격과 위치를 고증하고 그것의 역할을 검토해 보는 수준에서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1233년(고종 20넌)에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1236년까지 사전 준비 기간을 거쳐 1237년부터 십이 년 동안 장경을 주조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대장도감은 실질적인 판각 주조의 임무를 가졌다기보다는 최우를 정점으로 한 무신중앙 권력이 장경 주조를 지원하기 위한 행정 동원 체제였고, 남해에 있던 분사대장도감이 실제로 판각의 작업을 했다고 봅니다. 분사도감이 남해에 설치된 동기도 당시 진주목이 최우의 식읍지여서 인력과 재정 동원이 용이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판 재료의 조달을 쉽게 하자는 뜻도 있었겠지요 처음엔 강화 선원사에 대장도감을 두고 장경을 판각하다가 뒤이어 남해 분사도감에서 작업했다는 기존 학설은 수정되어야 합니다. 최우는 자기 집권의 지지 기반으로 교종 승려보다 선종 승려를 선택하여 송광사의 수선사와 강화의 선원사에 선종 승려를 상주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소외된 교종 승려를 중심으로 장경판각의 임무를 주어 권력 운용의 묘를 살려 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분사도감에서는 수기(守其)를 중심으로 교종 승려가 대장경을 수집 정리하여 편집하고 필사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판각작업도 사간 장경을 만든 기술을 소유하고 있던 전국의 교종 승려를 동원해서 했습니다. 선종 승려가 상주하는 선원사에 장경 작업을 맡았던 교종 승려가 살면서 일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밖에 많은 역사적인 전거로 보아 선원사가 장경을 판각한 장소가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도각 한문문화권에 많은대장경이 있는데, 최초의 대장경인 송의 촉판 장경과 이후 거란 장경 등에 비추어 고려 대장경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봅니다. 고려대장경에 차지하는 불교사적 의미를 점검해 보고 다음 토론으로 넘어갔으면 합니다.
박상국 송 태조가 시작해서 그의 아들들이 완성시킨 대장경이 송의 촉판 장경입니다. 이 장경이 판각으로 만들어져 인쇄 기능을 가지고 집대성된 세계 최초의 대장경입니다. 이전까지의 장경은 필사본이었지요. 이로써 장경 유통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고려가 불과 이십 년 뒤에 초조장경을 만들었데, 이 장경 판각은 굉장한 사건입니다. 당시의 국제 질서는 송나라가 세계 문화의 중심이 되어 최첨단의 문화를 창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방의 작은 나라 고려에서 중국에 뒤지지 않는 장경 불사를 한다는 것은 경이적인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것이 가능했단 것은 국교로서 불교의 위치가 절대적이라는 점 말고도 인쇄술이 중국보다 뛰어났고 다양한 방면에서 문화 수준이 높았기 때문일 겁니다.
이렇게 해서 고려의 초조장경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만들어졌고, 그 다음 거란장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종존판이라 해서 고려장경을 모본으로 장경을 만들기도 했지만 중도에서 포기했습니다. 그 뒤 천해본이라는 나무활자의 장경을 만들기도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송판 이후 북송의 동선사판, 개원사판, 원각사판 들을 조판하게 되어 한역 대장경의 수는 스물 다섯 종 가량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판은 대부분 유실되고 고려대장경만이 현존하는 유일한 판본인 셈입니다. 편집, 판각, 보존의 우수성은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것이지요
경판 보존의 대책은 무엇인가
도각 지금까지 경판보존의 방법은 삼재가 침입하지 못한다는 신화적인 의미의 보존과 자연환경을 적절하게 이용한 보존방법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근자엔 이러한 보존의 한계를 인식하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보존에 완벽을 기하려고 하는 노력이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장경 보존에 어떤 문제가 있었고, 또 앞으로의 대책은 무엇인지 짚어 주셨으면 합니다.
원택 오늘날 경판을 모시는 우리 압장은, 고려 시대와 같은 방대한 규모의 불사는 하지 못하지만 보존만은 잘하여 후세에 부끄러움 없이 물려준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도 부패하고 마모되기 쉬운 경판이 수백 년 세월 동안 육안으로 보기에 별 문제 없이 보존되고 있다는 데 경탄하게 됩니다. 그리고 분명히 어떤 신비한 힘이 작용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다는 경외감을 갖게 됩니다. 지금까지 장경 보존을 위한 활동은 1987년에 ‘고려 팔만대장경 보존 연구회”를 발족시켜 자료집 두 권을 간행했고 연구 세미나, 이운의 길 답사 등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경판의 상태를 면밀하게 점검하고 체계적으로 보존 보수하는 대책은 재원과 전문 인력의 부족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림 지금까지 보존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로 나타났다고 봅니다. 현재 있는 자리에서 해충의 피해나 자연 마모, 습기에 의한 부패 등을 방지하지는 것과 새로이 장경각을 지어 첨단 과학을 동원하여 보존하자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기서 새로이 장격각을 지어 보존하는 방법은 전쟁이나 화재 등의‘ 대규모 사고에 대해서는 안전할 수 있지만, 실제 경판의 보존에는 실패했지요.
원택 작년부터 경판 보존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알기 위한 연구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결과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보존 방법엔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자연적인 보존 방법 외엔 규칙적인 인경 작업을 통해서 경판을 보존해 왔습니다. 인경을 할 때마다 여러 해 쌓인 먼지를 털어 내고 옻칠을 하거나 소금물을 발라서 해충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했지요. 그렇다고 이러한 보존 방법이 완전한 것은 아니기에 보수, 보존 처리, 소방 시설, 보안 장치 등의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것은 사찰 측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부당국의 적극적인 협력이 있어야합니다.
박상국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동의하지만, 문화재관리국의 입장은 아직 정리되어 있지 않습다. 정부의 지원을 끌어내려면 설득력 있는 대안 마련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지금 경판의 전체 상태가 어떠한지, 판에 곰팡이가 핀 것은 없는지, 마구리가 빠진 것이나 부식 마모의 정도는 얼마나 되었는지
등 종합적인 실태 파악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또 인경을 통한 보존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이러한 인경도 면밀한 조사 분석을 통하여 과학적인 보존 처리를 마치고 해야 할 일입니다.
원택 지난 조사과정은 경판과 판고의 문제점을 아는 것과 온도와 습도 상태, 소방과 보안 대책, 장경각 외부 건물과 배수구 문제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았습니다. 경판 상태에 대한 문제점은 대부분의 경판이 먹과 먼지에 덮혀 있고, 재질의 변화로 마모된 것과 스폰지 현상, 마구리의 부식으로 녹이 경판에 스며든 것, 경판에 옻칠이 벗겨진 것 등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었고, 온도와 습도의 상황도 곰팡이와 해충이 번식하기 쉬운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장격각의 규모가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에 전체 상태를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국간장경보단 사간장경의 보존 상태가 매우 열악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개인의 원력으로는 불가능하므로 이 일을 전담할 연구소를 설립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체적인 현황 파악을 위해서 관계 기관, 학자, 사중스님, 보존 과학자등으로 구성된 공동조사팀을 꾸리는 일과 보좀 문제를 전담 할 전문 인력의 양성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근자에 정부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예산지원도하고 있고, 해인사 사중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예산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박상국 저는 지금까지 해인사를 다니면서 느낀 점은 스님들이 대장경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해인사에서 수행은 모든 것이 대장경을 중심으로 짜여지고 실천해야 하지 싶은데 그렇지가 못하더군요. 장경각 안내만 해도 스님들이 벌써 해야 할 일인데도 요즈음은 처사님이 하고 있는 것 같아 이해하기 어렵더군요. 장경수호 불사의 수익금도 이제는 장경의 보존과 연구에 쓰여야 한다고 봅니다. 이렇게 사중 방침이 세워지고 지속적으로 실천될 때 정부의 지원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경 전산화 작업의 의의
도각 잘 아는 대로 불교학 연구의 기본이 되는 일본의 신수대장경은 고려대장경을 모본으로 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이로써 고려장경의 찬란한 위치를 신수 장경에 넘겨주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고려장경을 성보나 문화재로만 한정시켜 보교‘근대적 의미의 연구를 게을리 한 것은 우리 책임입니다. 이제는 경판 보존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과 더불어 장경 연구 작업도 시급히 해내야 할 불사가 아닌가 합니다.
종림 저는 고려장경의 전산화 작업은 역사적인 유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의미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우리 불교계의 잃어버린 꿈들 가운데 하나가 고려 장경의 한글화입니다. 이 일이 실패하게 된 것은 고려장경의 현실적인 이용도를 높이는 방안이 없었기 때문인데, 번쇄한 장경을 불교학 연구의 텍스트로 사용 할 수 있게 편집하는 일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하나뿐인 고려장경이 신수장경의 정正과 오誤를 판단하는 자료 역할정도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지요. 또, 이러한 장경의 전산화 작업은 새로운 장경을 만드는 의미를 갖는데, 지금까지 장경이 평면적이라면 전산화 작업을 하면 입체적인 장경을 만들게 됩니다 보기를 들어 화엄경 같은 경전을저마다 다른 시대와 언어로 번역된 것을 전산 입력하여 번역의 차아나 논, 소의 변화 과정을 검증하게 되면, 입체적인 연구가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불교사에 등장한 여러 장경 (팔리어 장경, 티벳 장경, 한문 장경, 영어 장경)을 한곳에 집대성하면 굉장한 의미의 새로운 장경이 될 겁니다. 이러한 장경의 전산화 작업은 불교학 발전의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신수장경의 등장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선 고려장경의 지위를 다시 한번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리는 계기가 될 겁니다.
박상국 장경의 전산입력에 대한 논의에서 저본底本의 선택이 일의 완성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준다고 봅니다. 지금 국내에 있는 고려장경의 인행본은
1865년에 간행한 것입니다. 규장각에 있는 장경은 일제 때 찍은 것이지요. 시중에 유통되는 동국대학교 영인본은 이 것을 저본으로 한 것인데 일본에 있는 최초의 간행본과 여말 선초에 유통되던 장경과 비교하면 빠진 것이 많습니다. 이것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보완하지 않으면 대본 자체의 문제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지요. 일본에 있는 고려장경에 대한 연구를 하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알듯이 임진왜란이나 일제 강점기에 빼앗긴 장경이 있기도 하지만, 조선 초기의 활발한 무역 거래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 많습니다.
원택 그 점에서 재미있는 구전이 많습니다. 조선조 초기에 일본이 조공을 바치고 나서 요구하는 것이 팔만대장경 간행본이라고 합니다. 조정에서 이것이 매우 골치 아팠던 것 같아요. 이것을 한번 찍으려면 온 나라의 종이란 종이는 다 모아야 하고 인경에 드는 재원과 인력도 대단했겠지요. 그래서 세종 때는 이렇게 힘이 드니 아예 경판을 전부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 되면 나중에 줄 것이 없으면 안 되어 그냥 가지고 있기로 했다는데, 그 다음부터는 장경을 요구하면 아예 없다고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일본의 장경에 대한 애착심도 대단했지만 그 당시에 문화 교류에서 고려 대장경이 가장 최고의 품목이었다는 반증일겁니다.
도각 장경의 전산화 작업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은 이해가 가지만, 지금의 기술 수준으로 이런 방대한 작업이 가능한지와 전산화 작업이 얼마쯤 진행되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더불어 재원의 확보 방안과 전문 인력의 양성 방안도 함께 말씀했으면 합니다.
종림 다시 한번 고려장경의 전산화 작업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를 살펴보면, 일본의 신수장경의 등장으로 뒤바꿔진 고려장경의 역사적 지위와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신수장경이 등장하기 전에는 고려장경의 가치는 절대적이었습니다. 그것은 문화재 이전에 불교의 전반을 온전하게 보전하는 성실한 도구였고, 불교학 연구의 기본 텍스트로서의 위치는 부동이었습니다. 이러한 고려장경이 목판 보존의 수준에 만족하고 있을 때 일본은 고려장경을 기본으로 대장경상의 보든 성과를 집대성하여 신수대장경이라는 새로운 장경을 만들었습니다. 이로써 고려장경이 점하고 있던 위치는 일순간 신수장경이 점유하게 되고, 모든 학자들은 이 신수장경을 전거로 연구하게 된 것이지요. 반면에 고려장경은 이제 목판이나 문화재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고려장경이 활판 인쇄라는 새로운 변화에 빨리 적응하지 못한 결과이고 장경 완성 이후 불교학적 발달의 정보를 담아내지 못한 것에 기인합니다. 고려장경의 빛나는 전통은 이제 목판만이 과거의 영광을 안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세계는 컴퓨터 정보 처리의 빠른 발전으로 과거와 전적으로 다른 수준의 메카니즘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정보 혁명, 정보화 사회로 말하는 것처럼 현대는 정보의 확보와 운용에 발빠른 사람이 실질적으로 우위에 서는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여기에서 다시 한번 장경 전산화를 통해서 과거 고려장경의 영광을 재현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 장경 전산화의 기술적인 문제를 거론하셨는데, 지금까지는 기술적인 한계로 개인적인 자료 정리의 차원에 있었고, 한자의 컴퓨터화가 가능해지자 미국의 랑카스터 교수 등이 고려장경의 전산화 작업을 시도한 적이 있지만, 키보드에 의한 수동식 처리는 막대한 재정과 시일이 소요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스리랑카에서는 율장의 로마나이즈 입력이 끝났고 대만은 남전대장경을 디스켓화하여 보급하고 있고, 일본 화원대학 선학연구소의 우르스 압이라는 사람은 한자의 자동 입력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어록과 선학사전들을 전산 입력하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문제는 자동 문자 인식 컴퓨터의 개발과 병렬식 정보처리 능력의 개발로 얼마쯤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이런 방대한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하려는 원력과 숙련된 인력 양성, 그리고 재원 확보에 있다고 봅니다 내년1월 창립 목표로 장경연구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고 지금 얼마쯤가시화되고 있습니다.
고려대장경의 대중화를 위하여
도각 이제 마지막으로 고려대장경의 대중화를 위한 문제를 짚어 봤으면 싶습니다. 그동안 장경수호 불사다 세미나다 해서 나름대로 불사를 치러 온 것은 있지만. 대장경의 중요성에 ,비추어 매우 미흡하지 않았나 하는 점을 지적 하고 싶고, 앞으로 대중화를 위한 좋은 프로그램이 있는지 말씀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원택 지금까지 팔만대장경의 의의를 대중에 확산하는 행사나 문화 축제는 별로 없었습니다. 정기적인 유일한 행사라면 음력 3월 10일에 장경을 머리에 이고 법성도를 요잡하는 장경수호 불사밖에 없습니다. 고려 때는 경행이라고 해서 팔관회나 연등회가 개최될 때 임금을 비롯한 고위 관리와 백성은 경전이나 경판을 이고 거리에 나와 시내를 한 바퀴 도는 행사를 꼭 했다고 합니다. 또 예천 용문사에 가면 윤장대라고 해서 장경판을 큰 틀에 진열해 놓고 사람들이 돌려가며 신앙했던 형태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전 신잉을 새로운 신앙 형식으로 개발하여 모든 사람이 쉽게 불교를 접할수 있게 하고 신심을내게 하면 좋겠습니다. 차제에 요즘처럼 대장경에 대한 관심도 높고 대중적인 인식도 고양되는 분위기도 있어서 학계와 교계의 권위있는 연구를 토대로 해마다 한 차례 이상 장경의 보존과 연구에 대한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자 합니다.
박상국 3월 불사는 지금까지 너무 의례적인 행사로 치러 왔던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좀더 전통과 역사성을 부여하고 경전 신앙의 의미를 충분히 살
려서 불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돈독한 신심을 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어야 한다고 봅니다. 다수 대중이 모여 자기만 편한 방법을 찾다보니 무질서한 경우가 왕왕 있는데, 여법한 행사를 진행하여 참여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도 환희심이 나는 법회가 되어야 할 겁니다. 행사의 프로그램도 오늘날의 풍부한 문화 양식을 도입하여 좀더 다채롭게 살려 가면 좋겠습니다. 조금 전에 사회자께서 장경의 인경 문제를 유통과 더불어 생각해 보자고 했는데. 사실 요즘들어 팔만대장경을 요청하는 곳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러시아와 유럽 등지에서 필요히다고 하고 특히 일본의 경우 장경 신앙과 더불어 상업적인 목적에서 인경 사업을 제안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내의 여러 단체나 기업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고려장경의 철저한 연구를 통해서 일차적인 자료의 정리와 보존 대책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인경 불사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고 당장 필요나 수요에 의해 인경을 한다면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할 소지가 많습니다.
도각 긴 시간에 걸쳐 팔만대장경의 보존과 연구 과제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보존에서도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 점과 장경의 전산 입력에 대한 필요성에 모두 공감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새로운 형태의 장경 신앙의 개발도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확인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이러한 일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주체를 꾸려야하고, 또 책임있고 숙련된 인력이 모여서 연구소 형태의 건실한 단체로 꾸려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 실천하려면 해인사 사중이나 뜻을 같이한 사람들의 분발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긴 시간 자리를 같이 해주셔서 대단히 감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