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 되는 제등행렬의 경찰 폭력
사실 이례적으로 풀이되는 종단의 행보는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과거, 제동행렬에 대한 최루탄 발사와 폭력적인 행진 방해는 대불련의 정치적 구호와 유인물 배포·만장등을 저지하고 뺏기 위해서 생긴 것들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과거와 전혀 다른 상황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매년 행렬 선두에 섰던 대학생들을 문제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28번째로 순서를 옮겼고, 올해의 선두는 스님과 종단대표자, 어린이 둥으로 구성되었음에도 여기에다 지랄탄을 난사한 것이다. 교계 대표자 동은 평생처음 최루탄 가스에 눈물을 흘리며 흰 가루를 뒤집어 써봤을 것이다.
비록 강경대 군의 노제(路票)가 공 띄동 로타리에서 열린 관계로 경찰쪽 에도 사정이 없지 않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날 경찰의 처사는 상식밖이었나. 노제의 시위행렬은 이미 해산된 뒤였는데도, 그날 전에 스스로 허가해 준 행렬을 막은 것도 납득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방비의 제동행렬에 대한 무차별 최루탄 난사는 더더욱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다. 더구나 정부당국은 뻔히 18일 여의도에서 대규모 불교행사가 계획되었음에도 재야와의 강경대군 노제장소 공방을 벌이면서 공개적으로 노제장소를 여의도로 유치하려고 해 불교도의 원성올 샀던 터였다.
비가 세차게 내린 가운데 열린 5·25대회로 불교계의 규탄집회는 마감할 것으로 대부분의 관측자들은 예견했었다. 그러나 이날 대회후 거리행진에서 비교적 순순히 물러서던 경찰은 종각 4거리에서는 강력히 제지하여 장시간 대치하였고, 이 과정에서 7명의 스님과 재가불자가 부상을 당했다. 이날의 열기는 주(週)가 바뀌면서 중앙승가대학 단식농성으{로 이어졌다. 일주일간 계속된 농성과 집회는 6월 8일 조계사에서 ‘불교탄합규탄 및 불교자주화를 위한 범불교도 대회’를 개최케 했다. 그런데 당일 집회장에는 종단관계 자의 모습은 일체 보이지 않았고, 총무원 출입문에는 셔터가내려져 있었다. 그야말로 재야권만의 집회가 되고 말았다.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화된 것이다.
사실 5·18 폭력사태가 터지기 하루 전날에는 유명 호텔에서 불교계대표급 인사 및 일천여 명의 신도가 참여한 가운데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원법회’가 개최되었고, 노대통령 부부가 참석한 이 자리에서 의현스님과 박완일 전국신도회장은 “이천만 불자들이 평소 폰경해 마지않는 대통령”, “대통령각하의 위대한 노선을 지지하는 뭇으로 뜨거운 박수를 보내. 자”는 동의 아부성 발언으로 일관해, ‘종단의 두 목소리’를 꼬집는 시각이 많았다.
광화문을 통과하는 유일한 연례행사
종단 대표자들을 비롯한 불교도들 이 자주적이고 의연한 행동을 할 때 만이 정부 및 경찰당국이 불교룰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려는 꾸준 히 있어왔다. 그런데 아직까지 적지 않은 불교계 대표자들이 정권에 아부 하고 빌불어 이속을 차리고 있는 것으로 젊은 불자들은 생각하고 있다.
이런 평소의 생각들이 행동화한 사건이 발생했다. 중앙승가대 학인스님과 동대불교도연합{동불련} 학생들은 5·25대회가 열리던 날, 불교회관 2층에 자리잡은 전국신도회 사무실 집기를 들어내 버린 것여다. 그리고 이두 단체는 “10 ·27법난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친독재정권으로 일관하면서 불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전 국신도회가 제 역할을 회복하기를 기대하면서 호(護)정권에 앞장서 온 회장 박완일씨의 참회와 공식사퇴를 강력히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다소 전격적으로 진행된 이날의 ‘행동’은 문화부 장관 이어령씨가 사과 방문을 온 것이 발단이 되었다.
당시 일간신문에 사진이 보도되어 많은 사람이 기억하듯이 청년스님과 불자들은 이 장관의 방문을 기만적 사과라면서 거부했었다. 이 과정에서 박완일씨는 타단체의 현수막을 찢고, “애들과 상대할 일이 아니다”는 둥의 발언으로 청년숭가와 불자들의 분노를 산 것이다.
종단대표급 인사들의 굴종적 친정 부적 성향으로 인해 평소 정부가 불교를 무시하는 것 이외에, 제둥행렬에 자주 경찰 폭력사태가 발생하는 이유로는 경찰의 입장이 있다.
제등행렬은 광화문을 통과하는 유일한 연례행사라고 한다. 광화문에는 미국대사관과 정부종합청사가 있으며, 조금만 더 가면 청와대가 있다. 때문에 경찰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경찰은 불교계 자체의 대풀련 학생들에 의한 시위성 행진에만 그치지 않고, 연도의 시민들이 호웅하거나 일반 시위대가 합류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 것올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등행렬은 늘 5월에 거행되는데, 우리 나라의 5월은 매우 특수하여 시위가 가장 격렬히 전개되는 달이다. 때문에 경찰의 이러한 우려는 개연성 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접어두더라도 아직 까지 우려할만한 상황으로 치달은 적이 한번도 없음에 주목해야 한다. 오히려 늘 경찰의 과잉보호와 우려가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봉축위 상설화로 4·8행사에 만전을
사실 시위와 집회는 사회적으로도 대단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사항이다. 특히 화염병과 최루탄의 공방은 ‘달갈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는 식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아마도 국민 다수의 지지에 기반을 둔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정부가 수렵되지 않고는 결코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문제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불의를 물리치고 정의를 생명처럼 여기는 대불련 학생들의 의사표시를 모두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전체 불교도의 의사와 제등행렬 행사 자체에 대한 원만한 성사를 위해 제반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은 이미 시도되고 있다. 앞서 밝혔듯이 올해 대불련 행렬이 기존의 맨 선두에 서 매우 뒤쪽으로 재배치 된 것은 신도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대불련회장 오도선씨는 “대불련은 신도들의 여론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4·8행사 전체를 주관할 뿐 아니라 제등행렬 행사를 주관하는 곳은 ‘봉축위원회’이다. 종단과 신행단체 대표들로 구성되는 봉축위는 사실 그동안 대불련의 행진 순서를 놓고 논란을 벌여왔다. 앞에 서려는 대불련과, 대불련 때문에 행진이 늦어지고 귀가 시간이 자정을 훨씬 지나서야 귀가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일부 신행단체들은 대불련이 뒤쪽에서 행진해 줄 것을 요청해 왔었다. 대불련은 안팎으로 어려운 처지였던 것이다.
이제 이 문제는 대불련의 양보로 해결됐다. 그러나 이것으로 경찰 폭력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대불련이 자신의 견해표명을 포기할 조짐도, 경찰의 과잉보호도 쉽게 누그러질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봉축위의 역할이 중요할 듯하다. 대불련을 뒤로 돌리고 어떻게 되든 상관치 않는 자세가 아니라, 제둥행렬의 한 부분으로 확고히 인식하여 아름답게 끝낼 수 있어야겠기 때문이다.
그런데 급작스럽게 구성되는 기존의 봉축위 운영방식으로는 해결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왜냐하면 교통문제 둥 때문에 경찰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 행사에서 경찰과 교섭을 맡을 전문적인 실무자한명 갖추치 못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경찰은 이 분야에 베테랑인데 몽축위에서는 대부분 기피하는 역할로 되어 있으니, 경찰에 항의할 것은 항의하고 교섭을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해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반드시 제등행렬 사태 때문만이 아니라도 봉축위의 상설화는 대단히 필요한 일로 지적되어 왔다. 해마다 4·8행사가 구태의연하고 여의도 법회와 제둥행렬에 참여하는 숫자도 줄 어들고 있어 전반적인 재검토와 함께치밀한 사전준비가 요청되는 까닭이다.
“많은 불교도가 포교·홍보를 외치지만, 4·8행사 및 재동행렬 만큼 큰 포교·홍보가 어디 있겠느냐’며 “남이 배 아파 하는 이 행사의 발전을 위해 불교계는 크게 노력해야 한다” 는 것이 관계자의 호소이다.
이제 규탄집회도 끝났다. 종단과 재야는 이번에 국무총리의 사과방문도 받아냈으나, 중앙승가대학과 대불청 둥이 투쟁 ·조직력을 크게 신장시켰다는 지엽적인 성과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4·8행사와 제동행렬의 질적 향상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