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숲에 돌아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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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도각
1993년 01월 131호
겨울 한복판에서 비가 내립니다. 한바탕 박 속 같은 눈보라라도 휘몰아 내리면 거기에 마음을 걸어 보겠지만. 겨울비를 맞으며 걷는 걸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맨몸을 드러내고 비를 맞는 겨울 숲도 쓸쓸하기는 마찬가지구요. 온갖 열망을 담아가라고 손짓하던 연두빛 잎사귀는 죽은 영혼으로 뒹굴고. 발뒤꿈치 가벼운 신명으로 장단 맞추던 바람은 차가운 냉기로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날은 왠지 세상이 거대한 절벽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날이 새자 차마 서로 얼국 쳐다보는 것도 민망하여 쫓기듯 이렇게 겨울 숲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스님, 요즘 대중 생활은 어떻습니까.
떠나 온 이후 스님의 소식은 바람결로나 듣곤 했습니다. 저의 게으른 소치이지요. 들리는 얘기론 선방에 구참납자가 드물고 참선하는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합니다.
뒷짐진 노승의 기침 소리에도 절집의 질서가 세워지던 세월이 언제였던가 싶습니다. 그 무엇에 앞서 선방은 치열한 구도의 열정이 질서를 규율하는 곳입니다. 그 자리야말로 우리가 적나라하게 온몸으로 서야 할 곳이기도 하구요.
대중 생활의 어려움에도 대중이 부처라는 믿음으로 대중처소의 정진을 비껴가지 않으시려는 스님의 모습은 저에게는 늘 준열한 자기 점검이었습니다.
스님. 비 내리는 장경각 뒷뜰을 배회하면서 그날의 일을 회억합니다. 밤새도록 잠 못 이루고 서걱이던 통도사 극락암의 산죽소리 말입니다. 동시대를 함께 사는 정직한 젊은이로서 우리가 서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적멸과도 같은 좌복 위의 정진이 압제와 저항이 소용돌이 치는 시대의 정황에 어떤 말을 할 수 있는지, 그때의 소박한 결의가 새롭습니다. 불행한 시대에는 순진한 사람이 가장 열렬한 전사가 되듯 우리의 고민을 정직하게 함께 할 대중을 찾아 나서자는 다짐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펄펄 끓는 역사와 민족과 민중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며칠전 대선이 끝났습니다. 결과는 명백한 선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남아야 할 사람과 떠나야 할 사람으로 역사와 민주의 이름으로 표상했던 한 사람이 자신의 고난에 찬 정치적 역정에 고별사를 할 때, 눈물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한 인간의 진퇴 때문이 아니라. 풍진노숙을 힘들어 하지 않고 역사의 부정적 퇴적물을 씻어 내고 함께 사는 공동체를 건설해 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갈려지고 내몰린 우리의 삶을 역사와 민족의 정의로움으로 전화하는 일이 이제는 무망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지도자를 선택하는 일로 모든 문제가 풀린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택한 결과는 엄정한 것이고, 이러한 선택의 정서가 민족 전체를 걱정하는 안목보다는 지역적 편견, 정치적 상황 조작이라는 다분히 감정적인 선택이라는 점에서 심각해 보입니다. 바로 여기에 역사와 대중의 모순 관계를 풀어야 하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의 주체로 세우려는 대중이 오히려 그 역사를 외면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깊은 성찰을 요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단순히 적과 아.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독재와 민주 등의 무차별 이분법으로 변혁의 에너지를 창출하려는 노력은 옹호될 수 없는 것이겠지요.
이번 대선 결과 또한 내밀이 진행되는 역사 진행의 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적하고 문책했던 역사의 한계가 이제 오히려 역사를 보는 우리의 시각을 교정하게 합니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로는 오늘의 문제를 다 풀어낼 수 없다는 것과 다극화되고 다양화된 사회 현상에는 거기에 걸맞는 규범과 장치를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회는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문명을 배태하고 있습니다. 반성이 청산으로 귀결되는 허무가 아니라 변화의 깊은 의미를 바로 보고 이 속에 우리의 이상을 착근시킬 때 한시대의 임무를 다하는것이 아닌가합니다.
스님, 쓸쓸함으로 서 있는 겨울 숲도 나름의 질서와 움직임이 있습니다. 얼다만 개울물은 쉼이 없고. 모진 북풍에도 나무들은 서 있어야 할 곳에 어김없이 자리합니다. 철새 떠난 숲에 못난 우리의 텃새들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날아 다닙니다. 변해도 변치 않는 우리의 자리를 확인하게 하는 것들이지요. 통도사의 푸른 솔밭길을 걸어 나오며 스님이 주신 말씀이 새롭습니다.
\"불교의 길이란 이것과 저것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네. 하나 속에 전체를, 전체속에 하나를 체현하는 것이 보살의 길이 아닌가. 가고자 하는 길에 깨달음이 있다는 믿음으로 정진하게. 포단 위의 길과 저자의 풍진이 본질에서야 다름이 있겠는가 우리가 추구하는 길이 결국은 하나의 자리에 만나는 것이어야 하고 그랬을 때 우리가 할말이 있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