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죽은 가을 저녁 은석암에 다가갔다
구절초 마른 풀댐새가 온몸을 적신다
법당 앞뜰 벗어 놓은 신발 한 컬레가
오래 못 본 쪽때와 같다
이 허적 위애 신발을 벗을 줄 아는 이
나는 너무나 많이 혜매었구나
저녁 예불을 드리는 자은스님의 목소리가
상한 발등을 적선다 따뜻하다.
〈시작메모〉
나의 여섯 권의 시집 속에는 여승만을 소재로 한 시가 네댓 편 있다. 또한 시선집 「우리나라 풀잎 이름 외기」에는 ‘女增’을 독자에게 드리는 自序로 했다. 나는 지금도 머룻잎 이슬을 혈며 산길을 내려오는 여승을 가끔 꿈속에서 만나기도 하고, 어릴 때 체험했던 그 여승의 순결한 이미지로 이 세상 모든 사물 앞에서 그때처럼 순수한 가슴으로 시를 쓰고 싶다.
한마디로 여승은 나에게 있어서 구원이다. 법당 앞에 깨끗하게 널려 있는 선발 한 컬레-
지난해는 교원대학에 있으면서 마곡사엘 처음 가 보았다. 은석암까지 올라갔는데 예쁜 여승 한 분이살고 있었다.
늦가을 가랑잎 속에서 한없이 따뜻함을 느꼈다. 나는 거러지에게서 구원을 받은 적도 있지만 여승에게선 보다 깨끗한 구원을, 그것도 순수무구한 구원을 받는다. 그때의 여송의 이미지를 놓고 써 본 즉흥적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