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국제적 교류는국가간의 외교교류못지 않게 중요성을 갖고 있다. 물론 불교뿐 아니라 기독교 둥여타 종교의 교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그 가운데 불교의 국제교류는 다른 종교와 달리 활동의 획이 굵어셔 조심성마저 요구된다. 특히 불교권 나라들과 의 교류나 불교권역이 아닌 유럽, 풍 기독교세가드센 나라들과의 교류 둥, 심도있는 사고(思考)가 따르지 않으면 ‘교류(交流)’라기보다는 오히려 맥올 끊어놓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은 세계 각국이 많은 변화를 가져와서 인식이 달라지고 있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동구권 공산국가들이나 동남아 일대의 사회주의 국가 등은 우리나라와 국가간 외교채널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불교교류를 갖게 될 때 조섭성은물론이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되는 형편이었다. 이런 얘기를 여기에 기술해도 좋을지 모르겠으나 ‘문화간첩’이라는 용어가 둥장하게 된 동기가 종교교류를 통한 외교 절차에서 발생됐다고 한다
다시 언급한다면 비동맹 국가간에 보내지는 종교사절이나 또는 단순방문, 회의참석, 구호활동, 관광 등 종교인들에게는 다소의 특혜가 부여돼 제한된 나라도 방문할 수 있었던 까닭에 그러한 평가나 이론이 나오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국가간 외교채널을 통해 얻지 못하는 갖가지의 정보를 종교인들을 통해 얻을 수도 있고, 어떤 경우는 종교인이 정보원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그러한 점에서 종교교류의 중요성도 인정되지만 조심성이 따라야 했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변하여 탈이념화하고 공산국가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입장이라 어떠한 우려나 기우는 지워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순수한 교류를 갖기 위한 데는 기본적인 교류목적이 우선되어져야 할 것이다. 단체와 단체간의 교류도 었고, 나라와 나라간의 교류도 있을 수 있고,-
세분한다변 친목·학술·유인물·문화 둥 다양한 방법으로 교류를 이룰 수 있다. 이런 방법들을 통해 단체 ·나라간에 사원 단위로 결연을 맺고, 여러 가지수단으로 교류를 펴 상호간의 우의를 다져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교류의 순수성은 우의(友誼)가 더욱 굳어지고 상호이익이 발생될 때 성공되는 것이며, 오래도록 유지되어지는 것이다. 단 한번 만나는 것으로 끔난다거나,
자기 이익만을 취하고 단절해 버린다면 애초 맺지 않음만 못하다. 교류의 속성은 상호이해 속에서 끊임없이 친분을 넓혀가며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고 매개집단의 연대를 튼튼히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불교교류는 혹간 그러하지 못한 불미스러움을 볼 수 있다. 그 두드러진 예가 약속의 위반이다. 현지에 가서 철석같이 약속을 해놓고 이행하지 않는 사례, 이것은 철저히 배재되어야 한다. 그 그룹의 장(長)이든 소속원이든 그 나라 불교인과의 약속은 지켜야 하고, 지키지 못할 부탁이라면 현장에서 이해서켜야 한다. 국제간 교류에 있어서 약속은 생명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오는 것은 교류의 단절뿐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어떤 나라의 불교와 교류를 갖기 위해서는 그 나라 언어에 밝은 통역관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여러 나라 불교인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 ‘한국 불교인들과 말이 통하지 않아서------’다. 섬도있는 교류를 형성하기 위해서, 충분한 의사전달을 위해서, 또 국제간의 의전상 의견소통을 위한 수단을 취해야 한다. 그외 여러 가지 갖추어야 할 문제들이 있지만, 우선 이 두 가지만이라도 지켜진다면 교류를 시작하는 기본자세는 갖추어져는 것이라 하겠다.
다음으로 다른 나라 불교와 교류를 갖겨 위해서 우리 한국불교의 위상은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스스로 알고 나아가야 한다. 우리 한국불교는 북방 대승권불교 가운데 전통성을 지니고 었다고 다른 나라 불교인들은 이해하고 있다. 또 나라도 부자고, 불교도 부자라고 알고 았다. 이 두 가지 사설을 잊고 활동할때 저쪽은 실망의 눈초리를 보내온다.
또 상대방 나라의 불교를 이해하고 대해야 할 것이다. 그곳의 불교풍속을 모르거나 무시해 버리변 교류
는 쉽재 성사될 수 없다. -------..----.----‘------.----‘---.-----
따르라-그 말과 무관치 않다. 불교가 크게는 소· 대승으로 구분되지만, 예법(禮法)이 다르기 때문에 그를 익혀두고 동화(同化)할 때, 백 마디의 언어보다 빠른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우리 나라가 잘 살고 있다는 얘기는, 우리 나라를 비롯해 일본·대만 둥 경제부흥 국가들이 있는 반면, 스리랑카·네팔·방글라데시 ·인도 등 불교권역의 나라들 간에 빈부의 차가 있다. 교류를 진행하다가 보면 어들 나라의 경제수준을-고려치 않을 수 없다. 반복해 말한다면 일본이나 대만 등과 교류를 함에 있어 동둥한 경제수준으로 대해도 무방하지만, 앞서 지적한 여러 나라들과 교류를 할 때는 다소간의 경제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그것이교류의 목적 일부일 수도 있다.
설례를 든다면, 지금 병달라페시는 지난 폭풍파 해일로 염청난 피해를 입고 각국의 불교계에 원조를 요청하고 있다. 이런 경우 대처할 수 있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만났을 때나 떨어져 있을때나, 지속적인 활동이 없이는 교류상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한 움직임에 곧잘 활동을 보이는 곳이 일본이다. 일본불교는 WFB 등 국제회의에서도 그 같은 활동을 과시하기도 한다.
이런 변에서 교류를 위한 구체적1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각오와 그에 부응할 실천없이 교류는 요원한 것이다. 스리랑카 등에서 사리(舍利)를 모셔오고 그 대가나 치르는 삭의 동조는 교류로 볼 수 없다. 또한 그러한 형식올 교류로 오해하고 행동하려 환다면 의당 생각을 고쳐먹어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은 지나간 일들을 반조한 것에 불과하다. 21세기를 향한 지긍의 세계 불교사정은 국제변화만큼 달라져 가고 있다. 북방과 동구의 여러 나라들이 문호를 열고 있고, 그 가운데 불교종주국이라 할 중국대륙도 문을 열어놓고 있다. 그러나 과연 어디에서부터 교류의 시발점을 가져야 할 것언가가 그 과제다. 중국의 경우는 종국불교 전체를 묶어 대화할 수 있는 중국불교협회라고 하는 창구가 었다. 그러나 소련의 경우는 개방된 지 얼마 안돼 대표할 만환 겨구가 미약하다.
다행히 중국불교협회는 한국불교지도자와 두 차례의 정상회의를 갖고 교류의 길을 찾고 있다. 특히 중국은 문화혁명으로 인해 불교의 활동이 중단되었고 또 많은 불교문화재가 소멸되어 지금 한창 복구상태에 있기에, 한국불교와의 교류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약 10여 년 간 노력을 기울인 중국불교협회는 조직면에서 탄탄한 기반이 서 있고 불학원(佛學院 승려양성교육기관-승자학교)이 전국적으로 유수 사찰등에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우리 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많은 것을 얻고자 한다. 사찰의 보수, 학원운영의 교수법, 홍보 ·책자간행 동 문서발간의 기술 둥 불교부홍에 필요한 여러 가져를 펼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와는 국가간 미수교상태에 있고, 중국이 개방은 되었다 할지라도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아작 정상교류를 하가에는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하저딴 국가간 수교에 앞서 불교가 교류를 폈다는 것은 국가간 수교에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정상수교가 된다면 본격적언 불교교류가 전개되게 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그 때 역사 우리 한국불교의 자세에 산경을 쓰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우선 중국불교는 경제적으로 나약하고, 혁명기간 중에 숭려와 양성도 불사를 이루는 기능인도 배양하지 봇해 전적으로 한국불교가 도와주어야 할 형편이다. 비단 중국뿐 아니라 소련도 마찬가지다. 소련 l5개 공화국 가운데 불교사원이 25개 처가 있다. 이후에도 불교사원들은 복원할 계획이나 나약한 경제사정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몽고 ·파키스란 등 우리네를 부자의 나라, 부자불교로 보고 있는 한 우려가 갖추어야 할 자세에 따라 교류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적으로 개별 사찰들은 넉넉한 형편이나 대외활동 단체, 또는 교단별 대표기구는 국제교류를 위한 예산이 없다. 그저 그때 그때 필요한 예산도 채 안되는 예산을 집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한국불교는 대외 활동을 위해서 개별적 교류도 중요하지만 교단별로, 또는 국제교류 단체를 정비하여 힘을 모으는 작업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명실상부한 교류를 기대할 수 있으며,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얻게 될 것이다.
앙범수씨는 45년 전북 장수생으로 현제 세계불교청년회 한국본부장과 불교신문사사 편집국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