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포교의 어려움
해외포교에 있어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어려움은 무엇보다도 먼저 언어의 장벽일 것이다.
산사(山寺)에서 특별한 어학지식 없이 이무런 불편함도 느까지 못한 채 살아가던 대다수의 승려를 이 불현듯 별다른 준비의 기간야나 사전지식도 챙기지 못한 채 가방 속에 목탁과 요령 그리고 가사와 장삼 몇 벌의 승복이 고작인 그런 상태로 해외 포교를 출발했던 그 속에 고난과 사련은 이미 맡아놓은 파제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 포교를 시작하는 대다수 승려들은 기초적인 어학을 배우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터전이 마련되지 아니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중고를 겪지 않으면 안되었다.
불론 재정적인 변에 있어서는 더욱더 그 고초가 컸던 관계로 승려들의 많은 숫자가 스스로 식당야나 세탁소 또는 구멍가게 그밖에 심지어는 우편배달부로까지 취직해서 생계비를 마련하면서 포교라판 원력 하나계 인생(人生)을 걸고 뜻을 굽히지 않고 정진(精進)했던 사례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그 모습이 남아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서양문명의 이기적이며 불질위주의 삶에 탐착하여 불교의 해외교포라는 근본을 잊어 버리고 세속의 자본주의에 물들어 불교와는 영원히 작별을 고하고 그 길로 속퇴어 길을 걸었던 사례도 적지 않았음을 우리 모두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열거한 우리 모두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문화적 환경의 차이로 인하여 많은 승려들은 고초를 겪어야 했고 심리적으로 위축감과 함께 때로는 해프닝을 연출하는 그러한 결과는 우리의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면 그와 같은 수 많은 장애들을 포교사들에 있어서 오히려 간절한 원력을 갖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법회의 대상
대략 미주 포교에 있어서 포교의 대상은 이민자들인 우리 교포가 그 주종을 이루며, 간혹 순수한 외국인만을 위한 포교애 전념하는 승려들의 손에 의하여 한국불교를 외국인에게 뿌리내리게 하는 계기가 되기
도 하였다.
법회를 갖는 대상과 과정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교포이든 외국인이든 상관없이 한국식의 포교방법으로는 결코 그들의 가슴에 와닿는 포교의 장을 열 수 없다는 사실이다.
포교 이전에 그들과 합깨 즐거워하며 또한 함께 슬퍼하는 동체대벼(同體大悲)의 마음이 없는 한 해외포교의 기간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신도들을 위하여 문병올 가는 것은 필수가 되고, 점포를 개업하면 불공을 혜드려야 하고, 사업의 조언자가 되어야 하고, 어린이들을 잠시라도 맡아 보살펼 줄 아는 보모의 역할도 해야 하며, 때로는 노인들과 함께 망중한을 즐기는 벗이 되어 주어야 하는 전천후의 인간관계를 가짐으로 해서 먼저 신도들에게 필요한 사랍여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포교인으로서 성숙한 인간성을 배양하재 되고 종교적 시장(思想)이 정립되는가 하면, 더 나아가 삶의 참펀 의미를 스스로 깨닫게 되는 수행(修行)의 길을 찾게 되기도 하며, 이웃과의 관계가 곧 나 자신의 삶이 되는 동체(同體)의 의미를 발견하게도 되는 계기를 맞야한다는 사실이다.
해외포교외 미래와 우리의 과제
미주의 해외포교는 이제 대체적으후 재정작 안정궤도에 이르러 었으며 신도수에 았어서도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물론 좀더 성실한 포교로서 탄탄한 자리를 구축한 포교사도 있고, 열악한 환경에서 아직까지 고초를 겪는 승려들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주 해외포교 25년의 뿌리는 이제 꽃을 피울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주뿐만 아니라 유럽의 자유분망한 민주주의는 지극히 자유스러웠던 관계로 물질판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에 빠져버렸고, 나 아니면 남이라는 해타적 집단 이기주의가 무성해진 지 오래이다. 또한 젊은 계층에서 도덕적 삶을 배우지 못했던 관계로 마약과 폭력 그리고 성문란의 결과로 ‘에이즈’의 공포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구미 사회는 이제 고도의 물질문명을 이루었으나, 반대로 정신적 궁핍의 환경을 초래하여 오도된 실용주의에 빠져 미래의 비전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불교(佛敎)의 동체의 삶 그려고 부처님의 대자대비사상은 어쩌면 만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극단의 세계에 새로운 바람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 바람은 번주주의로도 공산주의로도 얻을 수 없는 절대적 자유 ·절대적 평동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인류사의 대전환기에 새로운 미래를 해 외포교의 장에서 한판 승부로서 이룩해야 할 것이며, 그러한 절대절명한 의지와 의욕을 우리 모두 함께 다짐해야 합 것이다.
결국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한 하늘 밑에서 함께 숨쉬고 있는 불자(佛子)라면 숭속(增倚)을 막론하고 시대의 흐름과 우리들이 해야 할 과제를 잊고 살아서는 안될 것이다.
눈을 감고 뜨는 그 사이에도 끊임없이 변천하는 현대사회. 그 속에서 우리들이 해야 할과제가 었다면 스스로 수행자적(修行者的) 자세를 잊지 말고 부단히 노력하며 그 속에서 중생(봤生)과 더불어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뼈하는 동체대비(動體大悲)의 실천적 삶을 끊임없이 베푸는 길일 것이다.
재원스님은 ‘70년 보장사에서 관음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수지. 75년 구 산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수지하였다. ‘83년 미국 워싱턴 법주사 주지를 역임한 후 현재는 조계종 총ㅁ원 사회부장이며 춘천 청평사 주지를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