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해외포교의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일본과 미국에 각각 홍법원이 처음 창설되었고, 그 뒤 대만과 홍콩 및 아시아권으로 확산되었으며, 캐나다와 남미국가 등에도 우리 나라의 포교당들이 설립되었다.
유럽에는 유일하게 스위스 제네바에 송광사 분원이 있다가 근래 들어 없어지고, 2년 전에 영국에 ‘연화사’가 생겼다. 프랑스에는 그보다 먼저 승산스님의 제자가 운영하는 한국 포교당이 하나 열렸다.
개방의 물결이 일면서 유럽을 비롯한 동구권에도 한국의 선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해외교포에 특별히 많은 활동을 하는 승산스님의 원력으로 폴란드를 위시한 여러 나라에 10여 개의 선원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잇다. 소련땅에도 필자와 인연이 닿아 작년부터 우리 교민들이 많이 사는 타시켄트에 한국사찰 건립을,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는 포교당을 열 계획을 각각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불교는 겨우 2,30년의 짧은 외국포교 역사를 갖고 있으나, 그동안 미국에는 한국절이 70여 개로 늘어났고, 일본에는 10여 개의 포교당이 생겼다. 미국과 일본에 이렇게 포교가 집중되어 있는 것은 교민들의 수가 많고 또 교민들이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잇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 곧 유럽이나 호주, 남미, 동구권의 포교는 너무 미미하다. 미국에도 70여개의 포교당이 있다고 하니 많은 듯이 여겨지나, 다른 종교와 수적으로 비교를 한다면 아주 작은 숫자이다. 다른 종교와의 비교는 차지하고라도, 같은 불교권에서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볼 때 한국의 해외사찰 수는 극히 적다.
필자가 생활해 본 경험이 있는 영국을 보기로 들면, 현재 영국에는 2백50여 개의 불교 단체들이 있는데, 티벳불교와 남방불교, 일본불교가 주류를 이루고 한 두 개의 한국 포교당만 있다는 것은, 한국의 해외포교가 얼마나 미약한가를 말해 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여기서 곡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한국의 해외포교당들이 거의 한국 교민들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 있는 70여 개의 사찰들을 대부분 우리 교민들을 상대로 법회를 보고 있으며, 외국인을 가르치는 곳은 몇 곳이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먼 이국땅에 살고 있는 교만들을 위해 법회를 보는 것이 마땅하고 또 기본적인 것이지만, 이왕 외국에서 포교활동을 하는 이상에는 그곳 외국인들에게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포교의 본래 의미에 합당한 것이라는 아쉬웅이 남는다. 특히 요즘은 많은 서양인들 이 풀교에 관심을 갖고 있는 때이므로, 외국인 포교가 샤기상으로도 적절하다 하겠다.
해외포교에 대한 필자 개인의 경험을 굳이 한마다로 표현하자면, 우리 한국불교가 아직은 냐무 ‘어리다’는 것이다. 7·8년 전 필자가 영국에서 지낼 때, 다른 나라의 절들은 수십 개가 있는데 우리 나라의 절은 하나도 없어 어려웅과 서글픔을 절실히 느꼈던 기억이 아픔으로 떠오른다. 충격으로 다가왔던 일들도 여러 번 경험했다.
런던의 에렉스톤 스퀘어라는 곳에 불교 도서관이 하나 있다. 그곳에는 벌써 몇십년 전에번역이 미쳐진 남방의 장경들과 세계 여러 나라의 불교관계 서적들이 전열되어 있었다. 이 도서관의 장서들은 나라별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중국과 일본·스리랑카를 비롯한 각 나라의 불교셔적들이 영어로 번역되어 수백 ·수십 권씩 진열되어 있었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한국편 서가에서 펼자가 발견할 수 있었던 책은 단두 권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한 권은 이미 돌아가신 구산 큰스님의 책이었고,-다른 한 권에 대한 기억은 분명치 않다. 그 순간,한 사람약 승려로서, 또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산분이나 국적을 따지기 이전에 원시적이랄까, 아니면 근원적이랄까, 마치 발가뱃긴 듯한 부끄러움이 온몸을 엄습해 왔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당연히 많은 외국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한국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음을 알게 될 때 느끼는 비참에 가까운 비애감이란 결코 당연시활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요즈음이야 올림픽도 치른 뒤이고 하여 외국에 한국은 잘 알려져 있지만, 십년 찰만 하더라도 한국에 대해서는 한국전쟁이나 기억하고, ‘남북으로 나뉘어 있는 나라’ 또는 ‘데모가 많은 나라’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때였다.
영국의 그 불교 도서관에서 느낀 것은, ‘우리 나라가 외국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듯이 우리 한국불교도 이와 마찬가지로 세계무대에서 이렇게 뒤져있구나’ 하는 아픔이었다. 몇 년전, 영국에서 출판된 ‘세계의 불교’라는 책을 살펴보면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많은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는 상당한 양이 할애되어 있었으나, 한국은 어처구니없게도 중국편에 그것도 단 몇 줄로 소개되어 있을 뿐이었다. 이는 그 글을 쓴 이의 무자의 소치로 돌릴 수도 있겠으나, 분명한 것은 우리 승려들이나 일반 불교신포들이 너무 국제적 흐름에 둔했다는 사실이다. 그 불교 도서관의 담당자에게 한국불교에 대한 책이 왜 그리 적으냐고 물었을 때 그의 답변인 즉,많은 사람들이 한국불교에 대해서 알고 싶어해도 자료를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프랑스에 들러 당시 그곳에 유학하던 한 스님을 만났을 때, 그 스님으로부터 일본 승려들이 벌써 7 ·80년 전애 프랑스로 가서 역경을 하고 포교를 했다는 자료들이 남아 있디는 것을 들었다. 이 또한 한국불교의 국제적 방관과 취약성을 드러내 주는 비교 자료이다.
그동안 우리 나라는 가난했고, 해외 여행의 기회가 자유롭지 않았던 것이 사실아다. 그러나 이채는 우리도 국재적인 면에도 눈을 돌리지 않으면 안되는 때이다. 지구촌이라 해서 이채는 외국이 외국이 아닐 정도로 가까워졌다. 서울에서 부산이나 대구에 갈 시간여변 다른 나라에 갈 정도이니 딸이다. 문화나 종교도 옛날과는 달리 쉽게 번번히 교류되고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외국언 포교와 국제불교일을 하다 보니 외국인과의 교류도 잦고, 국제불교의 현실도 좀 알고 있는 편이다. 지난해어1도 소련을 방문한 뒤에 유럽에 사는 한국 불자들의 요청으로 유럽을 다니면셔 그들을 만날 기회를 가졌다. 그들와 환결 같은 이야기는, 제발 한국 스님들이 좀 와서 포교당이라도 하나 열어주십사는 부탁이었다. 그들의 바랩야 하도 절실하고 또 어차피 언젠가는 꼭 되어야할 일이므로1
되도록 빼른 사일 내에 그런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노력을 하겠노라고 대답은 하였으나, 귀국 후 여러 가
지 이미 벌여놓은 포교일올 마무리하기에도 바쁜 처지인지라, 아직도 그들과의 약속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런던에도 이제야 한국절이 하나 생겼다. 그러나 우리 교민들이 많이 사는 독열이나 프랑스 파리에 한국 포교당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종단척 치원에 서 참으로 심사숙고, 대책을 세워야 할 화급한 문제이다. 개인 개인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그런 일을 맡을 수 있는 스님이 아직은 없다. 유럽뿐 아니라 호주나 남미로부터도 필자에게 한국 스님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여러 번 들어용다.
소련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둥지에서 불교에 관심있는 이들을 모아 강연과 좌담회를 가진 일이 있다. 두시간정도의 대화 끝에, 그들은 불교언이 되고 싶으니 불자가 되는 의식을 행해 달라고 부탁했다. 워낙 외국인 포교가 생활의 전부를 차지하다시파한 필자로서도, 물론 반가우면서도 당황스러웠다. 외국인 포교 현장에서 얻은 경험으로는, 그들이 불상에 절을 하는 것도 근일 년이결린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였기 때문아다.
이는 서양인들에게 뿌리깊이 그릇 박힌 우상숭배에 대한 배타섬에서 비롯된 것으로, 필자는 그것을 오히려 당연시하고 있었는데, 그들 소련의 예비(?) 불자들은 불과 몇 시간의 불교에 관한 대화 뒤에 바로 불자가 되고 싶다고 보리심을 낸 것이었다. 불상도 없는 상황이라 책에 있는 부처님 사진이나마 준비혜 놓고 참귀의와 반야심경 등을 독송하고 절을 시키고 해서 즉석 의식을 치른(?) 일이 있다. 그러나 필자에게 더 놀라웠던 것은 그들의 다음 말이었다. 그들은 그곳에 그들같은 이들이 그날처럼 몇십명에 불과한 것이 아니고, 만약 그곳에 한국 포교당이 생긴다면 수백 ·수천명이 올 것이니, 부디 빠른 시일 내에 그곳에 한국 스님을 보내 불교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공산국가, 얼어붙은 추운 땅. 그래서 불교와 같이 자유로운 사상에 대한 일체의 허용은 물론 사랍 사람의 종교와 진정한 삶의 가르침에 대한 열망까지도 얼어붙어 있을 것만 같았던 땅, 소련 ! 그런 땅에서 그틀은 절실한 마음으로 내게 요청을 했고, 내 마음의 그때의 뭉클함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내 속에서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소련사람은 해인사 방장스님의 ‘자기를 바로 봅시다’라는 책을, 또 다른 이는 중국의 대선사임제스님의 ‘임제록’을 번역하고 있었다. ‘황금벌판과 같이 벌써 누렇게 익어〔초발심〕 베기만 하면〔포교〕되겠구나. 밥상〔조건〕이 다 차려져 있어서 숨가락〔포교할 스님〕만 들고 와 먹기만 하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소련에서 돌아온 뒤, 여러 스님들께 한국불교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한번 마음을 내어 외국에 나가 포교도 하고 자기 공부를 해 볼 의사가 없는지 물었을 때, 불행히도 한 사람도 긍정적인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중에는 간청에 사정까지 해봤으나 반응은 차가웠다. 심지어는, 한국 내에서도 할 일이 많은데 외국에까지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었다.
여렇게꺼지 우리 한국스님네들은 원력이 없고, 세계척인 안목이 없는 것일까? 불교는 그렇게 따지자딴 결국 외래종교가 아닌가、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여러 나라에 전래되어 많은 이들의 삶의 방향과 시각을 바로 잡아-준 것을 현대에 적용시킨다면 곧 ‘국제포교’인 것이다.
외국에서 포교를 하는 데는 어학에 어려웅이 있겠으나 처혐l는 교만들만을 상대로 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통역자를 두고서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개 필자는 관광이라도 좋으니 되도록 많이 나가서 외국의 불교국가어l서는 어떻게 수행하고 포교하고 있는지 보고 오라는 권유를 스님들에게 하고 있다. 그 가운데는 필자의 권유에 따라 스리랑카와 인도·일본등지에서 현재 유학을 하는 스님들도 있다.
아무쪼록 많은 스님이나 신도들이 견문을 더 넓혀야겠다. 그것은 결국 불교의 자산이 되는 것이고, 해외경험을 통해 해외포교에도 관심과 자신과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 말씀에, 모든 것은 무상하여 항상 변한다 하셨다. 볼법의 흥하고 쇠함도 마찬가지이다. 각 나라에서 이런 무상함의 흐름,을 거듭 겪어온 불교가 지금은 홍성의 물결을 타고 현대 과학문명의 발달에 힘입어 더욱 빠르게 세계에 퍼져가고 있다.
필자는 50년 후가 될 지, 백 년후가 될 지 몰라도, 언젠가 부처님의 가르침어 서양에서도 한번은 꽃필 날이 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것은 시대의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많은 불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능력있는 이들이 냐와야 한다.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소중한 불교유산을 세계인들과 함께 나누는 것은 아를다운 작업이 아닌가?
내일 다시 소련에 사찰을 건립하는 일로 출국하는 와중에 급히 글을 쓰다보니, 한국불교의 자세한 외국포교 현황보다는 필자 개인의 감정이나 주관에 치우 쳐버리지 않았는가 하는 우려가든다. 그러나 이 우려도 사후약방댐에 불과할 터. 단지 이것이 현실적인 한국불교의 현 모습이라 할지라도, 그 위상을 바로 세워줄 눈푸른 불자님들의 원력이 머래의 해외포교라는 나무를 건실하게 가꿔갈 것올 바랄 따름이다.
원명스님은 해인사 성혈스님 휘하에 출가하여 이십여년의 선원안거를 거쳐 스리랑카와 영국 등지에서 남방불교와 서양불교를 공부하였으며. 지금은 서울에 연동국제불교 교회관를 얼어 해외포교에 전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