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바람이 한 차레 이 땅을 스치고 지나갔다. 고해라 불리는 이 사바세계에는 늘 시비와 선택의 갈림이 존재한다. 이러한 시비와 선택에서 더러는 많은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곤 한다. 사람들은 본말이 뒤바뀐 결과가 나왔을 때 잠시 어리둥절하게 된다. 그러나 곧 그러한 결과에 분노하고 일그러진 상황을 바로잡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은 정당한 것으로서, 사람 살이의 흐름은 이런 노력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이를 지켜왔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원칙이 예외일 수는 없다. 옛말에도 대중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오래토록 속일 수는 없다고 하였다. 꽃이 지고 잎마저 떨어진 장미나무를 아무리 가시나무라고 우겨도 봄이 오면 잎이 나고 또 꽃이 피는 것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어서 사회와 격리되어서는 살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회와 함께한다. 어찌보면 사람의 일생은 사회의 일부분으로 시작되어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다가 소멸해 가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흔히 서양의 복지 정책을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로 대표한다. 사람의 일생을 철저하게 관리한다는 말로 표현을 바꿀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사람들 개개인의 모임이어서 사람이 중심이 되어 유지되므로,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생각은 이미 고전이다. 이제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에서 필요한 그 무엇인가가 되려고 교육받으며 개인의 인격보다는 사회 구성원으로의 가치에 더 큰 의미를 두게 된다.
전쟁과 기아, 질병은 인간사회의 삼대 재난이다. 이러한 재난은 문명의 발달에 따라서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요즈음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는 제삼세계 국민들의 기아로 인한 죽음과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 분규와 종교 전쟁이 세계의 현실임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서구 선진국은 굶주리는 지구 인민들을 충분히 배부르게 할 수 있을 만큼의 음식 쓰레기를 날마다 버리고 있으며, 종교의 가르침이 사랑과 봉사와 평화를 말하고 있는데도 그들은 손발을 피로 물들이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전쟁과 분규는 대부분 국지적이었고 기아와 질병도 자연의 재해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재해들은 대규모적이고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며 인간에 의한 것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가히 지구촌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은 현실이다.
이러한 세계적인 조류에서 우리 민족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화합을 중시하던 우리 민족에게도 지방색이란 나쁜 병이 침투해 오고 있으며 종교 갈등이 늘어가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이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려고 지방색을 이용하고 종교갈등을 조장하는 술수에 말려들어 남의 장단에 춤을 추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만 가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우리의 삶이 진정 우리 뭇대로 이끌어지고 있는지, 또 우리가 믿고 있는 도덕률에 맞는지를 말이다. 과거중국의 조과 도림선사는 백낙천의 “도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뭇 좋은 일을 행하는 일”이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백낙천은 “그런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하며 조소를 보냈다. 그러나 도림선사의 이어진 말은 백낙천의 입을 다물게 한다. “삼척동자도 알 수는 있으되 팔십 노인도 능히 행하기 어려운 일이다”오늘날 사람들은 과거보다 정보가 훨씬 많은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대중매체인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비롯하여 인쇄매체로서 일간지와 주간지, 월간지 등의 정기 간행물들과 각종 부정기 간행물들이 홍수처럼 넘쳐나고 있다. 이렇게 물결치는 정보의 홍수 가운데는 알지 못하면 바보취급을 받을 만한것도 있고 아예 사회 생활에 장애를 가져올 만한 것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들이 모두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님에 틀림없다. 오히려 대부분의 정보들은 우리 생활과는 직접적인 연관이나 상관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필요(?)에 따라서 정보의 물결은 끊임없이 몰아치며, 이러한 상황은 더욱 더 심화되어 가고 있다. 이 필요들은 그 나름의 주장과 정당성을 가지고 있으며, 새로운 가치 체계를 수립하려는 목적 의식들이 엿보이곤 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어떤 특정 개인이나 단체에서 그들이 뜻하는대로 가치 체계를 수립라려고 때로는 간헐적으로 때로는 지속적으로 특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보들은 얼핏 보편과 원칙에 기초하여 미래 지향적인 듯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정보들은 궤변이 가지는 특징의 하나인 논리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심정적으로는 공감이 가지 않는 특징을 지닌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들이 누적되어 제공되고 여기에 대한 정당성들이 강조될 때 많은 사람들은 가치관에 혼란을 가져오게 되고 뚜렷한 분별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앞에서 말한 도립선사의 말씀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도는 삼척동자의 시각으로도 능히 알 수 있을 만한 것이다. 어떠한 상황이라도 삼척동자의 눈으로 보면 옳고 그름이 뚜렷이 드러난다. 순수한 판단 기준에서는 어떠한 편향이나 왜곡도 그 실체를 숨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상식의 선에서 현실을 보자고 하는 것이다. 자신의 지역 연고와 종교 편향이나 소속된 조직의 시각에서 보는 것은 분명 순수한 기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은 지신도 모르는 사이에 순수한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빼앗기게 되었다. 사회화라는 말이 가지는 본디 의미가 개체로서의 인간이 올바르게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교육되고 길러져 하나의 인격체로 형성되게 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이러한 원칙들이 철저하게 지켜진다면, 순수한 판단 기준의 혼동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이기심이란 것이 있다. 이 이기심이란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고 근본적으로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는 자아충족에의 욕구인 것이다. 그러나 이 자아충족의 욕구가 지나치게 커지면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일차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사회와 자연에는 각자에 알맞은 몫이 있는데, 그것을 어느 한쪽에서 넘치게 가지려 하면 질서가 깨어지고 마찰이 일어난다. 빼앗긴 쪽에서는 제 몫을 찾으려고 투쟁하게 되는데, 이 투쟁의 결과로 잃었던 것을 찾는다고 해도 서로 불신의 벽이 생기고 만다. 만일 되찾지 못한 경우가 생긴다면 빼앗은 쪽에서는 자신의 욕망의 울타리를 더욱 견고히 하며 일면으로는 더욱더 빼앗으려고 나쁜 꾀를 쓰게 될 것이며, 되찾지 못한 쪽에서는 더 깊은 패배와 좌절감에 빠질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더 높은 투쟁 의지를 불태우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회를 대결 구도로 몰아가고 결국 사회 자체의 존립에도 크나큰 장애 요인이 된다.
근래 우리나라에는 지역병이라는 망국병이 나돌아 온나라가 크게 몸살을 앓았다. 이제 이 지역병이 차츰 기세를 잃고 치료되어 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병이란 애초에 없는 것이요 다만 조화와 균형을 잃을 때 올 뿐이다. 사람 몸에 일어나는 병도 신체가 불균형과 부조화에 처했을 때 온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자연 속의 기운을 적절하게 운용하여 균형과 조화를 찾아 병을 치료하려고 하였으며, 서양에서는 병의 원인을 분석하여 원인 제거를 통해 치료하려고 하였다. 지역병이란 병도 본디 없던 것을 누군가 의도적으로 사회의 질서와 조화를 무너뜨려서 생긴 것이었으나 우리들은 깊은 민족애와 상호 신뢰로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기고 있다.
이러한 때에 또 다른 불길한 기류가 이 땅에 스며들고 있는 것 같다. 다툼 아닌 종교 편협주의이다. 이 나라는 국교를 인정하지 않으며, 헌법에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된다고 뚜렷이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도 일부 종교 단체에서는 특정종교의 간판을 앞세워 나라를 이끌 정치인을 자파의 신자로 뽑아야 한다고 공공연히 외치며 종교와 정치를 한데 묶어 이 땅에서 종교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또 일부 정치인들도 이런 상황에 무관하지 않은 듯한 행동을 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우리는 뉴스에서 날마다 외국의 종교 분쟁 소식을 접하고 있다. 우리는 종교 분쟁에서 오는 해악들을 충분히 알고 있다. 종교는 많은 대중의 이익과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존재해야 하며, 그들에게 구원의 이름 아래 대립과 투쟁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특히 종교라는 이름의 집단 이기주의가 싹튼다면 개인의 이기심이나 이기주의가 주는 해악의 몇 곱절이나 되는 불행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전 국민의 관심을 모았던 휴거 사건도 무난하게 지나갔고 일부 광신도들에 의한 특정 종교의 성보에 대한 훼손사건도 우리는 잘 이겨 나가고 있다. 종교인들은 근본적으로 자기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한다. 가장 좋은 뜻과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이 종교인들의 사명이 아니겠는가. 자칫 자파의 작은 이익이나 세력 확장을 위해 큰 분란을 부르지 말자. 정치인들도 자신들어 가지는 위치와 역할을 돌이켜보아야 할 것이다.
행여 국민의 바람을 잘못 인식하여 민족에 누가 되는 일을 하면 안 될 것이다. 본말이 뒤바뀌면 바로잡는 데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 우리는 쓸데없이 힘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큰바람은 지나갔다. 돌이켜보아서 잘못된 일들은 고쳐나가고 때 묻은 것은 닦아내자. 그리고 바로 보자. 이 나라와 세계가 처한 상황과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곳을 가슴에 사무치게 바라보자.
주경스님은 동국대학교톨 졸업하고 수덕사로 출가하였다 지금은 해인사 승가대학 대교반에서 수학하는 확인스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