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는 초목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특이한 차(茶)를 만든다. 그때는 결제반산림이 끼어 삭발 목욕을 한 날이였는데, 오대산에 많이 있다는 마가목(馬價木) 차가 나왔다.
“차 향기가 특이한데 무슨 차입니까?”
다각실 안에 대여섯이 먼저 자리잡고 앉아서 시음(試餘)하다가 누가 물었다.
“마가목 차라고 하는데 이주 귀한 차입니다.”
다각스님이 대답하였다.
“마가목? 그것 참, 이름도 특이합니다.”
“옛날에 말이나 소나 쌀이 시장에서 돈 대신으로 쓰일 때 지어진 이름인데, 말값에
해당할 만큼 값진 차라고 해서 말마 (馬), 값가(價), 나무목(木)자를 붙인 게지요.”
“그런데 이것이 여기 회양산 봉암사에 있단 말이지요?”
“예. 오늘 낮 정상을 오르던 중에 마가목을 발견하였는데, 딱 한 그루뿐이었지요. 가까이 가니 나무 향기가 나서 그냥 알아보았습니다.”
“향기라니요?”
“예, 저기, 살구씨 있지 않습니까? 그 살구씨 향기와 아주 비슷하지요.”
이런 설명을 들으면서 나도 마가목 차를 한잔 마셨다. 맛과 빛깔과 향기가 과연 제 모습 그대로다. 설탕은 물론 다른 첨가물이 없는 게 더욱 좋다. 절에서 마시기에 제격이라는 생각에 다시 한잔을 마셨다. 목에서 넘어가는 느낌 또한 그만이다.
“오대산에는 마가목이 흔해요?\"
“얼마 전까지는 흔한 편이었는데, 그동안 수난을 당해 멸종되다시피 했지요.”
“저런, 너무 잘난 나무라 탈이 붙은 게로군.”
“사람 못된 게 중 되고, 중 못된 게 수좌되는 격이군, 그래.”
“허허허, 하하하.”
한바탕 웃음꽃이 피었다.
다각실과 마주한 구룡봉(九龍峰)은 언제 보아도 좋은 덕산(德山)이다. 무덤덤한 산세가 폭 익은 마가목 차맛에 비교 된다고나 할까. 장엄하고 수려한 산세는 젖혀두고라도, 그저 제모습을 지키고 있는 게 마치 묵묵히 앉아 있는 수좌와 같은 자세다. 산 깊숙한 곳에서 용이 꿈틀거린다고 하여 붙은 산명 (山名)의 이미지 그대로가 구룡봉의 산 모습이다.
“오대산에서 살았어요?.”
“아닙니다. 문중이 그쪽이라 간혹 들리는 편입니다.”
“어느 스님 시자 되시는지요?”
“두루 보(普)자. 문 문 (門)자 스님 아십니까? 그 스님이 저희 노스님 되십니다.”
“아, 그 스님이라면 이 봉암사 도량에서도 정진하셨지요.”
연세가 쉰이 넘은 대덕 스님들은 대개 보문스님을 기억하고 있다. 보문스님을 아는 이는 모두 견처(見處)가 분명하고 수행정신이 투철하여 수좌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스님으로 존경하고 있다. 보문스님의 일화 또한 귀감을 살만한 것으로, 여기에 그 몇 가지를 적어본다.
1. 공양주의 법문
속리산 법주사 선방의 결제가 끝나고 자자(自資)를 행하는 날 저녁이었다. 이날은 큰방에 가사를 수한 대중 스님이 운집하여 어른 스님을 모시고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고 다시는 허물을 짓지 않겠다는 결심을 보이는 날이다. 앉은 순서대로 자자가 행하여 졌다. 그런데 본뜻과는 달리 다른 이의 허물만을 잔뜩 드러내는 쪽으로 흘러가다가 뒷쪽 공양주(供養主) 스님의 차례가 왔다.
옛부터 덕이 있는 스님은 공부가 익어갈수록 어려운 소임, 하소임 (下所任)을 맞곤 했는데, 이때 공양주는 바로 보문스님이었다. 스님이 입을 열었다.
“이곳이 보은군(報恩那)이요. 그런데 불보살님의 은혜와 시은에 보답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곳이 속리면(俗離面)이요. 그런데 세속을 벗어나 출가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곳이 법주사(法住寺)요. 그런데 정법에 안주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조용하면서도 힘있는 목소리가 큰 방안에 울려 퍼졌다. 대중들은 모두 법문도 그런 큰 법문을 듣기는 처음이라고 감탄하며 공양주 스님을 존경하는 마음을 다시 한번 갖지 않을 수 없었다.
2. 폐 수술
보문스님은 폐병 환자였다. 제방선원에서 입승(立編. 선방의 대표자)을 거친 납자들이 모여 결제한 자리에서도 입승으로 꼽힐 만큼 그 수행이 인정되었으나 불행하게도 건강이 좋지 않아 고생이었다.
병은 전생의 과보로 업장을 녹이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보문스님에게는 그 정도가 심하였다. 그는 정신력 하나로 망가져내리는 육신을 버려내면서 조금도 아픈 내색을 밖으로 드러내보이는 일이 없었다.
이제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까지 병세가 악화되어 폐 수술을 하기 위해 입원하였을 때의 이야기다. 그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전하고 마취 없이 수술에 들어갔다.
“내 얼굴 표정이나 몸가짐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잘 살펴보고, 나중에 그대로 일러주기 바란다.”
그는 수술중 갈비뼈 세 개를 도려낼 때만 약간의 반응을 보였다.
첫번째 갈비뼈를 도려낼 때에는 약간 눈살을 찌푸리다가 멈췄다.
두번째 갈비뼈를 도려낼 때에는 눈살을 찌푸리고 몸을 약간 뒤트는 듯하다가 멈췄다.
세번째 갈비뼈를 도려낼 때에는 ‘으음’하고 신음 소리를 가느다랗게 내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전해들은 보문스님은 깊이 탄식을 하면서,
“내 공부가 기껏 이 정도인가, 물러나도 한참 물러났군!”
하고는 더욱 열심히 가행 정진에 들어갔다.
3. 부처님 공양
사시마지 예불 직전까지 보문스님과 한 수좌의 법담(法談)이 계속되었을 때였다. 먼저 상대 수좌의 물음에 시원시원히 대답을 마친 보문스님이 이번에는 질문을 던질 차례였다. 헌데 사시마지 울리는 종이 법당에서 울려나와 법담이 끝날 판이었다. 이때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는 상대 수조에게 보문스님이 일렀다.
“지금, 우리가 부처님께 마지 공양을 올리러 가는데, 부처님은 마지 공양을 받아자십니까 못 받아자십니까?”
“……”
상대 수좌는 갑자기 멈칫하고서 입을 떼지 못한 체 엉거주춤한 모습을 하였다. 보문스님은 상대 수좌를 지극히 바라보면서 다시 일렀다.
“부처님은 마지를 받아자십니까, 못 받아자십니까?”
아무 대답도 없어 잠시 조용하였다. 그러다 보문스님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법당으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