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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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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89년 05월 87호
격화되는 민주 대 반민주 싸움
17년 만에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된 노태우 씨는, 지금까지는 현상적으로나마 대다수국민의 한결같은 요구인 민주화로의 흐름에 끌려온 편이었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서서히 그 모습을 변화시키더니 올해에 들어서서는 노골적으로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중간평가 공방전의 와중에서 국민의 불안감을 부추기기 위한 서울지하철노조의 파업 유도와 대대적인 공권력 투입, 국민의 신임에 자신이 없자 야당과 협잡한 3∙20 중평 유보, 그리고 3∙25 문익환목사 평양 방문을 계기로 벌이는 민중과 민주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합 선풍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광주민주화항쟁에 대한 정확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5공비리 청산, 악법개폐 들과 같은 국민들의 민주화실현 요구에 대해 명확히 거부하는 노정권의 대답이다. 이제 노정권은 교육계, 출판계, 문화계, 노동자, 학생, 재야 등이 통일, 민주화, 생존권, 기본권을 위해 벌이는 투쟁과 주장에 대해서 ‘공권력 회복’과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앞세우며 불법적인 공안수사합동본부를 설치하고 전가의 보도처럼 국가보안법을 적용, 대량 연행, 대량구속의 악순환을 재연했다. 타신문사에서는 취재기사까지 실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겨레신문사가 창립 1주년을 기념해 북한취재를 ‘기획’했다는 이유만으로 이영희 논설고문을 구속하고 관계자를 연행, 불구속 입건하는 언론 탄압마저 자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공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현정권은 교육의 민주화를 주장하던 부산교대 이경현 양이 경찰의 방패에 맞아 뇌사상태에까지 이르게 하였다. 성남의 노동자 김윤기 씨의 분신과 날마다 신문의 지면을 메우는 영장 없는 연행, 압수, 수색, 그리고 5공 때보다 더 많은 시국 관련 구속자를 보면서 온 국민은 6공화국이 5공청산은 커녕 5공으로 회귀함에 아연해 하면서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특히 7∙7선언으로 북한을 민족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북한과의 교류는 물론 북방정책을 통해 사회주의국가와 접촉을 활발히 시도하던 현정부는 문 목사의 평양방문을 계기로 이데올로기 선전을 강화하여 수구반공세력을 부추기면서 정국을 좌∙우익 또는 보수∙혁신의 대결로 몰아가고 있다.
이와 같은 폭압적인 탄압과 공포분위기 속에서도 민중들의 권리쟁취투쟁과 민주단체, 학생, 종교인, 지식인들의 자주, 민주, 통일을 향한 전진파 투쟁은 더욱 폭넓게 전개되고 있다 정부에 대해 비판하는 시국성명과 농성들이 연일 터져나오고 있음은 87년 4∙13 호헌조치 후 각계 각층에 의해 성명 발표, 농성들이 물밀듯이 전개되었던 것과 매우 유사한 상황이다. 이로부터 두달 뒤에 우리 국민은 위대한 투쟁, 6월 항쟁을 낳았고 이로 말미암아 직선제 개헌을 쟁취했던 기억이 국민의 마음에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시국은 민주화로의 흐름 속에서 현정권 등 반민주세력의 역류로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화로 계속 전진하느냐, 아니면 일시적으로 후퇴하느냐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으며, 이로 인한 민주 대 반민주의 싸움이 치열해진 국면이다.

활발해진 불교계의 시국성명
격돌하는 정국의 기류는 불교계에도 그 영향을 크게 미쳐서 시국에 대한 성명발표가 전례 없이 잇따르고 있다. 시국성명은 통상 재야불교운동단체에서 반정부입장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던 방법이었으나, 요즈음에는 친정부적 성향의 성명발표가 활발해지고 있다.
주로 문 목사 방북을 규탄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단체는. 3월 28일 「사단법인 한국불교반공연합회(회장 : 이무웅)」, 3월 31일 「민족통일 불교협의회(회장 : 박청하)」, 4월 4일 「대전 불교사암 연합회」, 「대전충남 향승위원회」, 「전국불교 신도회 대전충남지부」의 공동, 4월 6일 「대현불교청년회(회장 : 김용원)」등이며 4월 11일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장 서의현 스님 명의로 발표된 시국에 대한 전반적인 입장 표명으로 이어진다. 위의 성명들은 문 목사의 방북이 개인 자격으로 이루어진 것을 소영웅적 매국행위 등으로 규정하고, 이런 행위에 대해 국민들은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문 목사의 사법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불교관계 신문에 1면 머릿기사로 보도된 서 의장의 성명은 “현하 우리 사회는 민주화를 틈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고 파괴하려는 급진적 좌경 세력의 확산과 극한적 대립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는 노사분규와 학원사태, 현실을 부정하는 환상적 통일논의, 사회 기강의 해이로 말미암아 파생되는 강력범죄 등으로 국민의 불안이 가중되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현실을 진단하고, ■좌경, 용공세력의 확산 방지 ■대북창구의 정부 일원화 ■대화로써 노사분규를 조속 해결 ■학생들의 화염병시위 자제 ■공권력 확립과 민생치안 회복 ■정치인은 색깔을 분명히 할 것 등을 주장했다.
그런데 ‘민중불교’를 표방하는 재야불교운동단체와 소장승려의 입장은 이와는 정반대이다. 이들은 4월 6일 애국승려 108명 연명으로 발표된, ‘문익환 선생과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간에 이루어진 공동성명을 적극 지지, 환영한다’는 제하의 성명을 통해 “통일조국의 내일을 온 몸으로 개척해 나가는 애국민중의 노력이 현정권의 반통일적 처사에 의해 좌절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문익환 선생의 방북 결행은 충격적 사건이며 남북간에 쌓여온 반목과 불신을 해소하고 민족의 대화합을 이룩할 수 있는 중대한 계기를 조성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사건이다”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현하 논란이 되고 있는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상호존중 및 연방제 통일방안의 적극 검토 ■문익환 선생 사법처리 반대 ■반통일 악법과 국가보안법의 즉각 철폐 등을 주장했다.
「통불협(의장 : 지선)」 소속 간부, 회원 30여 명은 4월 5일 현대중공업 공권력 개입을 규탄하는 철야 농성과 4월 24일 ■민족민주운동 탄압중지 ■합수부 해체 및 구속인사 석방 등을 주장하는 3일간의 농성을 전개하였다. 통불협 외에도4월 12일 「민중불교운동연합(의장 :서동석)」의 시국생명, 19일 4월 혁명 29주년을 기념하는「대승불교승가회(회장: 송산)」와 「정토구현전국승가회(회장 : 청화)」에서의 성명 등은 ■북한과의 자주적 교류 보장과 국가보안법 철폐 ■한겨레신문탄압 중지 및 이영희 논설고문 석방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중지 및 구속노동자 석방과 수배 해제 ■이부영 전민련상임공동의장 등 민주인사 석방 ■현정
권의 퇴진 등을 주장했다.

시국성명의 배경과 불교계 신문의 보도 태도
서의현 조계종총무원장스님의 시국에 대한 이례적인 성명 발표는 최근 불교계와 정부간의 밀착과 매우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불교계의 기성 종단측은 작년 11월 말경 단군 이래 최대 도적으로서 여론의 표적이 되어 온 전두환 씨 부부를 백담사에 은둔시키고, 5공 비리와 관련한국회의 10∙27법난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 계획에 대해 취소요구공문을 보냄으로써 5공 비리와 광주문제를 조속히 매듭지으려는 정부의 입장에 적극 동조하더니, 결국 친정부 시국성명까지 발표한 것이다.
최근 정부의 대불교 정책은 매우 호의적인 편이다. 작년 말 강영훈 국무총리의 발표에 이어 올 초 국방부에서의 경위 설명회 등으로 불교계와 정부의 최대 난제인 ‘10∙27법난문제’를 일단 희석화시키는 대신 불교방송국 인가, 중앙승가대학 인가 등 소위 불교중흥 불사에 정부가 협력하고 있으며, 작년 봄부터 시작되어 장기화되고 있는 봉은사 분규에 대해 3월 30일 경찰이 봉은사 경내를 수색하여 쇠파이프 등 각종 무기를 제거함으로써 이보다 보름 전쯤 서 원장에 의해 다시 봉은사 주지로 임명된 대운스님측이 4월 3일 봉은사를 강제 입주할 수 있는 결정적인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지난 2월 25일 변밀운스님측에 의해서 주도된 것으로 알려진 통도사 전국승려대회가 70여 명의 승가대중만이 참석하여 그 세가 매우 미미함을 스스로 드러내자 정부로서도 서 원장에게 낙점을 한 듯하다. 서 원장은 3월 3, 4일 제 95회 임시중앙종회에서 5월까지 봉은사 분규를 해결하지 못하면 물러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렇듯 기성 종단과 정부는 최근에 와서 상호 실리를 취하는 관계를 정립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불교계 신문도 한결같이 친정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불교신문, 법보신문, 주간불교 등 불교계 신문의 3, 4월 시국관련 기사를 보면 ‘문 목사방북-그의 모험주의는 규탄받아야 한다’는 등 문 목사 방북건에 대해 비난하는 내용 일색이었으나 애국민주운동과 민중들의 생존권 투쟁이나 언론, 출판, 통일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이 미흡하다고 여기고 있는 5공비리와 광주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그 핵심적 책임자인 전두환씨 부부에 대해서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마치 그들이 수도자의 표본인 양 그리고 있다.

역사와 민족 앞의 불교
한국불교사의 최대 치욕이라고 일컬어지는 10∙27법난의 진상을 명백히 밝히는 일을 방송국, 승가대 인가동과 맞바꿀수 있는가. 용은사분규 등에서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국민과 불교인의 의사를 왜곡해도 되는 것인가. 시대의 징표이자 여론의 향도자로서 역할을 해야 할 신문이 친정부(권력)의 입장만을 표방해도 괜찮을 것인가.
지금 우리 민족은 민주화냐 독재로의 회귀냐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음은 앞에서 말했다. 그런데 87년 4∙13호헌조치를 찬성함으로써 대다수 국민과 불교인에게 지탄을 받았던 현종단 대표가 자신의 실리를 위해 다시금 반민중적, 반역사적 행위를 하고 나선 것은 매우 개탄스러운 일이다. 불교계가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 대의명분과 자존심을 모두 팽개쳐 버린 현실 속에서 과연 방송국을 건립하고 문교부 인정 각종 대학을 건립한다고 해서 불교가 중흥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불교가 사는 길은 부처님의 정법을 지키고(진리 추구와 높은 도덕성 유지) 잘못된 것을 타파하여 바른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시류에 편승하여 재물을 좀더 얻으려고 하는 것은 종교가 할 일이 아니며, 더욱이 이런 것이 불교의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을 외면하고서, 더구나 그들의 고통을 딛고 서서 중흥하는 불교는 오래가지 못한다.
따라서 역사와 민족 앞에 떳떳이 서서 자주와 민주와 통일과 인간해방을 위한 대불사로서 뭇중생에게 언제나 의지처이며 귀의처인 불교가 되기를 서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