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릿광대들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꽁트 - 정찬주
1989년 05월 87호
김 선배는 자칭 디자이너였다. 그리고 어느 땐가는 자신이 디자인한 의류와 신발들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라며 호언장담했던 몽상가이기도 하였다. 아뭏든 김 선배의 아이디어는 우스갯소리를 넘어 기발하기조차 하였다.
행운을 안겨 준다는 부적을 의류나 신발에다 새기자는 것이었다. 등산화에다 부적을 새기면 산행중 불의의 사고를 면할 것이고, 달리기 선수나 권투 선수들의 신발에 그것을 새기면 메달을 따는 데 유리할 것이고, 학생들의 신발에 새기면 세칭 일류학교에 진학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김 선배의 주장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시집 장가 못간 노처녀, 노총각들의 구원책까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처녀들의 브래지어는 물론 팬티에도 새기고 노총각들의 저고리 속이나 셔츠에도 새기자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아들 낳기를 학수고대하는 부부의 이부자리에도 부적을 디자인하자고 주장했다.
김 선배의 주장은 그럴듯했다. 부적의 효험이 꼭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그렇게 되기를 노력하면서 그런 기분을 갖고 사는 게 나쁠 것은 없다는 김 선배의 지론이었다.
그런데 김 선배의 아이디어를 사가겠다고 문의해 오는 회사는 한군데도 없었다. 그러나 김 선배는 결코 좌절하는 법이 없었다. 자신의 몽상을 금쪽 같이 아꼈다.
“이제는 내가 돈을 번 다음, 가칭 부적표 의류나 신발 공장을 차릴 수밖에 없다.”
어릿광대라고 불리던 김 선배에 대한 이런 기억도 떠오른다. 좀 지저분한 얘기지만 김 선배는 귀지(귓밥)를 잘 후벼팠다. 그의 여동생이나 동네 아이들을 불러들여 자신의 무릎에 눕혀 놓고 곧잘 귀지를 파주곤 했던 것이다.
“형, 더럽지 않아?”
“더럽긴 이놈아.”
“더러운 걸 왜 자꾸 파?”
“똥파리 같은 놈 봐라. 귓밥이 왜 생기는 줄이나 알고 너 그런 소리 하는 거냐?”
“……”
“아직도 그걸 모르고 있다니. 그러니까 똥파리 박사지.”
“뭔데. 수작 그만 부리고 말해 봐.”
“귓밥이란 말이다, 사람들이 하는 거짓말이 먼지하고 뭉쳐 생긴 거다. 알아들었으면 너도 빨리 귓속을 청소하란 말이다.”
그러니까 김 선배는 귓속에 들어 있는 거짓말을 파낸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무릎에 아이들을 눕히곤 하였다.
아이들은 김 선배의 말을 정말로 믿었던 것 같다. 김 선배가 귀를 만지고 있을 때면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짓곤 하였던 것이다. 김 선배가 물오른 버들가지를 꺾어 만든 피리로 반주를 하며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날리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을 맺지 못하고…”라는 노래를 불러댈 때처럼.
그 김 선배가 어제 귀국했다. 어떤 의미로는 출세를 해서 고국을 찾은 셈이다. 원래 김 선배는 광부로 취업해서 서독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김 선배의 성공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공항에 독일 대사관 직원 두 명이 나와 있었던 것을 봐도 대충 짐작이 갔다.
약간 대머리인 대사관 직원이 먼저 어눌한 우리말로 김 선배를 추켜세웠다.
“당신 나라 훌륭한 문화를 우리나라에 소개시킨 분입니다.”
도대체 광부로 떠났던 김 선배가 독일에서 무엇을 했길래 문화니 어쩌니 하는 것인지 나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석탄을 캐는 데 필수적인 일이라 한다면 삽질과 곡괭이질 말고 무엇이 더 있겠는가.
나는 대사관 직원을 올려다보며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대사관의 또 다른 직원이 어리둥절한 얼굴의 내가 이상한 듯 다시 말을 더듬거렸다.
\"한국과 우리 독일, 두 나라의 우호 중진에 기여한 분입니다. 그 분의 후배라니 영광입니다.\"
김 선배가 무슨 얼을 저질렀길래 이처럼 방정을 떠는지 점입가경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대사관 직원의 눈치를 보느라 집으로 돌아와서야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그래, 정말 형이 우리 문화를 독일에 소개시키고, 우호증진인가 뭔가를 했다는 말이오?\"
\"괜히 갖다 붙이는 말이지 뭐.\"
\"그럼 독일에서 무얼 했길래 대사관 직원들이 나와 방정들이우?\"
\"사실은 교민들 상대로 가마를 하나 만들어 우리나라에서 하는 식으로 옹기 장사를 했지. 반응이 아주 좋아 값싸고 위생척이라면서 독일 사람들까지…\"
\"허허.\"
김 선배의 식구들은 기가 막힌 모양이었다. 옹기라는 말만 틀어도 밥을 먹다 밥술가락을 놓을 정도로 부들부들 떨어왔기 때문이다.
사실, 김 선배가 독일로 간 것은 빚장이들의 성화에 견디지 못해서였다. 독일의 광부로라도 취업을 해서 빚을 갚겠다고 고국을 떠났던 것이다.
김 선배가 옹기 장사를 하겠다고 가마를 사들었다가 꼭 이 년 만에 그의 집문서까지 날려버린 까닭이었다 그 바람에 김 선배의 식구들은 거리로 나앉아야 했다. 당시 김 선배의 아버지는 동사무소 임시 직원이었는데 그 월급으로 망한 집 살림을 꾸려나간다는 것은 정말 어림없는 일이었다. 우리집 문간방으로 이사와서도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의 집 식구들은 한숨을 푹푹 쉬며 김 선배를 탓하곤 하였다.
“제까짓 놈이 무슨 사업을 한다고. 코 큰 놈들만 좋은 일 시켰지.”
코 큰 놈들이란 당시 우리나라 가마를 연구하겠다고 유학 온 서독 학생들을 말했다.
“그놈들하고 무얼 연구하네 싸돌아다니더만… 망할려고 노력했으니 망할 수밖에.
그러나 서독 학생들을 나무랄 일만은 못 되었다. 오히려 그들 덕분에 김 선배가 독일에서 쉽게 자리를 잡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실 김 선배가 광부로 취업해 독일로 간 것은 순전히 그들 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쨌든 김 선배의 우스갯소리는 여전하였다. 어젯밤에도 긴 여행의 피곤을 잊은 채 내게 우스갯소리를 했다.
“귓밥 후비는 귀쑤시개를 한번 개발해 봐라, 빌빌거리지 말고. 옛날보다 거짓말이 더 많아진 세상이니까 귓속에 묻은 마귀의 소리까지 털어내 준다고 광고하면 아마도 크게 히트할 꺼다!\"
그래서 나도 어릿광대처럼 한마디 대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적표 브래지어 팬티 공장은 언제 지을 거유?”
“……”
그러나 김 선배는 대답 대신 그 특유의 표정을 보여 주기만 하였다. 어린 아이의 티없는 웃음 같기도 하고, 이 빠진 노인의 욕심없는 웃음 같기도 한 미소를 따우고 있었다.
이러한 김 선배의 표정을 보시 중에서도 최상이라고 하는 안시(願施)라고 하는 것일까? 문득, 그런 생각어 번개처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