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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똥은 제가 누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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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앞의 잣나무 - 동봉 1989년 05월 87호
불교를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지 말자. 불교가 왜 어려운가. 세상에 불교처럼 쉽고 친근한 종교가 또 어디 있다고 어렵다고들 하는가. 불교는 분명히 어려운 종교가 아니므로 ‘불교는 어려운 것’이라는 관념부터 버리자. 그리고 새로운 마음가짐, ‘시골 선생님처럼 대하기 편한 종교’라는 생각을 갖고 한 번 덤벼 보자.
특히 교학처럼 어려운 용어를 쓰지 않으며 쉽고 정감이 있다. 마음이 어떻고, 아리야식이 어떻고, 오온백법(五蘊百法)이 어떻고 하면서 너저분하게 늘어놓지도 않는다.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하다. 진딧물 뒤에 개미 따라붙 듯 너저분한 게 전혀 없다. 얼음판에 바가지 밀어부치듯 아주 깔끔하다. 왜 이렇게 깔끔할까. 바로 우리네 삶의 언저리에서 소재를 찾아 지도(指導)하기 때문이다. 쉽게 맛이 느껴지므로 입맛을 다실 필요가 없다.

어느 날 조주종심(趙州從諗) 큰스님께서 납자에게 물었다.
“전에 이곳에 와본 적이 있는가?”
“와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입니다.”
“응, 그래. 차나 마시고 가게.”
다른 날 다시 한 납자에게 큰스님이 물으셨다.
“전에 이곳에 와본 적이 있는가?”
“네, 한 번 왔었습니다.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응, 그래. 차나 마시고 가게.”
이를 지켜본 원주(院主)가 큰스님께 여쭈었다.

“큰스님께서는 항상 스님네에게 물어서 와보았다고 하든지 와본 적이 없다고 하든지간에 ‘차 마시고 가라’하시니 그것이 무슨 뜻이옵니까?”
큰스님께서 원주를 부르셨다. 원주가 대답하자, “자네도 차 한 잔 마시고 가게나.”
하셨다. 아주 일상적인 대화가 아닌가. 마시고 먹는 일이야 가장 평범하고 쉬운 일이며 그러면서도 또한 요긴한 일이다.
조주종심 큰스님은 서기 897년에 백이십세로 시적한 엄제종의 대종장이시다. 778년 당의 조주(曹州)에서 학(郝)씨 가문에 태어나 성장해서는 남전보원에게 출가하여 법을 받았다. 임제(臨濟)나 덕산(德山)처럼 과격한 방법을 쓰지 않고 부드럽게, 그리고 문답을 통해 후학을 제접(提接)하셨다. 그래서 언전선사(言詮禪師)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하루는 한 젊은 객승이 조주 큰스님을 친견하고,
“저는 총림에 처음으로 왔습니다. 아는 바도 없고 하오니 큰스님께서는 가르쳐 주십시오.”
하였다. 큰스님이 대답 대신 되물으셨다.
“자네 공양은 어떻게 좀 했는가?”
“네, 방공 먹었습니다.”
“음, 그러면 발우(鉢盓)는 씻었겠구먼.”
“?…”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는 일은 너무나 평범하므로 우리가 이 두가지를 합쳐서 ‘다반사(茶飯事)’니, ‘항다반(桓茶飯)’이니 하는 것이다. 자칫하면 지나치기 쉬운 것에서 비유를 들고 소재를 택하여 학인을 제접하는 태도는 불교의 대종장들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매우 독특한 것이다.
먹는 것만큼이나 입는 것도 중요하다. 구태여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의 ‘의복에 관한 철학’을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의상이란 바로 인간의 문화와 문명의 척도이며, 역사의 디딤돌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조주 큰스님은 바로 이 옷에 관한 얘기를 통하여 후학을 교화하신다. 여기에 대한 일화를 ‘칠근포삼(七斤布衫)이니, 또는 ’만법귀일(萬法歸一)이니 하는 화두를 통하여 설명하곤 하는데, 살펴보면 이렇다.
한 젊은 납자가 조주 큰스님을 찾아와 물었다.
“온갖 법〔萬法〕이 하나로 돌아간다고 하는 말은 쉽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큰스님의 대답은 간단하면서도 엉뚱하다.
“내가 청주(靑州)에 있을 때, 옷을 한 벌 지었지 뭔가. 아, 그런데 그 옷의 무게가 일곱 근이더구만.”
뭐 그런 대답이 있냐고 반문할 만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법귀 일일귀하처(萬法歸一一歸何處)를 물었는데 느닷없이 청주에 있을 때 지은 적삼 한 벌은 왜 나오며 일곱 근이란 또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와 ‘일곱’이란 숫자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말인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숫자 놀음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의복’이라는 일용품에 있다. 어려운 문제 ‘법(法)’을 들어서 물었는데 조주 큰스님은 의복으로써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법(法)과 옷에는 어떤 관계가 성립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진리란 우리의 일상을 떠나서 따로 존재하지는 않으며, 결국 우리들의 일상생활에로 귀착되기 때문이다.
몸에 걸치는 것으로서 옷만큼 중요한 게 신발이다. 신발 만큼 우리를 보호해 주는 일용품도 드물 것이다. ‘두대초혜(頭載草鞋)’라는 공안을 보면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하루는 조주 큰스님의 스승인 남천보원(南束普願)은 동서 승당의 스님네들이 고양이를 갖고 서로 말다툼하는 것을 보고는 선뜻 고양이를 쳐들고서
“만일 누군가가 바로 이른다면 베지 않으리라.”
하였다. 대중들이 대답이 없자 남천은 고양이를 단칼에 베어 두 동강을 내고 말았다. 나중에 남천이 조주에게 이러한 사실을 얘기하니 조주스님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짚세기를
벗어서 머리에 이고 나가버렸다. 이때 남전이
“만일 조주, 자네가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텐데.”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공안들을 살펴보면 나름대로 거기에는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그냥 아무렇게나 지나칠 게 아니다. ‘차마시고 가라’는 얘기와 ‘짚세기를 머리에 이고 나간’ 얘기에서는 두 가지 견해가 긍정 또는 부정됨과 동시에 그 두 가지 견해로부터 초월함을 상징하고 있다. ‘차마시고 가라’에서는 두 객승을 통하여 거래(去來)상이 긍정되고 원주를 통하여 주(住)상까지도 긍정된다. ‘짚세기를 머리에 이고’에서는 동서 승당의 스님네 견해가 동시에 부정되고 조주를 통하여 그 두 견해를 부정한 주체마저 부정됨을 상정하고 있다. 두 가지 견해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발우와 옷이라는 아주 평범한 주제를 통하여 진리가 먹고 입는 생활을 떠나 따로 존재치 아니함을 표현할 때, 조주 큰스님은 바로 우리 보통 중생들의 가장 다정한 벗임을 느낄 수 있다. 먹고 입는 것은 이주 평범한 일이지만, 바로 이 평범한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단 며칠이라도 안 먹고 안 입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정작 불교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불교는 우리에게 실천이 뒤따라야한다고 가르친다. 실천이 없다면, 아무리 평범하고 고상한 가르침이라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공염불이다. 따라서 반드시 스스로의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 ‘제 똥은 제가 누어야 한다’는 얘기다. 남이 대신해서 똥을 누어줄 수는 없다.
어느 날 한 운수납자가 조주 큰스님을 친견하고는
“큰스님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저의 간절한 질문에 답해 주십시요.”
하였다. 큰스님이 말씀하셨다.
“어서 말해 보시게.”
“급하고 절박한 것이란 무엇입니까?”
“오줌 누고 똥 누는 일이 비록 사소한 일이지만 이 노승이 스스로 누어야 한다는 것이네.”〔問, 急切處, 靑師道, 師云, 尿是小事, 須是老曾僧自去始得〕
세상의 수행하는 자에게 가장 급한 게 무엇이겠나. 그것은 각자 스스로 힘쓰는 일이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자신이 닦아야 한다. 내가 배고프면 내가 먹어야 하고 마셔야 한다. 내가 춥다면 내가 입어야 하고, 내가 더우면 내가 벗어야 한다. 내가 마려우면 내가 누어야 한다. 남이 먹고, 마시고, 입고, 벗고, 배설하는 것으로 내가 만족할 수는 없다. 제 똥 제가 누는 것, 그게 곧 불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