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님,
오랜만에 서신으로나마 소식을 전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보살님을 뵈온 지가 벌써 햇수로 사 년이나 되는군요. 사 년 전에 만나뵐 때는 보살님께서 교단에 회의를 느끼시고 한동안 절에 나가지 않았던 때인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어차피 삶의 확인은 끊임없는 문제의식으로 회의와 절망을 극복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어느 곳엔들 문제가 없겠습니까. 다만 어떤 대상에 대한 문제의식이 행동으로 구체화되지 않고 문제자체를 피해버리거나 방치하는 사고가 우리의 삶을 ‘다람쥐 쳇바퀴’의 삶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적극적인 사고와 문제 해결의 실천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삶답게 하는 것이겠지요.
보살님, 오늘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더라도, 민족의 현실에 대한 국민들의 올바른 문제의식과 실천이 없기에, 아직도 통일에의 길이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 아닐는지요. 물론 지금까지 모든 매카니즘을 장악한 권력구조가 국민들을 도구화하는 교육으로써 국민들이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도록 한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문제의식이란 어떤 상황에 대해 안다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재작년의 6월 항쟁도 국민들이 독재정권의 속성을 비로소 알았다기보다는 구체적으로 느낌으로써 이루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는 것과 느껴지는 것과의 차이는 엄청나지요. 안다는 것은 현실을 정지된 상태에서 바라보려고 하는 태도, 곧 정지된 현실과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이중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되, 느낀다는 것은 생동하는 현실과 내가 일체화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정권이 아무리 언론과 출판을 장악해서 그 무엇을 숨기려고 할지라도, 살아 있는 현실과 움직이는 생활 속으로 철저히 부딪쳐 들어가면 좀더 실제적인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웃들의 삶에 대한 철저한 느낌과 확인이야말로 우리들의 문제의식을 실천의 열린 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겠지요.
보살님, 문제의식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굳이 개인과 사회를 둘로 나누어 본다면, 개인에 대한 문제의식은 자기성찰이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정치의식으로 표현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을 불교식으로 풀어서 수행을 통한 해탈의 정신이요, 정토를 건설하려는 사바세계의 구조적 관계에 대한 인식이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개인의 성찰과 사회에 대한 정치의식은 서로 떨어지고 나누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둘은 함개 어루러지고 관계되어질 때, 더욱 건강하고 탄탄해진다는 사실을 꼭 유념해야 되겠습니다. 해탈과 정토가 둘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보살님, 제가 느닷없이 사 년 전 보살님의 모습에 빗대어 이렇게 서두를 장황하게 늘어 놓아 죄송스럽습니다. 그러나 보살님의 그 회의와 절망이, 다름이 아니라, 불교도가, 특히 승려들이 민주화에 동참하기는 커녕 종권싸움이나 주지싸움으로 일관함에 대한 한탄이었음을 상기할 때,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자 함도 그것과 다르지 않기에 양해가 되리라 여깁니다. 그렇게, 부디 저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데에 동참하였으면 합니다.
보살님, 저는 우리 민족에 대해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예찬하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들어와서는 이 말이 도대체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이 말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1,100여 대의 핵무기와 11개의 핵발전소를 갖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평화와 무시무시한 살상용 핵무기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으며, 누구의 말처럼 핵무기가 어떻게 평화를 지켜줄 수 있겠는지요? 얼마 전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건을 보십시오. 전쟁무기로 쓰인 것도 아니요 다만 산업용으로서 건설적인 목적으로 쓰이던 핵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부주의로 말미암아 방사선이 누출되어 자연이 파괴되고 수십만 명의 사람이 죽고 다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어째서 우리나라에서는 핵발전소가 자꾸 세워지는지 그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신문에 발표된 것을 보면, 우리나라 정부도 핵실험 금지조약과 핵확산 금지조약에 가입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변 국가들로부터 전쟁의 위협을 받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는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실질적으로 한국의 군사작전권을 쥐고 있는 미국에 의해 핵이 배치되고 있음을 뜻하는데, 평화의 수호사임을 자처하는 그들이 어떻게 남의 땅에 이렇게 마음대로 핵무기를 갖다 놓을 수 있는 걸까요. 1983년 세계은행과 유엔개발기구에서 작성한 레비보고서와 미국의 멀티내쇼날 모니터지의 \'82년 2월의 한 기사는 \"현재 한국에서 가동중이거나 건설중인 원전은 안전성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자국의 재고품을 팔기 위해 한국정부에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70년대 이후에는 신규 건설이 거의 없음에서 핵발전소에 대한 세계적인 추세를 알 수 있는데, 오로지 우리나라만이 핵발전소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보살님, 히로시마나 체르노빌 사건은 우리에게 핵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인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주위에 널려 있는 핵을 보면서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핵무기가 남북의 대립상황 속에서 이땅을 지켜준다는 막연하고도 엉뚱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중학교에 다니던 때입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6.25 전쟁 때 맥아더가 핵무기를 사용했다면 통일이 될 수 있었지 않았느냐고 선생님한테 질문한 적이 있었지요. 그때 선생님께서는 핵무기를 사용하면 우리나라는 미, 소의 핵실험 대상으로 전락되어 개미 하나 살 수 없게 된다고 대답해 주셨지만, 나는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부끄러운 질문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때의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도 뜻밖에 많은 것 같습니다. 이는 정부가 핵문제를 국민에게 올바로 알리지 않고 사실을 은폐한 데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지난 해에도 월성 핵발전소에서 방사능을 띤 이 톤 가량의 중수가 누출되었지요. 한 전문 관계자는 월성 핵발전소의 잦은 누출 사고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으며 신문에조차 보도가 안 되고 있습니다. 또한 경기도 매향리 일대의 주민들은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합니다. 이 마을 주위에 미공군 폭격 연습장이 있는데 하루 평균 열 시간 내지 열세 시간 동안 칠백회 가량의 사격, 폭탄 투하 연습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벌어져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민들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발진한 미공군기 뿐만 아니라 일본, 필리핀, 괌도 등에서 발진한 미공군기들까지도 이곳으로 날아온다 하니, 전쟁과 같은 그곳의 상황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보살님, 이제 우리가 진쟁으로 평화를 얻고자 한다면 핵무기 및 핵발전소의 폐기운동을 철저하게 펼쳐나가야 합니다. 언제, 어떤 한순간에 보살님이나 제가 죽을지 모르는 위기의 상황입니다.
흔히 불교신자들이나 스님들이 성지순례를 한다고 무더기로 동남아시아를 여행가는 것을 봅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나라를 찾아간다는 일이 얼마나 가슴 설레이고 황홀하겠습니까. 그러나 인도의 땅만 성지가 아닙니다. 이 땅의 한라에서 백두까지 성지 아닌 곳이 어디 있습니까? 곳곳에 우리 선인들의 얼과 피가 서려 있고 이 땅을 지키다 스러져 간 우리 조상님들이 묻힌 이곳이야말로 우리의 성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달리 무슨 성지를 찾아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땅, 우리의 성지가 핵으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땅의 사람들은 핵에 대한 문제의식을 철저히 가져야 할 때입니다.
평화는 핵무기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보살님,
살아 있는 것들의 조그만 희망과 사랑까지 모두 지키기 위해, 오늘 우리의 성지를 핵으로부터 보호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