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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밭을 일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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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민재 1989년 05월 87호
사회는 고갈됨이 도를 지나쳐 모두가 망가진 채 휘청거리고 있다. 마음은 손길 하나에도 부서지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물기를 잃은 지 오래다. 자신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가 하면, 부서진 것을 알면서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며 사실로 우리 사회는 ‘인간 자체의 상실’에 대해 전혀 무관심한 집단이 되어 있다.
빈곤과 슬픔과 절망과 굴욕과 고통과 배신 속에서, 그악스럽기 짝이 없는 얼굴들, 서로 싸우고 부딪치며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힘이 부친다.
지나온 날을 되돌아보면, 한 순간의 영상에 비추어진 그 세월들이 무언가 그지 없는 아픔의 연속이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채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또 다시 더 깊은 상처를 안겨주며 깊게 파고드는 고통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끝도 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아픔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나의 발목을 사정없이 후려치며 좌절감을 가중시켰다. 절대고독의 고문 속에서 절망과 허탈감을 맛보며 내 영혼은 몇 번이고 죽어야 했다.
죽음에의 방황과 고통은 혼자 있기를 가르치고 혼자 견디게 함으로써 나를 명상의 숲으로 끌어들어 나 자신을 직시하게 해주었으며, 안쪽으로 지혜의 문을 준비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의 본능을 따라 초라한 모습으로 생(生)을 향하여 따뜻한 기운과 물기를 소망하게 되었고 뿌리째 뽑히지 않으려는 몸부림도 치게 되었다. 하지만 내 삶은 따로 있는 것 같아 이곳은 늘 낯선 집이었다. 모든 욕망은 또 다른 업을 낳게 하는 줄 알면서도 여러 생을 살아오며 쌓아온 ‘습’과 ‘착’의 인연으로 일어나는 반복 현상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전생의 무슨 복으로 인함인지, 슬픈 인연이나마 부처님 앞에 앉을 수 있으니 무량대복이리라.
부처님 경전과 더불어 밤을 지내고 독경과 염불에 정진하는 가운데, 지난 날의 고통 속에서 준비된 지혜가 비로소 ‘참지혜’로 싹트면서, 나는 엄청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숱한 고통이 완전히 나의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으니, 그것이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정지된 속의 고요함이 아니라,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속에 고요함이 있다. 멀리서 들리는 듯 ‘아미타불’의 메아리 같은 화음이며, 염불 소리, 또 방에 스며든 향냄새의 포근함. 이들이 서로 멋지게 어우러지는 이 한마당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뺨이 터질 듯이 혈색 좋은 산동(山童)도 보이는 듯하고, 반야심경을 독경하고 사경하는 사이에 그 한 글자 한 글자 사이에서마다 옛부처의 모습도 그려보고, 때로는 장엄한 산의 묵중함 앞에서 수도 없이 오체투지로써 간절히 기도 드리던 그때의 경이로움과 신비함을, 그 눈뜨임을 허튼 글로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다.
이윽고 모든 고통과 슬픔이 더없이 아름다운 슬픔으로 승화되어 정갈한 모습으로 내 앞에 미소 지을 때, 앞뒤를 돌아 볼 겨를 없이, 언 가슴은 녹아 풀어질 수밖에 없었다.
“네가 곧 부처다.”
“모든 생명에는 불성이 있다.”
결국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가 그리고 다른 데에서가 아닌 자기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부처님의 말씀과 한데 엮이면서도 나에게 갈등을 일으키지 않은 것은 나도 부처일 수 있다는 확신이 뒷받침되어서이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자기 안에서 부처를 발견하고자 끊임없이 정진하면서 마음을 다하면, 다음 생에까지 그 마음이 이어지리라.
미련하고 어리석은 우리 중생들.
어제가 있었고 내일이 오는 것을 알면서도, 전생의 삶을 모르듯이 단 한 시간 뒤도 예측할 수 없는데, 모두가 허망한 착각 속에서 무엇을 향하여 종종걸음을 치는지, 너 나 할 것 없이 가련하고 또 가련할 뿐이다. 마음 하나 바로 열면 다 안아주고 보듬어주어야 하는, 너와 내가 따로 없는 하나라 했는데, 소유에만 눈이 멀어 스스로 만든 제약과 한계 속에서 이렇듯 초라하고 가난한 생각으로 살아가면,
결국, 소유함으로 말미암은 번뇌와 두려움밖에 남지 않고 진리는 멀어져감을 왜 깨닫지 못하는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그리 바삐 움직였던가? 참된 복밭은 여기에 있는데…
부처님 말씀을 경전에서만 찾으려고 맴돌 것이 아니다. 평소에 온화함 얼굴과 말씨로 좋은 인연 만들고, 나의 배고픔을 안다면 허기진 이들을 돌보아줄 줄 알며, 내 생명이 중하듯이 남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서로 나누어 가지며, 남의 아픔을 곧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것들이 참불교의 모습이다. 따로 떨어져 높은 데에 홀로 우뚝 서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삶
속에 함께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종교가 불교인 것이다.
살아도 살아도 궁핍함을 면할 수 없어 지친 사람이라 하여도 먼저 남을 질시하고 원망하고 한탄하는 마음부터 낼 것이 아니다. 그래도 남에게서 좋은 것을 보기 위해 힘쓰는 가운데 마음에 복밭을 일구어야 할 것이다. 또한 처지가 좀 나은 사람은 내가 빈손으로 태어났으나 본래 내 것이란 하나도 없음을 깨달아 아낌없이 베풀어 어렵고 병든 이웃을 돌보아주되 베풀었다는 우월감을 줄이면 더욱 큰 복밭을 이루게 될 것이다.
어렵고 힘든 일이기에 부처님께서 설하신다.
“무주상 보시.”
받은 사람도 없고 베푼 사람도 없다.
이제, 찬란한 빛이 나날이 생명을 더하여 신록이 아름다운 이 계절에, 우리 백의민족의 역사와 함께 향기를 더해 온 사월초파일을 맞는다. 신라 때부터 이어 온 이 명절은 우리의 뜻깊은 명절이기도 하거니와 온 인류의 축제이기도 하다.
회고 붉고 푸른 동에 마음의 불을 밝혀 석가님의 태어나심을 기리는 이 아름다운 축제의 날, 우리 불자들은 가슴마다 부끄러움을 담고 욕심과 말을 줄여 정결한 마음을 가꾸자. 그리고 손에 손에 등을 밝혀 들고 축제에 동참하여, 거룩하고 장엄한 법신의 위신력이 이땅 구석구석에 가득하도록 석가모니를, 아미타불을 지극하게 염하며 걷자. 그리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불자임을 서원하고, 부처님 법을 전하는 데 앞장서는 불자가 될 것을 서원하며, 한 등불이 두등불, 두 등불이 네 등불, 열 등불이 백, 만, 천만 등불이 되도록 끝없이 걸어보자. 걸어가는 길이 저승길과 이어져 지은 업에 따라 지옥길이 되더라도, 1시간과 공간을 그리고 욕심과 원망을 벗어난 행렬을 우리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