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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교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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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현각 1989년 05월 87호
가끔 서울 나들이를 할 때면, 길을 메우는 인파를 바라보면서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생활양식은 농경을 위주로 하는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농사의 방법만 해도 특용작물 재배에서 특수원예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다양화되어 있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도 육백여 개의 부품업체들이 수천 개의 부품들을 생산하여 조립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이처럼 현대인들의 생활양식은 참으로 다양하고 복잡한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직업의 종류는 만여 종이 넘는다고 한다. 이와 같이 생활형태가 다양함은, 또한 삶의 가치기준이 다양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삶의 형태는 저마다 다른 욕구를 분출하며, 이러한 욕구로 형성된 사회가 바로 우리의 삶의 무대이다. 이처럼 저마다의 소리가 다르고 원하는 바가 다른 사회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삶의 지혜가 터득되지 않는다면, 혼란과 무질서를 가져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혼란상이나 근로현장에서 쏟아지는 다양한 목소리들은 단순한 임금 인상이나 지위 향상의 차원을 넘어서 오랜 세월 동안 각자의 내면에 내재되어 있던 불만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포교사를 자처하는 많은 스님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얼마나 이해하고 또 그들의 욕구를 얼마나 충족시켜 줄 수 있는가 하는 회의를 갖게 된다. 학생들의 투쟁이 극렬해지고 근로자들의 농성이 거칠어지는 것은 단순히 집단의 명분이나 이익만을 앞세우는 차원을 떠나서 개인이 갖는 한(恨)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의 근원을 이해하지 않고는 언제까지나 대립된 주장들이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부처님의 출현은 중생이 있기 때문\"이라는 경전의 구절을 상기할 때, 중생구제를 자처하는 스님들이 해야 할 일들은 이러한 문제에 시각을 맞춘 것이어야 하겠다. 재소자를 교화한다는 명분으로 교도소를 드나들면서도 참으로 그들에게 도용을 주고 있는가 하는 회의에 젖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또한 법회시간에 강단에 서면 수많은 눈동자들이 갈망하는 마음을 읽어내지 못하는 답답함과 설사 몇 사람의 마음을 읽고서도 나의 능력이 미치지 못함을 느끼면서 보살의 길을 걷고자 세웠던 포교사의 서원이 무력해지기만 한다. \"중생이 병을 앓기 때문에 보살이 병들며 중생의 병이 나을 때 보살의 병도 낳는다\"는 유마거사의 말은 오늘날 우리 삶의 현장에서 간절히 기다려지는 보살의 길이라 하겠다.
누구의 주장이 옳고 누구의 주장이 그르며,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며,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위선이냐를 가지고 갈등과 대립을 하는 지금은 모두가 하나라는 원융무애(圓融無碍)와 화합, 통(通)의 대도가 이루어져야 할 때이다. 마르크스의 \"환경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말과 불교에서 전체가 하나를 결정하고〔 多郞一〕 하나가 전체를 결정한다〔一郞多〕는 이론은, 나와 모든 현상이 무관하지 않을 뿐더러, 나 또한 전체를 이루는 가장 강력한 핵(核)이 됨을 이르는 것이다. 이 핵의 폭발로 모두에게 영향을 주는 신념을 극대화할 때, 중생들의 다양한 갈증을 해소하고 그들의 간절한 소원을 성취하는 인드라 그물 같은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세계를 이룰 수 있으며, 여기서 중생, 즉, 보살의 불교 이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중생들 저마다의 평범한 삶을 승화시켜 그 삶 자체를 보살이 되도록 하는 작업이 참된 포교이며 교화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좀더 그들의 삶의 현장에 가까워져야 하고 근원을 살피는 안목이 열려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뜨거운 마음으로 끊임없는 정진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