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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왕불교(護王佛敎)의 내시적(內待的) 인상으로 홀대받는 한국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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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석지명 1989년 05월 87호
천주교는 최근 십여년 사이에 새로 개종해 들어오는 신자들이 많아서 교회당이 부족할 지경이라고 한다. 천주교 신자들이 급증하는 요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날 민주화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보여서 많은 국민, 또는 일반대중과 고통을 같이 하고 대중의 양심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종교로 인정받은 일이라고 한다.
반면에 불교는 어떠한가? 다른 종교인들이 우리 국민들의 한결같은 열망인 민주화운동을 하는 터에, 불교인들은 절뺏기 싸움을 벌여서 신흥사 살인사건 같은 것이냐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독재정부를 지지하는 성명이나 발표하곤 했었으니,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들과 정의감이 강한 젊은이들이 불교에 대해 등을 돌릴 것은 뻔한 일이었다.
이처럼 불교 종단의 정의감과 양심과 현실사회 구제의 행동력이 근본적으로 의심받게 되었으니, 불교를 믿던 군대의 많은 장성들조차 천주교로 개종했음을 일러주는 어떤 이의 말은 불교 교단에 대한 불신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불교는 민주화를 열망하던 학생이나 일반인들을 잃었고, 그들의 요구에 대해서 방어태세의 입장에 있는 군 장성들의 마음 밑바닥에 흐르는 양심도 또한 잃어버렸다. 민주화가 안 된 정부를 지지하고 지탱시켜 주는 입장에 있는 이들조차도 내심으로는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정의감을 갖고서 행동하는가를 지켜보아서, 결국 불교 교단의 정의사회 실현 의지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게된 것이다.
호국불교의 전통을 가진 한국불교는 과거 왕정시대에는 항상 집권자를 받드는 입장을 취해야만 했었다. 불교가 통치자와 피통치자를 차별한 것이 아니라, ‘왕과 왕의 정부를 위하는 것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것이 된다’는 입장에서 호국불교는 바로 호왕불교가 된 것이다. 이 호왕불교의 전통은 그대로 이어져서, 나라의 주인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라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시대에서도, 한국불교는 호국민불교(護國民佛敎)를 호왕불교 또는 호당시정부(護當時政府)로 착각해 왔다.
필자는 정부를 위하는 것과 국민을 위하는 것이 상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국민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불교 교단은 국민들의 편에 서는 모양을 지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불교는 지난 민주화운동의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국민의 편에 서서 정부와 대립하는 입장을 취해 본 적이 없다. 지난 해인사 승려대회에서 ‘어용불교로부터의 탈피’를 선언한 바 있지만, 거기에서 탄생한 새 집행부는 한 술 더 떠서 호왕불교의 입장을 철저하게 지켰던 것이다. 그리고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스님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교단의 실세로 대접받지 못했기 때문에 불교교단의 대표자로서의 체면을 세우는 데 그쳤을 뿐 교단 내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국민의 편에 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그 사회와 그 시대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불교가 자주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때그때마다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따르는 것은 어쩌면 이 시대를 파악하고 진로를 제시할 자신감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역사의 흐름을 알지 못하는 깜깜한 상태에서 섣불리 주도적인 입장을 취하기보다는, 순수히 종교적인 입장에서 어느 때, 어느 곳이나, 그리고 누구에게나 필요한 ‘마음공부’만을 강조하면서 필요한 경우에는 정부의 주도에 따르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서방정토나 마음의 정토가 차방정토(此方淨土)로 연결되지 못하면 그것들은 하나의 공상적 정토에 불과한 것이 된다. 시대를 파악하고 앞길을 제시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이 일을 외면한 채 한국불교가 자신에게 당연히 부여된 종교적 사명
을 다할 수는 없다.
국민대중들의 정의의 목소리를 알아 듣고 행동할 수 있는 종교만이 국민이나 정부로부터 정당한 대접을 받을 수가 있다. 한국불교는 언제나 정부의 내시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한국불교의 내시성은 당연한 것이 되어서, 정부조차 불교 종단을 무시하게 되었다. 10∙27법난은 정부가 불교를 무시하는 자세를 누구나 알기 쉽게 드러낸 한 예이며, 그 외에도 정부는 한때 기독교의 목사를 총리로 임명하겠다는 설을 퍼뜨린 것, 십여 명의 방송심의위원 전원을 기독교인으로 구성한 것 등 불교를 깔보고 다른 종교를 우대하는 일을 서슴없이 행한다. 이러한 사태는 정부의 처사를 탓하기 이전에 불교인들이 스스로 무시받게끔 처신해 온 것을 뉘우쳐야 할 것이다.
세상이 좀 숨쉬고 살 수 있게 되었을 즈음, 몇몇 스님들이 종단 책임자와 교내 원로, 중진 스님들의 반대 내지 방관을 무릅쓰고 l0∙27법난 진상 규명을 주창하여, 국무총리로부터 법난에 대한 사과를 받고, 불교가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방송국과 승가대학과 병원을 설립하는 데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약속을 얻게 되었다. 불교방송국은 허가되었지만 다른 약속은 제대로 지켜질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위의 세 가지는 현정부 책임자들이 지난 총선 때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것으로서, 그들은 이것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똑같은 내용을 가지고 재탕 삼탕을 하면서 생색을 낸다. 그토록 큰 10∙27법난의 충격과 피해를 몇 가지 약속, 그나마 잘 이행되지도 않는 약속으로 보상하겠다는 식의 생각도 불교를 무시하는 정부의 태도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호왕불교의 내시성으로 인해서 양심있는 국민들로부터 저버림을 받았고, 또 정부로부터 무시를 받아온 한국불교가, 또 이번에는 문 목사의 북한 방문에 대한 규탄성명을 발표하였다. 문 목사의 방북에 대한 비판을 내시적인 태도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힘있는 다른 종교는 직접적인 규탄성명을 내지 않는데, 왜 한국불교만 그 성명대열에 끼어들어서 과거의 내시적 행각을 상기하게 하는지 알 수 없다. 똑같은 문 목사의 북한방문건에 대해서도 주교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의 성명에서는, 방북사건을 민주인사들의 탄압 구실로 삼지 말고 통일의 계기로 삼아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른 성명서에는 \"최근의 통일 논의와 관련된 정부의 대응과 대량 구속사태 등에 대해 우리는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그 시정을 촉구한다\"고 밝히고 있다. 천주교는 방북을 시기적으로 옳지 않은 것으로 인정하면서도 민주 인사들을 보호하는 입장에서 이률 통일의 계기로 삼을 것을 강조한 반면, 불교는 방북이 옳지 않다는 내용이 전부이다. 두 성명을 보고서, 양식있는 국빈과 정부인사가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곰곰히 반성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