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선인들이 완성하여 놓은 전통 깊은 생활예술의 한 부분인 다도(茶道)를, 현대에 어떻게 조명시키고 실제의 생활 속에 골고루 스미게 하여, 우리의 숨결 가까이 활용해야 하겠는가? 이러한 것은 먼저 저 차가 지니는 무한한 정신적 가치를 체득하는 것으로 차문화의 역사적 맥락을 공부하며, 그 속에서 잃었던 우리들의 진정한 몸짓을 발견하고 또 그들이 걸었던 풍요롭고 슬기로운 영상의 세계를 통해 심혼이 화(和)해 지는 근원을 체득하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구체적으로 그러한 근원과의 만남의 진수(眞髓)는 차례(茶禮)를 통하여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야 할 인간으로서의 길」을 배우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차문화(茶文化)는 불과 물의 가장 적절한 만남의 조화로서 비롯된다. 불과 물은 차로서 성립되기 이전엔 서로가 어울릴 수 없는 가장 상극적 체성을 띄고 있는데, 일단 차라는 미묘한 매개체로 어울려지면 가장 심오한 생활예술이 전개되는 것이다. 흩어진 잎 가지들을 모아 불을 지펴서 물을 부드럽게 익혀, 한 잔의 차를 점(點)하는 차례, 그것은 참으로 인간이 살아나갈 생활의 기초인 것이다.
불은 지혜를 상징하는데, 서구철학의 기초가 되는 로고스(Logos)와 파토스(Pathos)의 의미인 사랑의 상징도 불이다. 인간의 본질을 밝혀내는 학문이 철학인데〈철학〉이라는 어휘는 Philosophy에서 온 말로 Philo〈지혜〉와 Sophy 〈사랑〉의 복합어이다. 그러므로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 우리들 인간의 본질을 터득하는 것일진대 물과 불을 가장 잘 다스리는 일로부터 시작되는 차례. 그것이 바로 이 깊은 길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차례는 예의를 통한 멋 생활, 곧 범절이다. 첫째는 우리 개개인이 직면한 현실에서 일상생활을 바르게 영위하는 것, 다시 말해서 한 인간으로서 본래 지니고 있는 사명과 이 사명에 따르는 덕행을 이루어 가는 것이며, 둘째는 세련되고 고상한 취미예술로서 문화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것이며, 세째로는 진리에 부합되며 인간생활의 순수 무구한 진실함을 목표로 하는 인간형성의 길인 종교면이 있는데, 바로 이 점, 인간이 인간으로서 걸어가야 할 길은 선다일미(禪茶一味)의 사상에서 찾아야 될 것 같다.
선(禪)은 궁극적으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수행인 것이다. 미망(迷妄)에 허덕이는 자아의 혼돈에서 전대안정과 지극히 맑음으로 가득찬 세계와의 합일이다. 다도(茶道) 또한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끼리 미와 고요와 조화와 소우주 속에서 서로 일체가 될 수 있는 분위기를 창조하려 한다. 이와 같이 선과 차에는 깊은 고독과 높은 존엄성이 함축되어 있어, 영혼의 청순한 희열을 가져온다.
그렇다면 선과 차의 행위가 어떻게 일치되어야만 선다일미(禪茶一味)인 즉 선과 차가 둘이 아닌 경지가 될 수 있는가?
차(茶事)와 선과는 그 형상에 있어서나 그 작용에 있어서 전혀 다른 것이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하나로 귀일(歸一)되는 것이다. 불법(佛法)에 있어서 상(相)과 용(用)은 본질적으로는 하나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과 차는 그 목표에 있어서 일치인 것이다. 차례, 그것이 형성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이 선의 길과 통하는 것이다.
다사(茶事)는 선에 있어서의 선정삼매행(禪定三味行)으로 나아가게 된다. 다사를 진행할 때 고요함과 엄숙함 그리고 다실(茶室)의 소박함 속에서 물을 끓이고 투박한 찻그릇을 만지고 다스릴 때에 일체의 사념이 없는 삼매(三味)에 들어가서 본성을 관(觀)하는 일로 다사가 지속되어 지는 것이다. 여기에 삼매라함은 범어(梵語)의 Samadhi의 한자의 음역(音譯)이다. 구체적인 뜻은 마음을 한 가지에 집중하고 그 한 가지의 일밖에는 다른 생각이 없는 사념의 통일이다. 심경일여(心境一如), 물아불이(物我不二)의 의미이다.
우리들 인간은 누구나 모두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인 육근(六根)올 통해서 의식하게 되는데 그 외계 경계인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을 의식하며 그것들을 전체적으로 작용하면서 감각파 인식이 성립하게 된다.
이런 감각과 인식으로 조화된 우리들 정신과, 물질의 당체인 존재가 삼매에 의하여 통일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과 차가 둘이 아닌 일미(一味) 즉 일여(一如)가 되기 위해서는 다사를 점(點)하는 그것이 삼매라고 하는 행위에 의하여 개오(開悟)의 깊은 경계에 도달하여야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선다일미가 성립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삼매에 있는 것이다. (계속)
여연스님 (해인사 원당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