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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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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방 한담 - 지묵 1989년 04월 86호
만일 대중을 속이는 날에는 그 벌로 젊은 스님은 쫓겨나게 되므로, 마음속으로는’이거, 괜히 아까운 사람을 대중공사감으로 몰아 쫓아내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1. 산신기도
동지 전날 밤에는 산중 대중이 큰방에 모여 새알 빚기 울력을 한다. 군데군데 둥글게 모여 앉아 새알 빚기를 하다가
“노스님, 고담스런 얘기 하나 해 주십시오.”
하고 누가 청하니, 노스님은
“뭐. 할 이야기거리가 있어야지.”
하다가 거듭 청하자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좀 오래된 일이야. 토굴에서 십여 명이 어울려 지냈을 때지. 입이 퍽 궁금했던 차에 한번은 이런 일이 벌어졌지.”
새알 빚는 손놀림이 느려지더니 노스님 곁으로 바짝 다가앉아 귀를 기울여서 열심히 듣는다. 노스님의 이야기는 깊어가는 산중의 밤공기와 어울려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대중이 별미를 먹었으면 하는 눈치를 보이니 그때 한 젊은 스님이 대중 앞에 나서서 입을 열었다.
“대중 스님들께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스님마다 음식 이름을 세 가지씩 써서
주시면 사흘 뒤에 제가 모두 장만하여 올리겠습니다.”
대중 스님들은 잠잠히 듣고만 있었다. 앞에 나선 젊은 스님은 말을 이어나갔다.
“제게 속는 셈 치고 모두 세 가지 음식 이름을 써 주십시오.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삼악도를 면한다는데, 이만큼 선방을 기웃거린 제게 신통력이 없겠습니까?”
이렇게 큰소리를 치고 나서니, 대중은 그의 요구대로 음식 이름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만일 대중을 속이는 날에는 그 벌로 젊은 스님은 쫓겨나게 되므로, 마음속으로는 ‘이거, 괜히 아까운 사람을 대중공사감으로 몰아 쫓아내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대중이 십여 명이니 음식 종류만도 서른 가지가 넘었지만, 젊은 스님은 호기있게 음식 이름이 적힌 쪽지를 거두어서 총총히 산문 밖으로 사라졌다. 그런 뒤 사흘이 지났다. 점심 공양 무렵쯤 되니 음식 함지박을 머리에 인 여인네들의 행렬이 줄지어 산으로 오르고 있었다. 입에는 창지 조각을 물고 말없이 절을 돌아가는 길모퉁이로 가서 섰다. 맨 앞에 서서 길을 인도하는 이는 그 젊은 스님이 분명하였다. 젊은 스님이 음식 함지박을 길가에 내려놓게 하고는 여인네들에게 말하였다.
“이제, 제각기 집으로 돌아가시오. 산신들이 다 모여서 곧 회의가 시작될 참이요. 산신님 옷자락만 보아도 부정을 타니 어서 하산하시오. 그리고 집에 당도할 때까지는 창지 조각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가다가 입을 열면 산신 기도를 올린 공이 일시에 무너질 것이오.”
이 말이 끝나자 여인네들은 절 뒷산을 향해 거듭해서 합장을 올리고는 마을로 사라졌다. 대중 스님들이 이 음식을 잘먹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무슨 재주로 이 많은 음식을 장만해 오게 했소?”
대중은 궁금증이 나서 젊은 스님에게 물었다. 젊은 스님이 그냥 웃기만 하다가
“그러니까 신통묘용이지요.”
하고는 좀처럼 입을 떼지 않으려고 한다.
“거참, 용하군. 하여간 덕분에 잘먹었소.”
이런 이야기가 오고가다가 기어이 젊은 스님이 실토를 하니 박장대소하지 않은이가 없었다. 이야기인 즉 마을에 내려가서 가장 말발이 서는 노보살 한 분을 찾아가서는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사흘 뒤에 우리 절 뒷산이 세계 산신님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게 될 것이요. 무슨 말인고 하니, ‘세계 산신대회’라는 게 열린다는 거요. 이 마을에 액운이 따른 이들은 여러 생각을 말고 음식을 한 가지씩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산신님들께 올리도록 하시오. 그 음식은
산신님들의 주문대로 적어왔으니 하나씩 골라서 하되, 일체 입을 떼어서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음식을 산신님께 바친 뒤 집에 돌아올 때까지 산신기도를 사흘 동안 하는 것이오. 그럼, 음식 이름을 불러 주겠소.“
스님이 이런 말을 자못 심각하게 이어가니,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노보살은 그대로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산신님의 주문대로 일체 말없이 음식을 만들어서 사흘 뒤에 산신님께 올리면, 반드시 소원을 성취할 것이요.”
“첫째, 금강산신님은 잡채이고, 둘째, 백두산신님은 인절미이고, 셋째, 한라산신님은 찰밥이고, 넷째, 미국산신님은 빵이고, 다섯째, 영국산신님은 수정과이고, 여섯째, 소련산신님은 만두이고…“
서른 가지가 넘는 음식 이름을 거침없이 외워나갔다 노보살은 젊은 스님의 호기가 어찌나 당당했던지 마을 여인네들에게 그대로 권장하였다. 마을에서는 저마다 열심히 음식을 만들a면서 입을 떼는 이 없이 사흘 동안의 산신기도를 잘 마치게 되었다.
나중에 들리는 바로는, 마을 여인네들의 묵언 산신기도가 썩 영험이 있었다는 대목에서 노스님이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고 한다.
“그 젊은 스님이 장난꾼이긴 하나 마을사람들에게 산신기도를 잘 시켜서 병을 모두 고쳐주고 대중을 잘 먹였으니 악의는 없었던 거야!”

2. 지장(地藏)기도
한 수좌가 오대산 적멸보궁에 가서 아주 열심히 지장기도를 한철 올리고 떠난 일이 있다. 그 수좌는 외딴 토굴에 사는 사십대의 한 여인 선지식을 만나 지장기도를 올리라는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다. 산철 만행중에 소백산 깊은 기슭에 십년도 더 된 이 토굴을 찾아온 수죄는 나름대로 각오가 서 있었다. 첫째로는 서울서 명문 대학을 나왔다는 이 여인의 정체가 궁금하였고, 둘째로는 사십대를 넘어선 이 여인이 도를 닦는다는데, 과연 어느 정도일까를 거량해 보고 싶었다. 빈 집 마루에 걸망을 내려놓고 앉아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수좌는 이런저런 생각에 싸여 있었다. 한 시간 반쯤 지나서 키가 후리후리하게 큰 한 여인이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서 싸리문 안으로 들어서다가 멈칫 섰다. 순간 수좌와 여인은 눈길이 마주쳤다. 곧 여인은 마당 한가운데로 나와 서더니 소쿠리를 내려놓은 뒤 수좌 앞에서 거침없이 몸빼를 벗어내린 채 앉아서 오줌을 싸기 시작하였다. 수좌로서는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허어, 이런!”
그러던 수좌의 눈길이 여인의 하얀 엉덩이에 가서 멎더니, 문득 장난기가 일어난 수좌는 그녀의 뒤켠으로 가서 껴안으려고 하였다. 이때 여인이 벼락같은 소리로,
“이런, 송장 같은 이 보게! 한마디 일러라.”
하고 꾸짖자 수좌는 갑자기 머리통을 돌맹이로 한 대 얻어맞은 듯 얼이 다 빠질 지경이 되어서 머쓱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을 멍하게 서 있던 수좌에게 여인이 외쳤다.
“이보우, 스님. 그대로 갔다간 병들어. 어서가서 불보살님께 기도를 올려요.”
수좌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어디 가서 무슨 기도를 올리지요?”
“보궁에 가서 지장기도 올려야 살지.”
수좌는 이렇게 큰 선지식을 만나본 일이 일찍이 없었다. 그 길로 적멸보궁으로 가서는 생사를 목전에 둔 듯 지극지성 ‘지장보살’을 염하기 시작하였다.
“나무 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