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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곳의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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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 최성각 1989년 04월 86호
올해로 나이 마흔 다섯쯤 되는 고향 선배 인규(仁圭)형이 사람이나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방식은 요상하다 못해 참으로 해괴하다고 할 만하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그에게서 결혼이 늦어진 무슨 재미있는 곡절이라도 들을까 기대했다가는 아무런 소득도 없을 게 뻔하다. 이미 결혼을 한 사람에게 결혼을 하게 된 무슨 재미있는 곡절이 있을 리 없는 것처럼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그렇기는 마찬가지라는 상식이 인규형에게도 적용된다고 보면 된다.
한번은 친구의 여동생이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었다. 우리 나라 종합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는 누군들 병원비가 문제가 안될 만큼 넉넉하겠는가만 친구네 또한 입원해 있는 날수가 길어지자 사람 걱정에 돈 걱정이 겹쳐 성한 사람들마저 병이 들어 쓰러질 판이었다.
이 소식을 뒤늦게 안 인규형이 유난히 계단이 많은, 친여동생이 입원해 있는 종합병원을 찾아온 것은 그 소식을 알게 된 다음날 오후께였다.
아무도 후줄그레한 잠바차림에 조금 등이 굽은 마흔 다섯쯤 되어 보이는 인규형을 유심히 보지 않았지만, 그는 벌써 계단을 오르면서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유심히 들은 사람은 없지만, 인규형이 그때 중얼거린 말은 틀림없이 고향 후배의 여동생을
빨리 낫게 되기를 바라는 내용이었을 게 뻔하다.
병동 엘리베이터도 있었지만 끝내 십층이나 되는 병실까지 소처럼 무겁게 걸어서 오른 인규형이 병실 문을 열고서 한 첫 행동은 숨을 몰아 쉬는 일이었다.
“숙희야 내 말이 들리냐?”
“네, 인규오빠 !”
숙희가 낮지만 기쁨이 배어 있는 목소리로 인규형을 반겼다.
“이제부터 네가 어서 낫도록 기도할 작정이다. 그래 네 생각에는 이 인규오빠가 누구한테 기도를 하면 좋겠느냐? 미카엘 천사냐, 미륵부처님이냐, 혹은 약사여래님이냐? 아니면 하나님이나 부처님께 직접 부탁할까?”
인규형이 누워 있는 숙희에게 말했다.
“인규오빠 마음대로 한 분 골라서 기도해 주세요.”
숙희가 말했다.
“그래, 알았다. 약사여래님께 기도해야겠다, 오늘은.”
인규형은 그렇게 말한 뒤, 병실 창을 열고 바깥을 향해 심호흡을 했다. 그리곤 조용히 눈을 감는 것 같았다.
숙희도 인규형처럼 조용히 심호흡을 한 뒤,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인규형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의 일터로 돌아갔고, 숙희는 사나흘 있다가 퇴원해서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인규형은 특정한 직업이 없다. 말하자면 아무도 그에게 월급을 주지 않는 것이다. 리어카에 과일을 가득 싣고서 돌아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군고구마 장사도 하고, 또 건축공사장에서 질통을 메기도 한다. 그의 허벅지나 장딴지가 돌멩이처럼 단단하다는 건 고향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일이다.
산꼭대기에 자리한 그의 집 앉은뱅이 책상 위에는 「논어」나「법구경」, 「사기」 같은 책들이 보인다. 그리고 한쪽 선반에는 성경책도 보인다.
그런 아무도 그가 얼마나 많은 걸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친구들이나 우리 후배들은 인규형 앞에서 책이나 영화를 보고서 알게 된 것을 가지고 자랑하지 않는다. 그의 앞에서 무언가 알고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긴 듯하게 늘어 놓을라치면 단박에 튀어나오는 그의 짧은 몇마디에 그만 소금에 절인 미꾸라지처럼 축 늘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름이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비난하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는 어떤 표정인지 모르지만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석굴암의 부처님처럼 늘 잔잔하게 웃곤 했다. 텔레비전에서 스리랑부부처럼 왁자지껄 고함치는 사람을 웃기는 프로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거나 텔레비전을 아예 꺼버리기도 했다.
지난 겨울 북한산에 갔다가 빙판에 넘어져 허리를 좀 심하게 다친 내가 이틀이나 직장에 못 나가고 있을 때였다.
“넘어졌냐?”
그 소식을 어디서 들었는지 우리집에 온 인규형이 누워 있는 내게 물었다.
“네 그런데 말이예요, 이상한 일은 넘어지기 조금 전에 우리 고향 산에 비하면 북한산은 별 게 아니라고 말했거던요. 그 말 떨어지고 조금 있다가 빙판에 자빠졌어요.“
내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랬을 줄 알았다. 북한산 산신령님께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라. 그럼 낫는다.”
인규형이 말했다.
우리들 중의 누구도 그의 말에 의심을 품는 사람이 없었기에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북한산 산신령님께 잘못했다고 누운 채로 두 손 모아 싹싹 빌었다 그 다음날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출근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지난밤에 우리 방에 찾아와 오랜만에 잔 인규형은 아침에 한마디 말을 던지면서 일어섰다.
“오랜만에 아주 잘 잤다. 저기 책상 위의 네 아버님 영정에서 아주 따뜻하고 친밀한 기운이 흘러나와 이 방에 가득 넘치고 있구나. 돌아가신 아버님께 욕되지 않게 늘 자중자애하고 남들에게 성심껏 대하는 걸 잊지 마라. 난 이만 간다.”
아침 먹고 가라는 나와 아내의 말을 굳이 뿌리치고 인규형은 어디론가 또 훌쩍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는 곧 일상적인 생활을 계속했는데, 그는 우리들 중의 누군가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또 바라처럼 나타날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이마 우리가 알고 있는 인규형 같은 사람이 주변에 하나쯤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가 어떤 사람이냐고?
간단하다. 하늘 어려워할 줄 알고 땀 흘린 만큼만 먹겠다는 사람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다면, 그런 사람들을 도무지 찾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가장 좋은 것은 그런 사람을 찾는 것보다는 그런 사람이 스스로 되는 일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