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향한 불교운동의 실천적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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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박충식
1989년 04월 86호
이차 세계대전 이후에 벌어진 미∙소의 냉전에 의해 희생된 나라들 중에서도 그 피해가 으뜸인 이 땅에도 팔십 년대에 들어서면서 반공논리의 허구성을 깨고 통일을 이루기 위한 민중들의 열망이 점차로 커지더니 작년에 이르러서는 봇물처럼 용솟음쳤다. 이는 8.15이후의 헌정사 속에서 점철되어 온 온갖 억압과 질곡의 본질이 분단이었기 때문이다
허리 잘린 한반도를 잇기 위한 지난한 몸부림은 불교계에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제24회 국제올림픽을 남북이 공동으로 치르도록 하기 위한 불교도들의 기원법회는 산사에서 수도에만 전념하시던 스님에게까지도 통일에의 염원을 함께 할 수 있게 하였다.
통일에 있어 불교가 담당해야 할 역할과 위상을 논하기에는 아직도 이른 감이 없지 않다. 북한불교에 대한 자료가 부족할 뿐더러, 아직 교계에서의 광범한 통일논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많은 연구와 실천적 결과들이 나와서 불교가 민족사 속에서 지도이념으로 되살려
져야 할 것이며, 이런 일들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중차대한 문제이므로, 우선 여기에서는 불교도들에게 우선적인 과제를 중심으로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그런데 불교계의 통일론이라고 해서 불교의 특수성만을 바탕으로 구성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와 불교는 불이(不二)의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불교사장과 불교계의 통일로 향한 실천적 경험을 역사성에 기반을 두고서 조화시켜 나갈 때, 불교의 통일론은 불교적이고도 구체적인 보편성을 갖고서 정립될 것이다.
역대 정권의 통일에 대한 정책은 7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통일 방안으로서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들 통일방안의 맥을 살펴보면 그 밑바탕에는 기능주의적인 방법론이 깔려 있다. 정권 차원의 통일 방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능주의적 통합이론과 그 본질에 대해서 알아야한다.
기능주의적 통합이론에 따르면, 첫째, 상호 작용을 하고 있는 사회간에는 기능적으로 상호 의존관계가 생기며, 이를 통해 공통의 통합이익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 공통의 이익은 두 사회를 불가분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통합총진(통일)의 가장 큰 요인이 된다. 둘째, 한 차원에서 이루어진 협조관계는 다른 차원의 협조관계를 유발한다.
7.7 선언이나 현재의 북방정책 전략은 이러한 기능주의적 통합이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비정치적이고 기술적인 차원의 협조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정치적인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현 정권의 점진적인 통일정책방안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능주의적이고도 점진적인 통일론이 보편적인 방법론으로 보일 수 있을지는 모르나 한반도의 통일방안으로서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정치적으로 이루어진 한반도의 분단은 세계적인 체제대립의 모순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러한 모순을 주체적으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두 개의 국가로 나아가는 통일론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예로 1985년 남북고향방문단 때를 상기해 보자. 문화 교류가 서로의 체제 우월성에 대한 과시와 상대방에 대한 흑색선전으로 일관되었고, 결과적으로 민족동질성의 고양보다는 이질감 조성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따라서 기능주의적 통합방법에 의한 통일은 한반도 평화체제를 확립하고 전쟁 가능성을 해소하기 위한 정치적 결단(평화협정 체결문제, 주한미군철수문제, 상호군축 문제 등)이 선행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다. 금강산개발을 위한 남북합작 문제만 해도 정치군사적인 문제가 우선하지 않는 한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는 두 개의 국가로 고착시킴을 내외에 천명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기능주의적 통일방안과 통일정책은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과 궤를 같이 한다. 지금까지 미국과 역대 정권의 통일에 대한 시각과 통일정책은 반통일을 지향하는 논리를 갖고 있었다. 결국 이러한 통일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역대 정권의 기반이 국민대중의 합의에 의해서 형성되지 못함으로써 나타난 구조적인 취약성 때문이다. 정권 유지의 기반을 민중 속에 두지 못하고 미국의 영향력에 의지하는 정권의 통일정책은 미국의 이익을 유지시켜주는 한계를 갖고 있어서 가식적이고 현상 호도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과 역대 정권 담당자의 통일정책 속에 안주하기에는 민중이 겪어야 하는 고통이 너무나 가혹하였다. 이에 분단조국의 온갖 질곡을 타파하고 조국통일의 민족적 과제를 달성하고자 하는 범국민적인 열망은 민중주도의 통일논의를 도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중이 주체가 되어 통일을 이루려는 시도는 6.25 전쟁을 계기로 철퇴를 맞지만 통일의 싹이 완전히 뿌리 뽑힌 것은 아니었다. 그 싹은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된 조 봉암에서부터 4월혁명을 통해 발아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억눌려 왔던 민중들의 통일논의는 4월혁명 이후에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로 표출되었고 이를 통하여 자주와 명화와 민주의 원칙하에 즉각적인 남북협상, 남북민족대표들에 의한 민족통일건국 최고위원회 구성, 외세배격, 통일협의회를 위한 남북대표자회담 개최 등을 내세웠지만, 미국의 지지를 둥에 업고 탄생한 박 정희 군부세력의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수천명의 민주인사가 용공혐의자로 잡혀가면서 통일에의 길은 일시적으로 좌절되었다.
1980년 월, 광주민주화항쟁의 비극적인 상형을 딛고서 독재정권의 온갖 탄압과 질곡 속에서도 통일의 불씨를 소중히 간직해 온 민중들에 의해 80년대의 통일운동은 질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나타내었다. 이러한 가운데,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세력은 역대 정권만이 아니라 자기들의 이해관계를 추구하기 위해 한국민중을 고통의 늪에 빠뜨리는 미국이라는 본질을 명확히 밝힐 수 있었다.
80년대 이후의 통일운동은 이전과는 달리 끈질긴 생명력과 잠재력을 갖추어서 그 실천력 또한 컸다. 이로 인하여 정부가 통일논의를 이전처럼 일방적으로 독점하기는 어렵게 되었으며, 민족민주운동이 고양된 가운데 민중의 정치적인 진출이 광범하게 이루어짐으로 분단의 모순 속에 살아가고 있는 민중 스스로가 자주적으로 통일의 주체가 된 것이다.
정부는 통일논의의 창구단일화를 주장하며 민중이 주도하는 통일논의에 대해서 족쇄를 채우려고 했지만, 더 이상 통일논의의 독점상태를 지속할 수 없자, 7.7 선언을 통해서 통일운동을 주도하는 듯한 모습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것은 민족민주운동세력이 정부에 대해서 통일논의의 공간을 확대시킨 것이었다.
이제 남북통일 문제는 그 주체가 민중적인, 민족의 문제로 규정됨에 따라서, 통일에 있어 불교가 담당해야 할 역할은 자못 막중하게 되었다. 이는 45년 이후 미국어이 펼친 사상과 문화에 대한 침탈정책의 본질이 반통일적인 전략을 장기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민족의식을 말살하는 것이었으며, 특히 기독교적인 문화와 우월성을 강요함으로써 이 땅의 민족의식은 희미해지고 민족 내부의 사상적 분열이 더욱 극심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계가 우격다짐으로 민족의식의 담지가라고 주장만 해서는 그러한 역할을 다할 수 없다. 먼저 불교 내의 자주세력이 끊임없이 내부적으로 교육을 철저히 하고 불교 자체의 비민주적인 부분을 극복함으로써 불교사장의 참모습을 회복해 나갈 때, 불교도의 지위와 역할은 비중이 높아져서 일반인으로부터 자연스럽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서는 이 땅에서 통일의 선봉장으로 설 수 있을 것이다.
사회의 질곡을 타파하여 모든 사람이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사상과 실천적인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관념 속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는 실천 속에서 이론이 창출되고 발전되듯이 불교계내에서의 조직적인 작업과 실천이 없다는 불교계가 통일운동의 선봉에 선다거나 불교운동론을 정립하는 일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운동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과제는 전체운동속에서 부분운동으로 자리를 확고히 차지하는 일이다. 불교계가 부분운동으로서 사회 속에서 자리잡기 위해서는 첫째, 스님들의 의식이 변화하여 참다운 민중적 시각이 정립되어야한다. 민중적인 시각이란 노동자나 농민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는 차원의 좁은 시각이 아니라, 스님들이 이 땅의 모든 모순과 질곡의 뿌리를 없애는 길로 나아가려는, 민족적이며 통일지향적인 모든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때 민중적 시각은 정립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민중적 시각에서의 실천은 권력자들에 의해 일시적으로 깨어지더라도 그러한 깨어짐 속에서 다시 우뚝 설 수 있는 민중의 지혜를 담고 있다. 둘째, 불교계의 각 단체는 민중적인 시각 속에서 공동체적인 연대감을 가지고 구체적인 실천을 함으로써 전국적인 단위로 조직화해야 한다. 불교가 모든 이들을 억압과 질곡이 사라진 정토세계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반통일적 집단의 통치구조를 극복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조직적 결집과 과학적 실천이 병행되어야 한다.
앞에서는 불교의 통일운동에 있어서 시급히 요청되는 것이 통일지향적인 사고의 민중적 정립과 전국적인 조직화, 그리고 통일로 향한 끊임없는 실천이라고 하였다. 분단사 속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민중적 통일방안에 대한 인식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그 실천적인 극복방안이 나올 때, 진정한 불교적 통일방안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적인 실천이 모든 불교도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듯이 통일에 대한 불교의 이론적인 구조는 불교적 실천과정 속에서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원효스님의 화쟁이라는 불교사상은 오늘 우리의 현실 속에서 훌륭한 통일이론으로 뿌리내릴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 그 사상에 기반한 실천작업을 구체화하고 보편화하여 화쟁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해야 한다. 또한 그러할 때 조국의 자주적인 평화통일을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총체적인 과정에서 불교도가 앞장설 때 불교도로부터, 그리고 온 국민으로부터 민족종교라는 이름에 걸맞는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불교가 통일운동에서 민족의 지도이념으로 정립되기 위해서는 먼저 구체적인 현실
에서 부단한 노력을 하는 일이 선행되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