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삶의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을 기울여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삶을 훨씬 더 아름답고 여유있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거대한 작품이요 예술 그 자체라고도 하겠다.
우리가 차 생활을 통해서 평범한 삶에 좀더 질 높은 리듬을 주어서 이러한 평범한 삶을 승화시켜 간다면 삶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일이겠다. 한잔의 차를 마심으로써 순간 속에서 영원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멋이란 무언가 여유로우면서도 깊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겉멋이 치장하고 뽐내는 것이라면, 참멋은 삶 속에 베어서 우러나는 운치요 풍류며, 정취가 잘 어울러진 조화요 리듬이라고 하겠다.
임어당(林語堂)은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이상적인 성격을 따스한 정과 용기가 있으며 근심이 없는 성격, 즉, 정(情)과 지(智)와 용(勇)을 갖춘 성격이라고 하였다. 또한 삶을 아름답게 꾸미는 요소들은 진과 선과 미이며, 이는 불교의 계(戒)와 정(定)과 혜(慧)의 육바라밀 덕목들을 겉으로 뿐만아니라 마음 속 깊이 경험하고 체험하여 삶의 알맹이로 삼아 살아가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산업사회에서 고도의 문화 생활을 영위하는 반면에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 가면서 인간 소외, 인간 부재, 인간 공해라는 현상을 빚어내고 있으니, 복지국가를 바라는 우리의 꿈에 먹구름이 끼어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아름다움에 대한 깊은 감각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고 있기 때문에 소외와 방황이 일어나고 있다. 사물이나 이웃이 나를 떠밀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들에 대한 나의 깊은 이해와 신뢰, 사랑의 마음이 식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고립되어서 외롭고 썰렁한 거리에 서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다도며 차례에 대해서 그다지 아는 게 없다. 그저 차가 있으니 마신다고나 할까. 부처님 앞에 차를 올리기도 하고 선이나 경과 더불어 마시기도 하고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는 게 나의 차 생활의 전부이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조그만 여가를 통해서 이웃과 기쁨을 함께 나누기도 하는 것이다. 차 생활을 통해서 화평하고 맑고 고요한 분위기를 맛볼 수 있고, 선을 하다가 또는 귀한 손님과 정담을 나누며 차를 마시는 일은 그저 흐뭇하고 즐겁기 마련이다. 차를 마심으로써 차 생활에 스며 있는 덕을 자신의 덕으로 심화시키는 일은 무엇보다도 귀한 일이라 하겠다. 실로 차의 향기란 다려 준 이의 인품의 향이요 멋의 정취이다. 따라서 차는 사회의 혼미한 일상에서 들뜨기 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유연한 마음을 지니게 하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홀로 있게 됨을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그러나 홀로 있을수록 더욱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진정 홀로 있을 때에야 참 자아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며, 그 고독한 자리가 선정에 들게 하고 스스로를 일깨워 주는 자각의 동기로 삼게 되는 것이다. 이때 마시는 한잔의 차는 신기가 절로 나고 자기다움을 회복시켜 주는 정취를 마련하리라.
삶의 숨결로 차를 다려 마시며 도량과 덕, 소박함과 호젓한 아름다움, 사려 깊음을 갖춘, 자비회사(慧悲喜搖)가 넘치는 마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가짐이 대승보살로서 큰 사랑을 실천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