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해명에 대한 불교계의 반응
정부의 잇따른 담화 발표와 설명서 등을 접한 불교계의 반응을 살펴보자.
먼저 서의현 조계종총무 원장이 설명회 다음날 기자 회견을 통해 “10.27법난은 수사 당사자들에 의해 불교를 탄압하려 했던 의도가 분명해졌다”고 주장하며 “이번 진상 규명은 2천만 불교도가 이해하기에는 아직 미흡하다. 그러므로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상이 따라야한다”고 강조하고 “당시의 진정서, 투서등을 종단에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10.27법난이 더 이상 정치에 이용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의 기자회견을 비롯하여 종단 대표급 인사들의 분위기를 보면, 정부가 10.27법난의 진상 규명에는 미홉했으나 획기적인 보상을 하고 계속해서 종단에 대해 위협의 근거로 삼고 있는 투서 등 관련문서의 인수를 실행한다면 이 문제는 정리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특히 보상문제에 큰 관심을 가진 듯하다.
지난해 11월 16일 불교계 재야인사와 1027법난 당시 피해자들로 구성된 10.27법난 진상규명 추진위원회(위원장 : 정휴)와 대정부 창구일원화를 결의하면서 방향성이 분명치 않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10.27법난 문제에 대해 대정부 창구 역할을 맡은 이들(대표 : 송월주, 이혜성, 서의현, 김정휴)은 입장에서 본질적으로 큰 차이는 없는 듯하다. 다만 월주스님은 국방부 설명회에 참석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법난규명 추진위는 그 활동이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통불협, 정토구현 승가회, 대승불교승가회, 민불련 등 재야단체들의 입장은 견고하다. 단체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성명서, 기관지 들을 통해 밝힌 위 단체들의 입장은 정부의 진상조사 발표를 전면 거부하면서 국회차원의 조사(민불련)와 특별 검사제 도입(통불협)에 의한 조사 그리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교계 지도자급 인사로 통칭되고 있는 인사들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작지 않을 뿐더러 비타협적 투쟁을 촉구하고 있기도 하다.
불교신문, 법보신문, 주간불교 들과 같은 불교계 언론도 이 건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대체로 진상 규명에는 미흡하다는 평이다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1)사건의 발단과 배경
정부의 주장은, 79년부터 80년에 걸쳐 각 기관과 계엄사, 국보위 등에 투서, 고소, 진정서가쇄도하여 처음에는 자율정화를 촉구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어 80년 6월경 불교계를 정화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80년 4월 당시의 불교계는 79년에 개운사파와 조계사파 양측이 합의하여 선거를 통해 총무원장과 종회 의장단을 선출하는 등 화합의 분위기로 나아가고 있었으며, 새집행부는 불재법, 공원법개정 등 불교 자율을 촉구했었다. 한편 총칼로 정권을 잡은 부도덕한 전 두
환 정권에 대한 지지성명 발표 요청을 단호히 거부하였다. 결국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정권의 미움을 샀으며, 결국 법난의 한 원인이 된 듯하다. 또한 당시 정권은 자신의 부도덕성과 비정통성을 무마하기 위해 사회정화조치라는 기만책을 폈는데 10.27법난도 이의 일환으로 보인다.
따라서 투서에 의한 정화죄라는 정부측의 주장과 정치적 목적에 의한 종교탄압이라는 불교계의 주장으로 대립되고 있다.
2)지휘체계와 책임자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불교계 정화가 처음 거론된 것은 80년2월 계엄사령부의 자문 기구였던 계엄위원회(위원장 : 이혜성 당시 계엄사령관) 자체 회의였으며, 국보위사회정화분과위원회(위원장 : 김만기)의 건의로 80년 6월 국보위(상임위원장 : 전두환)가 합수단(단장 : 이학봉)에 수사를 지시하여 80년 9월 새로 부임한 합수단장 김충우 전보안사대공처장이 집행했다고 한다.
이 발표를 믿는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정부가 발표한 자료의 도표에서도 나왔듯이 합수단은 엄연히 지휘계통상 합동수사본부의 하수기관으로 본부의 지휘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수사관계사항은 관례상 국보위가 합수단으로 직접 명령을 하
달한다는 것이다. 계통에 따른 명령을 생명으로 하는 군대에서 자신의 직속상관으로부터가 아닌 다른 계통의 상관으로부터 한 번도 아니고 관례적으로 명령을 받았다는데 대해 납득할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우기 당사 합동수사본부장은 보안사령관이였던 노태우 현 대통령이 아니던가. 세청 개혁 주체세력의 핵심 중의 핵심 세력인 노태우 씨가 허수아비일 리도 없으니, 자신의 지휘하에 있는 합수단을 지휘하지 않았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이런 까닭에 재야불교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법난의 책임자로 노태우씨를 지목해 왔으며, 그가 최소한 직접 사과는 해야 한다는 것이 최근 불교계의 중론이다.
또한 김충우씨는부인했으나 10월 30일 전국 3,000여 사찰을 포함한 500여 곳을 수사했으면 수만 명의 병력이 필요했을 것이고 이러한 병력이 이동하려면 사전에 미국의 승인이 있었을 것이 아니냐는 설명회장에서의 어느 스님의 질문은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바가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한국군의 작전권이 미군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기 때문이 다. 결국 김충우씨는 이 물음은 당시 일개 대령의 신분이었던 자기로서는 대답할 만한 성질이 아니라고 하였다.
3)보상 문제
현재 정부는 방송국허가, 승가대인가, 불교회관건립협조, 불교관계법령개정 등의 보상책을 가지고 있으며, 이안은 이미 종단의 대표들과 협상을 거쳐 합의된 사항인 듯 싶다. 왜냐하면 종단관계자들은 불교계나 일반의 여론을 고려하여 이구동성으로 법난의 진상 규명이 미흡하다고는 하면서도 확실한 진상 규명보다는 불교중흥 차원에서의 보상 운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다수 불교대중은 이에 대해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명확한 진상 규명 없이 눈앞의 이익에 눈이 먼다면 불교의 명예는 다시 한번 크게 실추됨을 면치 못할 것이다.
4)자료 공개 및 인수
김충우씨는 전임 단장으로부터 불교계 정화에 대한 계획을 메모로 받았다고 하는데, 이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그토록 엄청난 계획을 어떻게 간단한 메모로 할 수 있겠으며, 그렇다고 해도 이것을 그냥 시행 할 수 있단 말인가.또한 정부측이 계속 주장하는 루서나 진정서 등은 누가 어떤 내용으로 얼마나 보냈는지 밝혀야 한다. 그리고 10.27과 10.30은 전혀 다른 지휘계통으로 이루어진 별개의 것이라고 하는데,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도 문서가 필요하다. 관계문서의 전면 개방으로 신빙성있는 진실이 드러나야 한다.
한편 서원장은 총무원을 출입하던 이봉락 보안사 요원이 보안사에서 기록을 보관하고 있다며 몇 년 동안이나 엄포를 놓았다고 증언하고 있듯이 정부는 더 이상 관련문서를 이용해서 불교를 정권의 시녀화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보안사 국방부 등에 보관되어 있는 자료를 전면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5)특별검사제 및 국회조사
그동안 정부의 사과담화와 설명회 등을 지켜본 모든 불교인들은 부실하기 찍어 없는 발표 내용을 보면서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불교인들은 국회차원의 조사나 각계 각층의 민주인사들로 구성되어 특별검사제에 의한 진상조사만이 올바른 사실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라는 데에 공감대를 넓혀가 고 있다. 가해자 스스로가 얼마나 진실한 사실을 밝힐 수 있으며, 더우기 현 대통령이 그 책임의 핵심인사라면 현정부가 이를 어떻게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진상 규명을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조사 주체를 꾸리기 위해 불교계는 한 목소리로 외칠 필요가 있다.
법난이 발생한지 8년이 지난 이제서야 겨우 미안하게 됐다는 사과를 받아냈다. 집안에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물건까지 홈쳐간 도둑이 용감한 사람들의 외침이 함성으로 되어 점점 커지자 돈을 조금 주면서 미안하게 됐으니 없었던 일로 하자는 식이다.
그러나 피해를 본 집안 식구들 중 누가 이 말을 받아들이겠는가. 사실 10.27법난의 진상 규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밟혀진 것이 별로 없는까닭에서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