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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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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방 한담 - 지묵 1989년 03월 85호
1 하심(下心) 잘 하는 주지 스님이 주지실 시자로 온 학인 스님에게 말하였다.
“저에게는 시자가 필요없습니다. 다른 주지 스님 모시게 될 때 잘 모시더라도, 이번만은 이름만 띠고 그냥 오지 마시오. 별로 할 일도 없는 데에다, 청소는 제가 알아서 하면 됩니다.”
이렇게 해서 시자 스님은 돌아갔다. 어느 객 스님이 주지실 방문을 두드렸을 때, 주지 스님은 마침 청소를 하고 있었다.
키도 자그마한데 구석구석 정성스레 물걸레질을 하고 있는 폼이 영락없이 이제 갓 입산한 행자의 모습이었다.
가사 장삼을 여법하게 수하고 온 건장한 객 스님이 말하였다.
“시자스님, 주지 스님께서는 안 계십니까?”
주지 스님이 청소하던 손을 멈추고 말하였다.
“들어오십시오.”
말씨조차 지극히 겸손하여 누가 보아도 주지실 시자로밖에 안 보였다.
객 스님이 의아해 하면서 말하였다.
“뒤에 다시 시간 내어 오겠습니다. 청소 잘 하십시오.”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난 객 스님이 저녁을 먹고 다시 인사차 가사 장삼을 수하고서 주지실 문 앞에 와서 말하였다.
“아니, 주지 스님은 여태 안오셨오?”
주지 스님이 말하였다.
“들어오십시오.”
그러나 객 스님은 주지 스님도 안 계시는 방에 어찌 먼저 들어가서 기다리겠느냐는 생각에 되돌아오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이번에도 가사장삼을 수한 객 스님이 주지실을 찾어갔다. 이때 주지 스님이 말하였다.
“제가 주지입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객 스님은 순간 당황하였다가 이내 버럭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니, 스님 같은 이가 대본산(大本山)의 주지라고요?”
주지 스님이 조용히 대답하였다.
“내 그렇습니다.”
그러자 객 스님은 느닷없이 주지 스님의 따귀를 올려불이면서 말하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작작해. 감히 너 따위가 주지라고 해!“
그러고는 황급히 돌아서서 가버렸다.

2 고구려 때의 보덕(普德)화상이 주지 노릇을 하던 때이다.
주지 스님은 방문객이 올 때마다 사자에게 늘 말하였다.
“고향 어르신이니 이부자리를 잘 챙겨서 모셔라.”
“고향 할머니 보살이니 변소 길도 잘 안내해 드려라!”
“고향에서 올라온 청년이니 밥을 뜨끈뜨끈히 잘 담아 모셔라.”
찾아오는 이마다 모두 그랬다.
“고향 아주머니이시다.”
“고향 동생이다.”
“고향 사람이다.”
주지 스님의 방문객은 모두가 고향 사람 아닌 이가 없었다.
사자가 궁금한 마음이 가득해서 참다 못해 주지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고향은 아주 큰 곳 같습니다.고향이 어디십니까?”
“그렇다. 내 고향은 아주 큰 곳이지. 그런데 네 고향은 어디냐?”
사자가 고개를 들고 말하였다.
“출가한 이가 고향을 일러 무엇하겠습니까?”
주지 스님이 말하였다.
“이런, 꽉 막힌 녀석 보았나? 아 너른 천지가 다 고향이 아니고 무어냐? 내게는
모두가 고향 사람이야!“
시자는 비로소 주지 스님의 말 뜻을 알아차리고, 그 뒤로 방문객들을 정말 고향 사람 만난 듯이 잘 모시게 되었다.

3 수도암(修道魔) 큰 법당 불전에 올려는 석유를 몸소 사셔 져 오곤 하는 주지 스님이 말하였다.
“부처님께 올릴 공양물은 청정해야 한다. 과일의 향기를 먼저 냄새 맡아 보아서도 안 되고, 떡을 맛보기로 먼저 입 대어서도 안 된다. 부처님께 올릴 공양물을 땅바닥에 놓는다거나, 다른 물건을 그 위에 올려놓아서도 안 된다.모름지기 제 몸 아끼듯이 지극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주지 스님은 마을에서 수도암까지의 거의 삼십리 길 되는 거리를 석유를 지게에 지고 오를 때에 한번도 지게를 땅에 내려놓는 법이 없었다. 정 쉴 양이면 그냥 서서 잠시 쉬거나 지게를 소나무에 기댄 채 서서 쉴 뿐이었다. 한번은 김천 시내에 나갔다가 산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전송 나온 노보살이 스님께 시주하며 말하였다.
“스님, 조그만 정성입니다. 이 돈으로 약을 지어 드시고 부디 건강하셔서, 저희들을 많이 깨우쳐 주십시오.”
또 다른 보살도 시주하며 말하였다.
“스님, 약값으로 쓰십시오.”
그렇게 봉투에 돈을 담아 올린 공양은 한결같이 약값이었다. 주지 스님은 그래서 절까지 터덜터덜 걸어서 왔는데, 그 까닭은 시주한 이의 뜻을 살려서 그대로 따르자니, 수중에 약값 몫의 돈은 있어도 차비가 한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지와 스님

1 내가 벌교 역사(釋舍)에서 의자에 앉아 하룻밤을 지낼 때의 알았다. 결망에 기대어 곤히 자다가 밤이 깊어지자 찬 기운에 잠을 깼다. 눈을 떠보니, 곁에서 내 걸망을 기대고 자는
웬 늙은 남자 거지 한 사람이 었었다. 그 거지한테서 고약한 찌린 냄새가 풍겨와 눈쌀을 찌푸리게 하였다. 나는 얼어나서 곧 걸망을 확 잡아끌어 반대쪽으로 가져갔다. 그러자 그 거지가 의자에서 쓰러질 듯 기우뚱하더니 깨어 일어나 앉으면서 볼멘소리로 말하였다.
“야 엄마! 너나 나나 같이 얻어먹는 처지에 잡아채기는 뭣 땜에 잡아채?”
내가 곧 말하였다.
“뭐라고? 모양이 비슷하다고 뱀인지 용인지도 가려보지 못해?

2 누덕누덕 기운 누비옷을 입은 도반 스님이 쌀을 서너 되 자루에 담아서 강냉이를 뻥 튀기는 집에 들어서니, 한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마당 한쪽에서 놀고 있다가 큰소리로 말하였다.
“야, 거지 온다?”
그때 마루 위에 올라앉아 숙제를 하고 있던 다른 꼬마 계집아이가 손가락으로 입을 가려는 시늉을 지어 보였다.
“쉬이잇!”
그런 다음 신을 신고 내려가 동생에게 귀옛말로 말하였다.
“거지가 아니고 스님이야.”
도반 스님은 두 계집아이에게 말하였다.
“거지도 맞는 말이고, 스님도 맞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