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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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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 정건영 1989년 03월 85호
사람마다 버릇이 있기 마련이다. 내 친구 기운데 어떤 친구는 어디고 앉으면 한쪽 다리를 덜덜 떠는 버릇이 있고, 손톱을 물어 뜯어 늘 굶주린 것 같은 친구도 있다. 또 어떤 친구는 아무데서나 가래침을 뱉는 버릇, 예쁜 여자의 머리칼을 보면 참지 못하고 잡아당기는 버릇이 있고, 술먹으면 으례 인생은 허무하다고 훌쩍거리는 친구도 있다.
그런데 내 버릇만은 좀더 유난스러운 데가 있어서 어려서부터 적잖이 두들겨 맞기도 하고, 어른들 훈계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 버릇이 바로 하품하는 사람 입 속에 손가락 넣기이다.
나는 누가 하품을 할 것인가 하는 전조를 대강은 짐작한다. 방안의 공기가 후덥지근하다 싶고, 모여 앉은 사람이 좀 나른해 할 때, 그때는 내 눈초리가 예민해진다. 그러다 콧방울이 벌룸거린다 하면 이건 틀림없는 하품이다. 그러면 슬그머니 준비태세에 들어갔다가, 그가 입을 벌리기 시작하는 순간에는 벼락같이 내 인지가 그 입을 향해 쏘아들어갔다가 나온다.
이러한 행위의 성공률은 거의 백 퍼센트인데, 그것이 좀 발전해서는 손가락을 휘젓는 데까지 미치고, 몇 번을 휘저었느냐는 기록 갱신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마치 다이빙 선수나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공중회전을 몇 번 하느냐 하는 아슬아슬한 재미를 스스로 맛보는 것이다. 사실 기네스북에 기록을 올린다면 단연 내 기록이 세계에서 으뜸가리라. 나는 일곱번이나 손가락을 휘젓고도 여유있게 뽑아낸 기록이 있었으니까. 이 아슬아슬한 묘기는 그 뒤에 닥칠 비난과 때로는 험악한 사태까지 염두에 두고 즐기는 묘미가 있으니, 제 버릇 쉽게 고쳐질 리가 없다.
이런 버릇이 채 여든이 되기 전에 나의 생애에 큰 사건을 던져 놓고 먼저 가버렸다.
봄철은 내 묘기의 극치를 이루는 시기다. 겨울잠에서 깨듯 따스한 봄볕이 만물에 내리쪼이면, 아침 나팔꽃처럼 여기저기서 하품들이 터져나온다. 그날 나는 사무실에서 동료 두 사람에게 그 버릇을 즐긴 뒤 의기양양해 하며 귀가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내가 서 있는 바로 앞자리에서 한 처녀가 끄덕끄덕 졸다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시작했다. 그것을 그대로 지나칠 내가 아니었다. 사람은 손이 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팔목을 잡아치우고, 또 한 손으로는 그녀의 업 안을 휘젓고 말았다.
아차, 이 무슨 실수란 말인가. 퇴근 버스에서 처녀의 입안에 손을 넣고 휘젓다니. 언제나 뒤늦게 후회를 하면서도, 하품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휘젓는 손동작 역시 멈출 수 없었다. 곧 옆에 있던 학생 둘의 웃음이 끼드득 터져나왔고, 내가 손을 빼고 그 여자의 하품이 멈추자 버스 안에서는 수라장과 같은 웃음이 터져나왔다.
여자는 이내 얼굴을 가리고 부들부들 떨다가 다음 정류장에서 쏜살같이 내렸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내가 악의 없음은 보여 주어야 할 것 아닌가. 차문이 닫혀지기 전에 나는 재빨리 버스에서 뛰쳐나왔다.
정류장에 내려선 여자는 독이 올라 식식거리다가 내 얼굴을 보자 돌아서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당황한 나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갖은 정성을 다해 사과하기 시작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어려서부터 생긴 버릇인데 고쳐지지 않는군요. 이젠 손가락이라도 잘라 버릇을 고치겠습니다”.
그 여자는 놀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함께 철물점에 갑시다. 당장 칼 하나 사서 손가락을 자르겠습니다.”
나는 여자의 팔을 잡고서 철물점에 끌고 갈 듯한 기세를 보였다. 그러자, 겁먹었던 여자의 얼굴이 점차 평온을 되찾더니 쌀쌀하게 말했다.
“숙녀한테 또 험한 꼴 보이지 말고, 손가락은 당신 혼자 가서 잘라요. 당장 내 앞에서 사라져요.”
“이거,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사과하는 뜻으로 제가 차 한 잔 사겠습니다. 응해 주시겠지요?”
나는 여자의 상한 마음을 풀어주지 않고는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여자가 응할 눈치를 보였다. 나는 근처의 아무 다방이나 눈에 뜨이는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뒤에서 따르던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이봐요. 당신 때문에 당황해서 핸등백을 떨어뜨리고 버스에서 내렸단 말예요. 이거 어떻하나. 백에 내 등록금이 들었단 말예요.”
여자는 또 길에 서서 울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는 또 여자의 팔을 꿰어차고 택시를 허겁지겁 부르기 시작했다. 퇴근 무렵이라 만원권을 꺼내 흔들어서 겨우 잡은 택시를 타고 종점까지 가서야 우리는 그 버스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줌마가 빗자루질을 하고 있는 버스에는 핸드백은 커녕 손수건 한장 있지 않았다. 나는 한숨이 새어 나왔고, 정말 손가락을 잘라내고 싶은 충동까지 생겼다. 그러다가 나는 그녀를 끌고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술집에 가서 허탈한 심정으로 술을 마신 뒤 동록금을 대겠노라는 각서를 썼다.

그 여자는 지금 내 아내가 되어 있다. 두 아이를 낳고, 생활에는 별 불편이 없이 살고 있다 그러면 내 손가락 버릇은어찌 되었는가.
아내는 정말 하품이 나서 못 참겠나는 투로 콧구멍을 벌룸거리다가 나팔꽃처럼 입을 벌린다. 내 손가락이 재빨리 튀어들어가 휘젓는다. 그러면 아내는 손가락이 깨져라 물어버린다. 그녀의 하품은 연기였고, 내 기술만 작살나고 만다. 그러기를 거듭하다가 그 버릇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끔찍하게 깨물린 일이 있다. 그녀가 그 옛날 버스에서 등록금이 든 핸드백을 떨어뜨렸다고 한것은 나에 대한 복수심에서 한 거짓말 불과했다. 두 아이를 낳고야 그녀는 이 사실을 고백했다.
행복하냐구요? 글쎄…내 인생 자체가 손가락 깨물리기였으니… 나는 정말 눈물이 날 만큼 하품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