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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에 의한 한 여자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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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앞의 잣나무 - 동봉 1989년 03월 85호
86년가을이었던가. 세종문화회관소강당에서 불교음악회가 있다기에 간 적이 있다. 원래 음악에는 문외한이면서도 나름대로 관심을 갖고서 연주회다 음악회다 하면 부지런히 찾아가곤 한다. 그런데 다른 종교의 음악회도 대부분 마찬가지겠지만 불교음악회의 레퍼터리는 아주 단순하다.
처음에 삼귀의 찬불가를 집어 넣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끝에 가서는 사홍서원, 붓다의 메아리로 조명은 사라지고 막이 내린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피아노 독주니 바이올린 독주니 이중창이니 하며 몇 곡 끼워 넣으면 되는 것이다. 너무나 판에 박은 듯한 것이어서 식상하기가 십상팔구(十常八九)다. 뭔가 좀 신선한 충격을 줄 만한 것은 없는가. 고정된 관념으로부터 탈피할 만한 소재는 없는가.
그런데 그날은 그게 아니었다. 한 시간하고도 반은 남짓 따분하게 앉아 있던 내게 신선한 느낌을 가져다 준 것은 마지막으로 찬조 출연한 작품이었다. 흔히 전위음악이라고 하는 것으로 곡명은 세 남자의 의한 한 여자의 고통으로 기억된다. 물론 지휘자도 생각나지 않는다. 하긴 연주자도 그것은 기억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이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다만 내용이 가져다 준 그 어떤 충격 때문에 지금도 가끔씩은 떠올려 보는 것이다.
내용은 이러하다.
공간 한가운데는 의자가 하나 있고 의자 옆에 밧줄이 놓여 있다. 공간 왼쪽에는 빈 드럼통이 한 개 있고, 공간 오른쪽에는 전신을 비출 만한 커다란 거울이 있다. 그리고 바닥에는 빈 깡통, 요구르트통들과 같이 건드리면 소리나는 잡동사니가 널려 있다. 그리고 거울 옆에는 도끼와 쇠사슬이 있고 조명은 좀 어두침침하게 비친다.
제1의 남자가 나와서는 사방을 둘러보고 나서 청중을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그러고 나서는 왼쪽 공간에 세워져 있던 빈 드럼통을 옆으로 굽혀서는 무대 위를 굴리고 다닌다. 바닥은 온갖 허접쓰레기로 널려 있기 때문에 드럼통 굴리는 소리는 매우 요란하다. 잠시 뒤에 제2의 남자와 한 여자가 동시에 등장한다. 여자는 의자를 끌어다 거울 앞에 놓고 앉아 가방에서 빗을 꺼내 머리를 빗는다. 이때 제2의 남자가 다가와 의자 옆에 있던 밧줄로 여자의 몸을 절박한다. 여자는 비명을 지른다. 남자가 오라를 조이면 조일수록 여자의 비명은 한 옥타브씩 높아져 간다. 그러고 나서 남자는 곁에 있던 쇠사슬을 들고 바닥을 후려갈긴다. 여자의 비명 소리가 자지러진다. 드럼통 굴리는 소리, 쇠사슬로 후려갈기는 소리, 여자의 비명 소리, 그러면서도 반항과 조소가 섞여 있는 비명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불협화음을 이룬다.
이때, 제3의 남자가 나온다. 품속에서 준비해 온 여자의 죄목을 꺼내 읽는다. 치마가 아니고 바지를 입은 죄, 개성이 지나치다는 죄, 한국 여자가 영어를 쓴다는 죄 등의 죄목들을 주절주절 읽어 내려 간다. 여자는 알 수 없는 꼬부랑말로 반항한다. 비명과 조소를 함께 섞어가면서 쫑알댄다. 마침내 제3의 남자가 폭발한다. 도끼로 기물들을 부수기 시작한다. 거울들을 깨버린다. 끈이 덜렁거리는 헌 군화를 신은 채 빈 깡통, 요구르트통을 짓밟기 시작한다. 그 소리는 매우 요란하다. 도끼로 드럼통을 두들겨 팬다. 가관이다. 여자의 비명은 더욱 자지러지고 급기야는 숨을 헐떡이며 축 늘어진다. 여기서 조명은 걷히고 박수소리와 함께 작품이 끝난다.
나는 여기서 이미 천여 년 전 우리 선사(輝師)들이 보여 주었던 선문답(輝問答)을 떠올렸다. 그렇다. 무릎을 치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바로 그거였다. 뒷골이 서늘해지는 충격이
었다. 권선정악을 부르짖고, 윤리도덕을 강조하고 인간의 삶이 어떻고 하며 가장 평범한 교육으로 길들여져 온 납자(納子)에게 선사가 느닷없이 내지르는 충격요법이라고나 할까. 방망이를 휘두르고, 외마디소리를 벽력같이 지르며, 눈을 꿈벅이고, 옆구리를 찌르고, 손가락을 들어보이는 등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기행들에서 뒷골이 서늘한 감각을 맛보았다. 또한 생명 부딪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임제의현(臨濟義玄 : ?-867)스님은 황벽회운(黃훌希運)의 법제자로서 임제종(臨濟宗)을 연 당대의 결승이었다. 스님이 황벽스님 밑에서 삼년 동안수련하고 있을 때, 황벽의 수제자인 목주(陸州)스님이 다가와 물었다.
“이 회상(會上)에 오신 지 몇 해나 되오 ?”
“벌써 삼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면 그동안 조실스님께 가서 누차 법을 물어 보긴 했겠구려.”
“아직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니, 이 회상에 온 지가 삼년이나 되었다면서 아직 한번도 법을 묻지 않았다니 …공부도 중요하지만 가끔씩 큰스님을 찾아뵙고 지도를 받아야 진척이 있는 법이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나 한번 물어 보시구려.”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불법의 적실한 뜻이 무언가 불어 보오.”
임제는 목주가 가르쳐 준 대로 황벽스님을 찾아 예를 갖추고 굻어 앉아 물었다.
“어떠한 것이 불법의 적실(的實)한 뜻입니까? 하자 황벽스님은 그 묻는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임제에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임제는 얼떨결에 몽둥이를 맞고는 당황해서 아픔도 못 느낀 채 쫓겨났다. 그러자 그뒤 목주가 물었다.
“그래 문답은 어떻게 되었소?”
“말도 마십시요. 제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실스님은 저를 몽둥이로 후려갈겼습니다. 도대체 제가 무얼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 뒤 얼마 지나서 목주는 다시 한 번 물어 보라고 임제에게 권하였다. 임제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법을 물었으나 똑같이 방망이로 얻어맞고 물러났다. 그 다음에도 또한 그렇게 얻어맞았다. 임제는 황벽스님파 인연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목주에게 가서 말했다.
“스님의 자상한 지도를 조실스님께 법을 물었으나 세 번 묻고 세 번을 스무 방망이씩 얻어맞았습니다. 업장의 두께를 실감하며 작별을 고합니다.”
“정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조실스님께 하직인사나 드리고 가소. 삼년이나 정든 곳이 아니오?”
임제는 황벽스님을 찾아 하직인사를 올렸다. 황벽스님은 고안탄두(홈安轉頭)의 대우(大愚)스님을 칭1아봐라고 일렀다. 임제가 대우스님에게 가니 대우스님이 물었다.
“수좌는 어디서 왔는가?”
“황벽스님 회상에서 오는 길입니다.”
“그래 황벽에게서는 무슨 법문을 들었느냐?”
“불법의 적실한 뭇이 무엇이냐고 세 번 물었습니다만 세번 모두 몽둥이만 맞았습니다. 제게 무슨 허물이 있기에 그랬습니까?”
“이 멍텅구리야, 황벽스님이 그토록 노파심절로 너를 위해 수고했는데 그 은공을 모르고 뭐 허물이 있느냐고?”
대우스님의 이러한 역정에 임채는 활연히 깨닫고 황벽의 불법도 원래 별게 아니었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이 말을 들은 대우스님은 임채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이런천하에 잡놈 같으니라구, 무엇이 어쩌구 어째. 네 이놈. 어서 말해 봐라 무엇을 보았느냐?”
그러자 임제는 대우스님의 옆구리를 세 번 쥐어박았다. 대우스님은 임제를 밀치면서 말했다.
“너의 스승은 내가 아니고 황벽이니, 황벽에게로 가라.”
그리하여 임제는황벽의 법을 이어 천하의 숱한 납자를 제접하였다. 특히 임제는 덕산(德山)의 방(棒)과 아울러 할(喝)로 유명하게 되었다.

자, 착각해서는 안된다. 전위음악이 가져다준 충격과 선문답에서 오가는 생명의 부딪침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곧잘 이러한 전위예술을 대하면서(그것이 음악이든 영화이든 미술이든간에) 초현실주의가 가져다 주는 그 어떤 느낌을 상당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직 흔적이 남아 있다. 설정(設定)의 자취가 남아 있다. 아직 장갑을 벗어 버린 맨손끼리의 부딪침이다. 앞의 음악과 같은 경우는 어떻게 진행하여 가리라는 구상 속에서 진행된 것이지만, 선사들의 문답은 그러한 구상까지도 없다. 온갖 격식을 떠난 순수 그것이다.
전위예술이 외계에 의한 감성의 교섭을 목적으로 한다면, 선사들의 세계는 마음과 마음의 맞부딪침이다. 펄펄 뛰는 생명의 활동 그 자체다. 쉬톡하우젠의 “마이크로폰 I, II”라든가 황병기씨의 미궁(迷宮) 등을 듣노라면 늘 “세남자에 의한 한 여자의 고통“을 떠올리게 되고, 그러곤 우리 옛 선사들의 생명 부딪치던 소리를 듣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