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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상좌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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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박용길 1989년 03월 85호
지난 수십 년간에 걸쳐 동남아시아의 상좌부불교는 다음과 같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계속해 왔다. 첫째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불교 교육의 꾸준한 신장, 둘째 재가신도들의 상대적인 지위 향상, 세째 적극적인 전법활동, 네째 국제적인 불교 교류의 증가와 초종파적인 유대 강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사회의 근대화와 더불어 전상좌부불교계는 전통적인 교육제도에 있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승려들에 의해 실시되어 온 전통적인 세속 교육에 있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것은 물밀듯이 밀려들어 오는 서구의 새로운 학문으로 점차 대치되어 갔다. 나아가서는 전통적인 보통 교육기관인 사원학교까지도 점령당국에 의해 설립된 기독교학교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전체 상좌부불교도들은, 앞으로 불교가 그 본래의 의미를 다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교교육에 있어 실로 광범위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최근의 수십 년 동안 불교도들은 질적으로 향상된 현대식의 교육제도를 도입하여 이를 시행해 왔다. 1946년 이래, 다섯 개의 불교대학이 각국에 설립되었는데, 각각 스리랑카에 두 개, 태국에 두 개, 그리고 캄보디아에 한 개씩이다. 이들 모든 대학에서는 빠알리어 교육이 실시되고 있는데, 어느 경우이건 그것은 현대의 다양한 세속학문에 의해 질적으로 보강된다. 그리고 그 목표는 한마디로, 학생들로 하여금 불교의 현대적인 의미를 발견케 하는 동시에 이를 통하여 사회발전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 가운데 대부분은 하급의 불교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거나 또는 최근 태국에서 조직된 드함마두파 프로그램(Dhmmnadufa Program)등과 같은 각종 사회개발 계획에 참여하기도 한다. 당시의 이와 같은 새로운 움직임은 승가는 물론 사회 전체로 깊숙이 침투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1954년 버어마의 랭군에는 대학 수준의 불교 교육기관인 고급불교학원(Institute for Advanced Buddhist Studies)이 설립되었다. 하지만 이는 국내의 정변(政變)에 따라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출발과 동시에 좌초되고 말았다.
불교 교육제도의 개혁은 보통교육제도에 대한 불교의 참여를 크게 촉진시켰다 불교의 사원학교는 실로 광범위한 지역에 퍼져 있었지만, 정부에 의한 교육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이에 따라서 태국, 라오스, 그리고 캄보디아 등지에서는 공립학교에서 승려가 교사로서 일하며 불교를 가르치는 것이 기정사실로 받아 들여졌다. 하지만 버어마와 스리랑카에 있어서는 사정이 달랐다. 그곳에서는 기독교의 목사와 더불어 승려가 공립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학교육에 있어 불교의 새로운 시도는 각각의 특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상좌부불교계에 있어 두번째로 중요한 발전은, 재가신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신앙부홍운동 이다. 태국에서는20세기초의 수십 년에 걸쳐 드함마유트(Dhammayut) 계획에 의거한 경전읽기 운동이 대대적인 규모로 실시되었다. 1929년에 는 두함마수끄사(Dhgmasuksa, 정법교육)계획이 입안되어 승려들에게 적용되는 수준에 준하는 신도교육이 실시되었다. 1936년 말경에는 팔천여 명의 남녀 신도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였으며, 1958년에는 그 수가 세 배로 증가하였다. 이보다는 덜 조직적이고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버어마와 캄보디아 그리고 스리랑카의 재가신자들 사이에서도 이와 비슷한 프로그램이 운용된 적이 있다.
버어마, 그리고 최근의 태국에l 있어서의 재가불자 운동은 똑같이 명상수행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특정을 찾을 수 있다. 버어마의 승가는 전통적으로 명상수행을 중요시해 왔으며, 근래에 들어와서는 일반의 재가신자들을 위한 간단한 명상법이 많이 소개되었다. 이와 같은 새로운 기법의 명상수행을 지지하는 이들은, 장기간의 수련을 요하는 동시에 난해하기 그지없는 종래의 참선〔ihama}은 정신적인 정화와 신앙적인 깨달음을 위해서는 실제로 별 소용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고안해낸 방법만으로도 얼마든지 신속하게 그리고 곧장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역설한다. 1900년대 초기에 소개된 비빠사나수행(Vipassana, 觀法)의 새로운 기법은 각지에 설치된 명상센터의 단기과정을 통하여 재가신자들 사이에 널리 보급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 이미 이들 명상센터는 버어마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으며 동시에 주변의 상좌부불교 국가로 급격히 확산되었다. 1962년에 들어서면서 버어마에서는 약 이백여 개의 명상센터가 설립되는 한편, 태국에서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초기에 걸쳐 거의 모든 도시에 이 운동이 널리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라오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상좌부 불교국에서는 청소년을 포함한 재가신자들의 단체활동이 크게 증가하였다. 각성원의 신앙활동을 북돋아주기 위하여 그들은 공개강의와 토론 및 각종 출판물 간행은 물론, 교육과 전법 (傳法), 그리고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하였다. 각 단체를 통하여 재가신자들은 상좌부불교계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 할 수 있었으며 그 영향력은 더욱 증대되어 갔다 여성들의 참여도 크게 눈에 띄었다. 특히 수 년간에 걸쳐 태국불교계의 대변인으로 활동해 온 푼 피스마이 디스쿨(Poon Pismai Diskul)공주는 현재 세계불교도회(The World Fellowship of Buddhist, W.F.B.)의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국제 교류와 전법 활동 동 나머지 두 부문에 있어서의 발전은 비교적 최근의 일로서 현재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최초의 의미 있는 국제 교류프로그램은 189l년에 출범했는데, 당시 스리랑카의 승려 아나가리까 드함마빨라(Anagarika Dhammapala)에 의해 대각회(大覺會, Maha Boddhi Society)가 설립되면서부터였다. 설립된 지 수개월 뒤, 본회는 국제불교도회의 및 스리랑카, 버어마, 중국, 그리고 일본 등의 불교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본회의 주요 관점사는 무엇보다도 인도의 불교성지 재건이 최우선이었다. 이에 앞서 본회는 인도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불교 전파와 불교문헌의 출판을 그 목적으로 하는 초종파적인 국제수행단체를 사르나뜨흐(samath)에 설립하기 위한 지지를 호소하였다. 수년동안 이는 스리랑카 불교도들의 잘 규합된 힘을 세계에 널리 과시했으며 아울러 통남아 불교권에 있어 실로 커다란 종교적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중 상좌부불교계에서 일어난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으로 무엇보다도 제6차 결집(111e Sixth Great Buddhist Coacil)올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버어마 승려들의 주도하에 계획되고 실행되었지만, 그 성원은 각국의 상좌부불교도를 망라하였다. 역대의 모든 결집이 그러했듯이, 본 결집의 목적도 일차적으로는 부처의 가르침과 계율을 확인, 정립하는 데에 있었다. 하지만 본 결집에서는 그외에도 불교교육의 강화와 승가의 사회참여, 그리고 불교의 전파에 더욱 힘써야 할 필요성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또한 본 결집의 개최전 및 회기를 통하여 불교계의 지도자들은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서구문물 및 기독교에 대해 불교가 슬기롭게 대처해 나아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크게 역설하였다. 이를 통하여 그들은 불교의 윤리관을 정립함으로써 서구의 문물 및 공산주의 이론을 극복할 도구를 자체적으로 확언한 것은 물론유럽 및 미국 둥지의 서구사회에 대한 불교의 영향력을 좀더 증대시킬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었다.
최근의 수십 년간에 걸친 이와 같은 일련의 변화는 상좌부불교계의 창조적인 발전과 활력을 크게 고무시켜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불기 2500년을 기록하는 해가 상좌부불교사상 신기원을 수립하는 새로운 불교부홍의 원년인 1956년이라는 사실은 실로 역설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지난 십오 년간 라오스와 캄보디아에 밀어닥친 정치적인 혼란은식민지 시대 말기 및 독립초의 보잘것 없는 불교현대화 운동마저 무참히 짓밟아 버렸다. 아울러 이 두 국가의 현대적인 위기는 그곳의 불교 존립 자체를 크게 위협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 스리랑카와 버어마에서는 1950년대의 희망이 60년대와 70년대의 국가적인 안정과 이에 의한 불교적전통의 효과적인 보존을 위한 냉철하고도 현실적인 투쟁으로 대치되었다. 한편 태국의 상좌부불교는 최소한 외견상으로는 상당히 희망적인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십오 년 동안 태국불교는 신앙적인 면에서 상당히 창조적인 면모를과시해 왔으며 교육의 질과 양에 있어서도 꾸준히 발전해오는 한편, 승려들의 대사회적인 역할이 크게 증대되었다. 재가신자들에 대한 교육 및 이들의 지위 또한 발전을 거듭해 왔으며, 새로운 명상수행법과 불교에 대한 실질적인 관심이 지구상의 다른 어느 곳보다도 높은 수치를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태극에서조차도 불교 지도자들은 예측불허의 불안정한 정치, 사회적 상황하에서 인간의 욕망과 전통적 유산의 조화라는 난제가 맞닥뜨려지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연재를 마치며

웬일로 동네 개들어 법석을 떠는가 해서 문을 열어보니 회멀건 달이 저리도 두둥실 밝았구나!
달빛을 살짝 베어 물은 구름조각이 먹빛 실루엣을 드리운 대보름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제 본 연재의 지난 궤적을 되짚어 본다.
정말 남방샤Tm처럼 헐렁하기 짝이 없는 지식으로 남방불교이야기를 엮어 나오다 보니 아직도 무언가 개운치 않은 여운이 뇌리를 맴돈다. 우리 불교도 잘 알지 못하는 주제에 외국서적 몇 권 보고, 또 현지를 잠깐 기웃거려 본 것과 귀동냥을 밑천삼아 만용을 부려온 자신이 참 위대하다는(?)생각도 든다. 하지만 남방불교-정확하게는 상좌부불교-에 대한 국내 불교인들의 관심 고조에 때맞추어 최소한의 범위에서나마 그 개괄적인 소개를 시도해 보았다는 점만큼은 그래도 갸륵하게(?) 보아주리라고 믿는다.
조금 아쉬운 점은, 서구 열강에 의한 식민지 통치하에서 상좌부불교가 과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최근의 정치, 사회적인 격변기를 맞이하여 버어마 및 캄보디아 불교가 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와 같은 동남아 상좌부불교의 현재적인 위상을 이야기해 보지 못했다는사실이다.
다시 새로운 만남이 있으리라는 기약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이만 필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