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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분규가 없는 불교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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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김관용 1989년 03월 85호
1975년12월 23일 이른아침, 서울중구 충무로 라이온스호텔의 커피숍. “에, 오늘이야말로 우리나라 불교 일천육백년사에 처음으로 혁명이 일어나는 날입니다. 여러분, 이 작전대로 움직여 주십시오.”
ㄱ스님의 종권 쿠데타가 카운트 다운되는 순간이었다. ㄱ스님은 안경 너머로 핏발이 서 있는 둥근 눈을 굴렸다. 이십여명의 검은 ‘점퍼’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그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쿠데타 작전의 임전태세를 가다듬었다. 어떤 사람은 검은 보자기에, 어떤 사람은 등산백에 무엇인가 가득히 채워 갖고 있었다. 재크나이프, 카빈대검, 밧줄, 쇠파이프 등의 흉기였다.
ㄱ스님은 종권 쿠데타의 야망을 펼쳐보였다. 오늘밤 성공하면 내일 나는 십조원의 재산을 갖고 있는 조계종의 주인이 됩니다. 여러분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발췌, 이 은윤 : 한국불교의 현주소 P.225-p.231)
이렇게 시작된 종권 쿠데타는 열세 시간 만에 경찰에 의해 진압됐다. 이전까지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해프닝이었다. 그러나 그뒤 이같은 무력 침공에 의한 종권 찬탈은 종권 분쟁에 있어서 해결사적 모델이 되었다.
그래서 결국 종권 분규는 주지직을 둘러싸고 급기야 승려 살인이라는 신흥사 사태까지 야기 시켰다. 종단의 최고 책임자인 총무원장이 불교의 백년대계를 위해 순리적으로 불교계를 이끌어 가기보다는 총무원장의 재직시에 보다 많은 사찰을 자기 문중이나 파벌의 휘하에 두어서 총무원장직을 떠나도 막강한 힘을 휘둘러 불교계를 좌지우지하겠다는 발상이 이러한 분규의 시발점 것이다. 또한 이에 부당한 침해를 받거나 하여 현직에서 쫓겨난 자가 와신상담하여 종권도전의 기수로 나타남으로써 분규는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되었다. 막강한 권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총무원장의 직책이라는 것은 비구, 대처 통합종단으로 출범한 62년 이후 이십삼년 동안 이십오명의 총무원장이 교체됐고 임기 4년을 채운 원장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점에서도 역설적으로 증명된다.
일단 분규가 일어나면 부처님의 법을 따르고 청정한 스님을 존경하는 불교 신도들에게 막대한 정신적 피해를 준다. 지금 젊은 불자들이 어느 장소에서도 떳떳하게 나는 불교를 믿는다고 대답할 자부심을 느끼고 있을까? 불교계가 그러한 자부심을 심어 주었을까? 천만의 말이다.
불교의 최대 종지는 연기론적 사고와 실천이다. 이러한 연기론적 사고와 실천은 냉철한 이성과 더불어 종교적 도덕심을 기본 전제로 한다. 행동하는 지성으로서의 양심이 없는 승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펴서도 안되고 펼 자격도 없다. 하물며 매종적이고 마구니적인 승려들이 불법의 가면을 쓰고 갯밥 싸움을-벌인다면 구토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80년 이후 많은 불교도들이 이땅의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갖은 탄압과 어려움을 뚫고 꿋꿋하게 일해 왔다 얼마전에는 불교가 더 이상 이대로 방치되어선 민족사 속에서 침몰하겠다는 위기의식을 가진 스님과 재기신도에 의해 제24회 국제올림픽을 민족의 하나됨을 위해 남북화합공동올림픽으로 치루려는 대원을 가지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봉은사 사태의 파장으로 그러한 노력이 미미한 성과를 나타낼 만큼 종단분규의 비도덕적 파장은 큰 것이었다
그뒤 봉은사 분규 수습은 정도를 걷지 못한 채, 작년 12월 27일 밀운스님 일파에의해 비상종단의 껍질을 덮어쓰고 조계종총무원 간판이 걸렸다. 현 총무원은 애써 평온함을 보였으나종단행정의 앞길은 먹구름으로 덮여 있다. 지방 스님들의 소식에 의하면 봉은사쪽 규정부원이라고 자칭하는 승려들이 전국 사찰을 돌면서 현 총무원에 분담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못내도록 강요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방 사찰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이를 빌미로 현 총무원의 지시를 거부하면서 눈 앞의 이익에 매몰되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다가 다시 한번 신흥사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불교계는 방향키를 잃은 나룻배처럼 표류할 것이 자명하다.
1월 23일 석림회 주최로 한국불교의 정화이념을 재조명하는 토론회가 있었다. 54년 비구, 대처 분쟁의 내외적 의미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모임이었다. 비록 참가자의 난상 토론과 현격한 시각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참다운 정화의 길을 생각케 하는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이대로의 불교로 유지되어서는 안 되고 혁명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참가자들의 공통된 시각이었고, 듣는 이는 누구나 여기에 동의할 수 있었다.
해방 이후 한국불교사를 보면, 특히 종권사를 보면 누가 더 권력층과 가깝느냐에 따라 조계종의 총수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로 조계종은 권력 종석적인, 정권 유지적인 호국불교, 어용 불교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종단분규의 내적, 외적 여건을 보면 항상 권력자의 불교분할 통치 의도와 이에 맞물려 돌아가는 매종적 세력들에 의해 두 개의 대항 세력이 존재하였고 집권층은 이 두 세력을 자기의 의도대로 움직였던 것이다. 공작정치의 속성과불교계의 대응 태도가 항상 이러했기에 석림회는 ‘현 조계종단 내분 관계자들의 퇴진 결단을 촉구하며’라는 성명서에서 폭력과 인신공격으로 종권에 도전하여 이 종단을 수라장으로 만들고 교단의 품위를 땅에 떨어뜨리게 한 변 밀운 스님과 봉은사 분규의 반발과 처리 과정에서 종단의 명예를 최악으로 실추시킨 서의현 스님의 동시 사퇴를 요구했다.

이제 조계종단은 새롭게 시작한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중진스님의 사리사욕을 떠난 중지에 의해 일어서야 한다. 문맥, 문중, 파벌에 의해 강요되어 침묵을 지키거나 현 상태가 추악한 모습이라고 몸을 돌려 버리는 행위는 결코 불제자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상의상관의 연기관계속에서 배태된 현 상태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는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할 수 있는 신심을 바탕으로 무소의 뿔처럼 실천행하는 보살도의 노력만이 요구될 뿐이다. 누가 해야 한다든지, 누가 하겠지라는 방관자적인 태도나, 나의 수행과는 무관하다는 현실도피적, 진리 도피적 태도가 음으로 양으로 종단 분규를 일으키는 요소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정녕 이판의 구도 열과사판의 행정이 어우러질 때 참구도의 하화중생적 상구보리가 있을 것이다.
종단 분규로 인한 불교의 비자주적이고 반민주적인 뿌리가 단지 불교 내적인 문제만은 아니지만 우리 불자가 자존심을 갖고 자주, 민주, 통일의 역사적 도정을 함께 해 나가기 위해서는 종단의 제도 개혁과 더불어 봉건적 잔재의 일소, 그리고 지혜롭고 순리적이며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대중에게 책임을 질 수 있겠끔 하는 대중스님들의 자각된 목소리가 요구된다.
이땅의 스님은 당연히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1 아니라 뭇 대중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구조적으로 억누르고 질곡하는 모든 장벽을 제거하는 노력 속에서 그 존재의 의가 찾아져야한다. 종단 분규가 없는 불교의 발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고 쟁취하여 획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