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사회복지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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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용권
1989년 03월 85호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적인 풍요 이면에는 소외된 사람이 많아서, 이들을 위한 복지정책이 필연적이다. 특히 고도 경제성장정책의 그늘에 가려진 많은 사회적 요구가 근래에 와서 심각하게 표출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이들을 위한 대책은 매우 시급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사회정책의 하나인 복지대책은 정부주도형 시책만 가지고는 그 요구에 미치지 못한다. 이는 복지를 위한 인위적, 물적 자원이 부족하며, 사업론에 있어서도 관이 주도하기에는 한계를 가진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 민간 사회복지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것이 종교단체의 지원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민간사회복지 시설의 대부분이 카톨릭과 개신교단체, 또는 교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그동안 불교계의 사회복지는 타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에 비해 양적으로 비교도 안될 만큼 뒤져 있음을 지적하는 의견이 많았으나, 이제는 그에 힘입어 미홉하나마 사회복지 사업에의 참여에 대해 불교인들이 뜻을 가지고 있음을 도처에서 확인하게 된다.
그러한 불교계의 사회복지 사업 발전을 위해 몇 가지 생각올 해 보자.
첫째, 앞으로 시행될 사회복지 사업에 있어서 가장 중시되어야 할 사항은 전문화가 아닌가 싶다.
모금이나 성금 등에 의한 일시적 자비행이 곧 사회복지 사업일 수는 없기 때문에 사회복지 활동에 있어서 사회복지 전문가의 활발한 기용이 필요하다. 또한 이런 전문가들이 일할 수 있는 연구단체나 협의체를 종단을 초월하여 구성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단체별로 전문 부서를 두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전문적 사회복지 종사자는 대체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정확한 이론과 지식을 바탕으로 갖고서 서비스를 정확하게 할 수 있는 기술, 사회적 불의와 불공평을 예리하게 뚫어보는 감수성, 사회문제의 원인을 찾아내는 사회과학적 시각, 그리고 사회복지적 인간관 내지 가치관, 사회복지에 대한 사명감과 클라이언트에 대한 깊은 애정,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양 등이 있어야한다. 일년에 수천 명씩 배출되는 사회복지사 중 쓸만한 일꾼이 없다고는 보지 않는다.
한편 사회복지가 교세 확장의 수단이나, 개인, 또는 불교단체의 권위를 위해 이용되어서도 안되며, 불교인과 불교단체는 사회복지에 대해서 복지의식을 지속적으로 재생산시키며 물질적인 자원이 되어주는 것 이상으로 기대해서도 곤란하다. 그것이 진정한 불교의 포교 자세가 아닌가 싶다.
어쨌든 사회복지 사업은 사람을 중심으로, 사람에 의해 시행되기 때문에 전문가를 이용하거나 기르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사회복지 사업에 있어서 반드시 시설부터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거금을 들여 시설을 해놓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걱정해야 할 필요는 없다. 복지를 위해서는 시설이 필요하다는 고정관념이 현실에 꼭 맞는 것은 아니다. 요즈음에는 시설 수용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반성하는 소리가 적지 않게 있기도 하거니와, 어찌 보면 현대사회의 요구는 물질로 해결할 수 없는 비화폐적인 면에서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의 해체와 도시사회의 반사회적 병리, 빈부의 격차, 청소년의 탈선, 고령화사회의 문제, 환경오염 등 사회를 병들게 하는 요소들에I 대처해야 할 일들이 산재해 있으므로 불교계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적절히 활용하는 방안부터 생각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세째, 사회복지가 꼭 하향적이고 소비적인 것만은 아니다.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일은 자비행을 실천하는 일로서, 보시는 그 실천의 첫덕목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 대상임을 알아야 한다. 특히 나는 아니다∙라는 예외 의식을 우리 불교인들이 더 심하게 가지고 있기도 하거니와, 사실 내가 괴로움을 당하면서 남을 돕기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각 불교 단체가 자체 구성원들의 복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 좋은 보기는 신용협동조합, 소비자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과 같은 협동조합 운동을 통해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것이며, 상조회나 공제회와 같은 자력복지의 기틀을 통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의료복지나 아동, 청소년, 노인, 부녀, 장애자복지 시설을 갖추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불교의 모습이 우리가 표방하는 대승불교나 현실 사회와 매우 동떨어져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지 고민스럽다.
우리 불교의 활로를 열기 위해서라도 사회의 현실적인 괴로움과 그 원인을 치유하는 데 불교계가 앞장서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정한다면, 지금이라도 조금만 관심을 쏟으면 불교계가 할 수 있는 사회복지 사업은 얼마든지 발견 할 수 있다. 불교단체 운영자들이 이러한 일을 위해 사람을 찾고 자원을 활용하는 데 게으름만 피운다면 무슨 면목으로 부처님 이름을 벌어 일을 도모할 것인가 부끄럽지 말아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