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수행승, 그 이름 위에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시론 - 문혜관 1989년 03월 85호
욕심도, 세속의 명예도 모두 버린 채 오로지 인생의 근본 문제에 매달려 깊은 산에서 죽이면 죽, 풀나물이면 풀나물을 뜯어 먹어도 마음만은 넉넉하게 미소 띠우는 수행승. 오늘의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수행상이 아닐까.

봄이 되면 산새가 지저귀고 계곡물도 눈을 떠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먼 산 아지랭이 속에서 노고지리는 하늘을 타고 오른다. 거기, 구름이 쉬어가는 곳에서 한 철을 지니고 누더기 걸친 채로 깊은 산길을 내려오는 수행승. 욕심도, 세속의 명예도 모두 버린 채 오로지 인생의 근본 문제에 매달려 깊은 산에서 죽(網)이면 죽, 풀나물이면 풀나물을 뜯어 먹어도 마음만은 넉넉하게 미소 띄우는 수행승. 오늘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수행상이 아닐까.
세속인들의 욕심으로는 세속문화를 단절한 채 한지창에 장작 지피면서 석유등잔불로 불 밝히는 토굴을 더 사랑하겠지만, 인생이란 그렇게 낭만적으로만 살아갈 수 없는,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종교도 사회의 범주에 있고 불심으로 대승보살의 사상을 사회 속에 형용해야 하는 것이라면, 이 사회의 역사나 문화를 모조리 무시해 버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현실이 중요하다고 그것만 바라보고, 남들이 하는 것이라고 모두 다해야 한다면, 그러한 모습은 또한 어떠하겠는가. 새로 나온 숭용차의 이름이 무엇이고, 어느 사찰이 A급인데 프리미엄이 얼마이며, 어느 절이 수입이 많고, 어느 본사가 쓸만하다는 등의 말들이 수없이 조계종 안팎을 휘젓고 다닌다. 과연 세인들과 일부 수행승의 생각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요즈음 일부 승려 정치인들의 이권 때문에 일부 사찰에서 분규가 일어나고 있다. 조계종 행정승들이 사심없이 일하고, 이에 몸담고 있는 종도들이 신심있게 따를 때 조계종의 분규는 해결될 수 있을 텐데 그러하지 못한 것이다. 일부 행정승들의 자질과 일방적인 이권 개업의 인사 처리가 심각한 문제임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지역사회의 불교포교와 중생들의 불심 중진에 힘써야 할 기성세대의 선배 수행승이나 주지들이 이권을 위한 로비 활동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 타종교인들은 신도와 교회 확장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미래의 불교 흥망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불자들과 수행승들의 무거운 책임이랄 수 있다.
총무원 사람들도 권력에 의지해서 종무행정을 하지 말고, 종도들의 힘에 의하여 자주적이고도 독립적인 종무행정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잠깐의 실수로 유구한 역사를 이어 온 불교가 퇴보한다면, 후회를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게 될 것은 분명하다.
사회 일각에서는 민주화를 부르짖는 가운데 노동권과 생존권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승려들의 추태와 비리는 세속 매스컴에 날마다 오르내리니, 우리 모두는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볼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세인들이 생각하는 것이 모두 타당하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세인들과 수행승의 생각하는 범주가 좁혀져서 불국토 건설을 이루는 길로의 회향이 있기를 새해 봄에는 간절하게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