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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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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현재훈 1989년 03월 85호
불교가 석가모니의 사장에 근거해서 기한 종교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기원전 6세기경, 인도의 갠지스강 유역은 활기에 넘쳐 있었다. 농업이 발달하고 그 기초 위에서 가공업이 번창했으며 상업이 일어나서 사람들의 생활이 풍요해졌던 것이다. 거기다가 화폐가 출현해서 경제 활동이 왕성해졌는데 이로 인해서 자산가들이 많이 나타났다. 불경에 보면 무슨 장자, 무슨 장자 하여 장자(長者=資훌家)가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보여 주는 일이다.
또 이때 그런 경제적 융성에 힘입어 대소(大49의 도시가 출현하고 이 도시를 중심으로 인구 집중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문에 베다를 중심으로 한 종교와 이 종교의 사제계급(司蔡階級)인 바라문의 권위가 실추되었다. 말하자면 이 시기는 전통사회로부터 벗어나 사상적으로나 사회 구조적으로나 신질서가 형성되는 시기였던 것이다. 따라서 이 무렵 갖가지 사상가들이 나타난 것은 자연지세였다. 전통적인 바라문교의 질곡에서 벗어나 백가쟁명식으로 누구나 자기 사상을 자유롭게 표명하고 그 중에서 우뚝 솟은 몇 사람은 신봉자들을 보았으니 이때는 가히 사상의 백화난만기였다. 유물론, 쾌락주의, 고행주의, 회의론 등이 난무했는데 불교 역시 이런 자유로운 사상운동 중의 하나였다.
원시불교 경전에 보면 그런 사상가들이 예순두 명이었다고 하고 그들의 사상의 개요를 전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중요한 몇 사람을 헤아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푸다나 갓사파-노예의 아들로 나체 생활을 하며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의 원리를 부인하고 악행을 하건 선행을 하건 그 보(報)는 없다
둘째, 아지다 케사간바린-유물론자, 쾌락주의자, 찰라주의자.
세째, 파구다 갓차나-도덕부정론자, 쾌락주의자.
넷째, 막가리 고사라-숙명론자, 무인무연론자(無因無緣論者).
다섯째, 산자야 베라티푸라-회의론자,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
여섯째, 니간다 나라폿다-자이나교(敎)의 교조. 불교와 유사점이 많다.
이런 다양한 사상의 난무 속에서 고다마 붓다가 주장한 것은 연기설(綠起說)이었다. 고다마가 출가하여 육 년간 고행하고 보리수 밑에 단좌하여 명상에 든 끝에 대각을 이루었는데 이때 깨친 것이 십이인연(十二因緣)이며 또 하나는 사성제(四聖調)였다. 십이인연은 왜 생(生)이 있고 생이 있기 때문에 노사(老死)가 있을 수 밖에 없는가를 열두 가지 단계로 나누어 연기적으로 고찰한 것이고 사성제는 고(苦), 집(集), 멸(滅), 도(道)의 네 가지 단계로 도를 버리고 도에 드는 순서를 정관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다마 붓다가 그러한 개인구제적 진리를 중득한 끝에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중생을 가엾이 여겨 중생의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사실이다.
불전에 의하면 그 진리〔法}를 깨치고 붓다는 여러 날 동안 나무 그늘에 앉아 그 안온한 법미(法味)를 즐겼다고 하는데 그 끝에 범천(첼天)의 권청에 의해서 중생〔민중〕의 세계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불전에는 ‘범천의 권청’이라는 상징을 통하여 붓다가 중생의 세계로 뛰어든 동인(動因)을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한 종교의 설화화된 부분일 뿐, 실은 붓다 자신의 간절한 내면의 소리였다. 붓다는 개인구제에 머물지 않고 간절한 소망을 갖고서 사회구제를 열망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어른은 평생을 누더기를 걸치고 중생 제도를 위해 법을 설하시며 거리 거리를
유행(遊行)하시다가 거리에서 돌아가셨다.
불멸 후의 일이다. 교조 되시는 부처님이 돌아가시자 불교 교단은 크게 두 유파로 분열되었다. 상좌부(上座都)와 대중부(大聚部)가 그것이다. 이것을 근본분열이라 하고 나중에 상좌부와 대중부가 각각 다시 분열을 일으켜서 여러 파를 탄생시키는 이것을 지말분열이라 한다.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좌부가 그 후에 어떻게 발전 변모해갔고 대중부는 또 어떻게 발전해갔느냐 하는 것이다.
상좌부는그 당시 생기(生起)한 장자들의 후원에 힘입어∙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그리하여 화려장대한 사원에 틀어박혀서 번쇄한 교리 연구에 물두했다. 그들은 주로 개인 구제적인 면에 치중하면서 명상에 힘쓰고 논서 저술에 힘썼으니 그 차원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는데 머물렀던 것이다. 아라한이란 웅공(應供)이라 하여 중생의 공양을 받을 만한 성자라는 뜻이다. 그러니 그들은 자연히 중생과 유리되어 그 위에 군림하는 꼴이 되었다. 이것은 그 전에 바라문교의 사제인 바라문 계급이 광범한 민중 위에 군림하면서 민중을 착취하고 민중을 지배한 형태와 비슷한 것이었다. 이 유파가 나중에 소승불교의 원천이 되었는데 소승불교는 피안으로 건너가는데 있어서 혼자 타고 가는 작은 배라는 뜻이다.
이것은 부처님의 논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밑에서 대명상에 드시고 아라한과를 얻으신 후 거기에 만족하지 아니하시고 중생의 바다로 몸을 던지지 않으셨던가 그리하여 상좌부의 경향에 대한 반동으로, 아니 반동이라기보다 부처님의 본의에 충실하기 위하여 다른 한 면에서 대중부가 태동했으니 이것이 나중에 대승불교로 발전하는 원류이다. 이 유파는 주로 민중들 사이에서 태동했다. 상좌부의 고답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며 번쇄한 경향에 염증을 느끼고-염증이라기보다 그런 구름 위에 뜬 세계와는 무연(無緣)한 광범한 민중들이 자연히 수투파〔탑〕를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때는 불상숭배 사상보다 불탑숭배 사상이 민중들 가운데 팽배해 있었다. 불탑은 부처님의 유골을 봉안한 탑과 불경을 봉안한 탑, 이렇게 두 가지가있었는데 상좌부의 화려장대한, 귀족적 장원(貴族的莊園)에 접근하기 어렵고 또 그런 경향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민초들은 불탑을 중심으로 모여 자기들의 영적 구제와 현실적 구제를 기원했다.
그들은 번쇄한 논서를 저술하거나 복잡다기하고 번쇄하게 교리를 연구천착하기보다 현실고의 문제를 더 중요시하고 민중해방을 위해서 열심히 구도의 길을 걸어 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밭에서 싹을 튼 것이 보살사상이었다. 보살은 일체중생, 즉 모든 민중을 영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다 구제하기 전에는 자기의 성불(成佛=개인구제)을 뒤로 미루고 민중과 더불어 고통을 함께 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대자대비이니 이것을 빼놓고는 부처님의 본의를 짐작 할 수 없다.
화엄경 보살명난품(華嚴經홈훌明難品)에 이르기를,
“참깨달음을 대승(大乘)이라 한다. 나혼자 갈 수 없는 대승이 아니고서는 참깨달음이라 할 수 없다. 참깨달음〔眞家諸〕이야말로 부처님께서 설하심이니 보살이 유일한 진실을 믿고 따르는 것은 모든 중생을 이 대승의 한 길로 귀입(廳入)시킬 수 있다고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중생의 근기(根機)가 각각이어서 모든 부처님과 보살〔諸佛홈훌〕이 가끔 그 중생들을 위하여 성문승(聲聞乘), 독각승(獨뿔乘), 보살승(홈훌乘) 등 셋으로 나누어 설하시는데 그 모든 가르침은 결국 보살승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일승(一乘=大乘)을 불성(佛性)이라 하나니 그리하여 일체 중생이 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살하노라.” 하였다.
그리하여 중생이 곧 부처라 하는데 이것은 중생을 떠나서 부처가 있을 수 없음이니 이 이치를 알고서 우리 어찌 보살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 우리 사회에서 온갖 민중적 문제가 깔려 있다. 노동문제, 통일문제, 외세의존 세력과 민족자주 세력의 갈등문제 등 그리고 이것이 나날이 심화되어 폭발 직전에 있는데 우리 불교가 대승의 맥을 이어받았으면서도 거의 그런 절박한 민중적 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하다시피 하고 있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아니 어디 그뿐인가. 민중이 고통받고 고문을 받으며 더러는 고문실에서 죽어 나오기도 하는데, 우리 교단이 거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교권 다툼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웬 일인가.
부파불교(상좌부)는 국왕, 장자 등 사회의 지배층으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원조를 받아서 광대한 장원을 소유하고 그런 안정된 사회적 기반 위에 존립해 있었기 때문에 일반 민중과는 멀리 격절되어 있었다. 그들은 장대한 승원(個院) 안에 거주하면서 명상, 좌선에 몰두하고 번쇄한 교리 연구에만 천착해 들어갔다. 우리 교단이 민중과 격절되어 있으면서 명상, 좌선에 힘쓰고 교리 연구에 그 힘을 집중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다소의 존립 가치가 있다 하겠는데 그것마저도 버리다시피 하고 교권 쟁탈을 위해서 싸우고 시주돈이 많이 들어오는 절을 차지하기 위해서만 싸우며 혈안이 되어 있으니, 이것은 불도(佛徒)를 가장하고 부처님을 배반함이며 납의를 걸치고 민중을 기만함이다.
옛날에 한 숭(增)이 스승에게 물었다.
“스님, 스님께서는 돌아가신 후에 어디에 태어나시겠습니까?”
스승이 대답했다.
“나는 죽어서 지옥에 태어나겠다.”
“지옥이라니요? 어째서 지옥에 태어나세요 ?”
그 승은 스승께서 지옥에 태어나시겠다 하신 뜻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덕(高德)하시고 불법에 밝으신 어른이 사후에 지옥에 떨어지시다니! 그러나 그 승은 그 뜻을 한참 후에야 터득할 수 있었다. 스숭께서는 사후에 지옥에까지라도 중생을 따라가서 그들과 더불어 지옥고를 겪고 그들을 건지고자 하는 대원(大願)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오늘 우리 교단에서 이런 스님을 더러 뵈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임 노동에 시달리고, 저곡가청책에 시달려 일가 집단자살을 하는 노동자, 농민(민중)을 보면서 그들이 가엾어 하루를 굶는 스님이 계시면 나는 당장 쫓아가 그 어른 앞에 무릎꿇고 백배천배를 올리리라.
백장선사께서는 일일불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라 하시고 제자들이 일을 못하시게 하니까 그때부터 굶고 누워 버리셨는데 오늘 한국불교가 보이고 있는 작태는 이와는 너무 거리가 멀어 지탄을 금치 못한다. 민중을 버리면 그때부터 불교는 소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