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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논의에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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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종림 1989년 03월 85호
남과 북의 통일, 또는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민족적 염원의 당위를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주는 압력이 있기도 하거니와 아뭏든 민족의 통일이라는 대원칙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통일에 대한 갈망에서이든 논리적인 결론에서이든 간에,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그러한 당위에 도달한 이유는 각각이다. 통일을 주장하는 개인들 역시 입장에 따라 논리적 근거가 다르다. 결국, 통일이라는 결론은 하나이지만 그러한 결론을 이끌어 낸 근거가 다양하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기대도 역시 그만큼 다양하다.
통일에 대한 논의는 오늘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통일에 대한 논의는 체제 유지를 위한 명분으로서의 역할을 했었고, 지금의 통일에 대한 논의나 움직임은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행위는 당위나 명분으로만 움직이기는 어렵고, 감정적인 충동이나 현실적인 요구나 힘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민족통일에 대한 염원이나 주장들은 그 배후에 다른 목적들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그러한 목적을 위한 수단이나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한 아집의 소산이었다는 느낌이다.
통일에의 주장들은 한 동족인 북의 인민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현실적인 모순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운동권의 통일에 대한 논의 역시 미국의 비호를 받고 있는 군부독재를 타도하기 위해 채택한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명분이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방정책과 맞물려 현실적인 거래관계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북한이 갖는 유물사관에 의한 계급 투쟁의 입장에서 본다고 해도 민족이라는 개념은 전술적인 의미 밖에 지니지 않는다. 공산주의에 있어서 노동자에게 민족은 없다. 프로레타리아라는 계급이 있을 뿐이고, 사회주의 혁명에 있어서 민족주의 운동은 봉건적인 체제나 부르조아적 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전략적인 의미 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통일이 민족적 염원이나 당위라고 했던 주장에는 허구의 냄새가 짙다. 민족 통일이라는 주장들이 민족이나 동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한 명분과 이기주의적인 욕망의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명분이나 이기적인 욕망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명분은 명분에 그칠 뿐이므로 현실을 움직이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명분에 실(實)을 둔 역사적 방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민족의 정신을 찾는 데 얼마나 노력을 경주했고, 민족의 구성원인 북의 인민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는 것 같다. 우리를 위해 그들이 필요했을 뿐, 우리가 참으로 민족을 위하고 동족을 위한다면 우리의 태도나 발상 자체부터 전환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북의 동포들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 돈, 그거야 줄 수도 있다(비록 비판받는 다국적 기업의 형태이긴 하지만). 자본주의 퇴폐상, 그런 것은 아니어야겠다. 민주화된 사회상을, 인간다운 삶의 모습-이데올로기의 실현을 위해 사십 년간 허리띠를 졸라맨데 대해-을 보여 줄 일이다. 그런데 북의 사회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평등의 이상을 보여 주고 민족의 전통을 유지시켜 왔다는 것이다.
사실 불교에서는 민족이라는 개념은 없다. 불교를 민족불교라고 할 때에도 민족 종교라는 의미가 아니라, 민족에 토착화한 불교라는 정도의 뜻으로 쓰인다. 남과 북의 관계나 통일의 장에서 불교가 해야 할 일이 많다. 금강산을 개발하는 일도 아니고 절이나 스님들이 얼마나 있는지를 알아보는 일도 아니다. 유물론적인 사고체계를 갖고 있는 북의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다른 유신론적인 종교보다는 불교의 무신론적인 사고가 접근하기 쉬운 일면도 있고,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민족의 문화나 전통을 확립하는 데 불교가 담당해야 할 몫이 누구보다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낙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북의 사고체계가 불교와 모순 관계는 아닐지라도 결코 호의적인 것은 아니며, 또 우리의 사회적인 흐름도 불교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