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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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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소허 1987년 03월 61호
사람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사람인가. 우리는 어떻게 해서 사람으로 되어가는가.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 되어가는 게 아닐까. 사람의 모성과 애정의 보살핌이 아니고 고릴라 따위에게서 생육당한다면 비록 사람의 형상을 하고 이 세상에 나왔을 지라도 영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사람이 되지않고 만다. 행동거지도 그대로 고릴라를 본받아 서서 다니는 일보다 기어 다니는 일이 많고 사람의 말을 배우지 못해 고릴라처럼 소리지르는 것이 고작이다. 이런 일은 실지로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사람 속에서 살지 않으면 사람이 되지 않는다. 사람다운 행실도 말도 그 무엇도 배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되어가기가 그럴만한 환경 조건이 구비되어 있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이야기도 그래서 나올 수가 있다. 사람다운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환경 조건 속에 놓여 있음, 바로 이것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첫째 비결이라는 이야기도 그래서 가능하다. 우리는 흔히 주위에서 덜된 사람이라든지 못돼먹은 사람이라 하는 소리들을 듣게 되는데 그런 사람들은 지난날의 성장 과정을 들춰보면 소위 위에서 말한 사람다운 환경 조건 속에서 자라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어느 한 조건이 결정적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본 조건이 있는 것은 어느 경우나 마찬가지이다.
요즈음 우리 주변을 볼짝시면 사람이 아니되겠다고 작당이라도 하는냥 싶다. 사랍답게 사는 세상을,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을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 것인가. 너무나도 크케 실망하고 절망하여,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되지 않나 싶다. 사람이 사람을 개패듯 패 죽이고 저 악명 높은 수용소군도가 이 땅 도처에 마치 유령처럼 산재해 있다니 그냥 한낱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쯤으로 치부해버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간절함은 간절함에 그칠 뿐이게 하니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날마다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저간의 소식은 천인공노란 문자가 무색해질 지경이다.
이것은 단연코 사람다운 세상이 아니다. 유기체 내부 어느 구석에서 암세포가 죽음의 음모를 꾀하고 있었다니, 우리는 이제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언제부터 우리가 눈멀고 귀먹은 도사가 되어 있었단 말인가.
각양각색인 사람이 모여 사는 세상이니 별일이 안 일어나겠는가 하는 인식은 유아기적 개아(個我) 중심주의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 저 살기에 바빠죽겠는데 어느 여가에 세상 이구석 저구석 살필 수 있겠느냐 하겠지만 그건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혼자만으로는 세상이 되지 않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되지 않는다. 세상이라든지 사람이라든지 하는 얘기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이름에 다름 아니다. 너와 내가 서로 어우러져 상부상조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커다란 집의 이름이 총칭하여 세상이다. 그러므로 너와 내가 세상을 만들고 세상은 다시 너와 나를 만든다. 다시 말해서 너는 나를 만들고 나는 너를 만든다. 그러므로 너 없에 내가 되지 않고 나를 떠나서 너의 존재는 무(無)다. 같은 논리로 우리가 모여서 세상이 되니 세상은 곧 우리라 할 수 있다.
다 아는 사실을 왜 들춰내 신경쓰이게 하느냐 하면, 내가 곧 너이고 세상인 이치로 봐서 이 세상 되어가는 꼬락서니에서 누구 하나 달아날 수 없는 연계적 책임을 떠맡은 그물코와 같은 화엄적 세상인 자기 속을 양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너는 내가 싸버린 똥이요, 세상은 나의 허무를 춤출 무대에 지나지 않는다.” 사이비 인생관은 그럴듯한 자기 논리에 빠져 유기체적 세상에 암적 존재가 되어 죽음의 음모를 꾸민다. 바르지 못한 인식과 지성과 상식과 소문과 명령과 복종은 나를 죽이고 너를 죽이고 세상을 압살할 것임에, 그러므로 너무나도 위험하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우리가 바르게 깨어 있지 못하면 지신도 모르는 가운데 죄속에 빠지게 된다. 바른 종교를 갖고자 함도, 바른 수행을 하고자 함도, 그리고 바른 정치를 유도하는 올바른 사회적 실천도 다 이에서 연유되어야 한다. 탐·진·치 삼독으로 똘똘뭉쳐 자기자신이 되어 세상을, 사람을 상대적으로 인식함은, 수단적으로 인식함은, 자기이윤을 따지는 약삭빠름 속에 개기름으로 번쩍인다.
오늘 우리가 부당한 착취와 분배의 악조건을 먼저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혁파하고저 함은 이렇듯 뗄래야 뗄 수 없고 달아날래야 달아날 수 없는 유기적 삶의 터전에서 진실한 존재의 양태를 살펴 깨어 있는 양심으로 발언하고 실천하기 위해서이다.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잘도 알 것이다. 그가 어떻게 죽어갔던가를. 그가 어떻게 지시하고 명령하고 굴종하고 착취하고 넙죽 받아 먹었는가를. 상대적 인식의 위험 속에서 우리는 다 한통속인 것을 잊지 말자. 사람이 사람을 키운다. 사람다운 사람들끼리 모여사는 환경 조건 속에 놓여져 있음 바로 이것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첫째 비결일 것이라는 얘기도 그래서 가능하다. 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