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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교육 제도의 개혁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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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편집실 1987년 03월 61호
들어가는 말
침체된 한국 불교의 중흥에 관한 크고 작은 개혁안이 논의될 때마다 단골 사안으로 제기된 것이 ‘승려 교육 문제’이다. 이는 현재의 승려 교육이 제도적으로나 내용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의 반증인 동시에 그만큼 한국 불교는 출가자인 승려 중심의 체제라는 단적인 표현이다. 한국 불교를 발전적으로 재창조하는 데 있어서 ‘승려 교육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승려교육에 대한 개혁은 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승려 교육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문제의 근본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한 채 현상적으로 드러난 문제만을 부적으로 해결하려는 데 기인한 것이라볼 수 있다. 오늘날 한국 불교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함에 있어 종합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파악한다면 또다른 시행 착오만 거듭할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까지 실시해 온 승려 교육의 내용과 그 동안 제기된 문제점들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바람직한 ‘강원 교육’의 방향을 설정해 보기로 한다.

사원 교육의 발자취
한국의 전통적인 사원 교육 제도는 체계적으로 전해지는 문헌이 없어 명백하게 밝히기는 곤란하나 단편적인 역사적 자료와 이를 언급한 논문들을 통해서 대강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남 도영(南 都泳) 교수의 논문인 「한국 사원 교육제도」를 참고로 삼아 사원 교육의 발자취를 거칠게나마 더듬어 보기로 한다.
l. 교학 시대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뒤로부터 선종(禪宗)이 전래된 통일 신라 시대까지는 사원 교육이 주로 경전의 교의 연구에 중점을 두었다. 7~10살 안팎의 남녀이면 누구에게나 입학 자격을 부여하고 입학이 허락된 사람은 10계를 받아 사미(沙彌)와 사미니(沙彌尼)가 되었다. 사미는 10~13년의 수업 연한동안 계 ·정 ·혜(戒·定·慧)의 3학을 이수하고 사미니는 l0년 동안의 이수 과정을 마친 뒤 다시 2년 동안 6법을 배우게 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는 교과서가 발간되고 강경(講經) 제도가 정비되었는데 이러한 강경 제도는 그 원형이 지금까지도 강원 교육에 전래되고 있다.
2. 선 ·교 병립 시대
통일 신라 시대 말에 선종이 전래된 뒤로 고려 시대에는 교종과 선종을 병립하여 사원 교육이 실시되었다. 교종의 교육은 대승 경전 연구에 중점을 두었으며 선종의 교육은 구산선문(九山禪門)을 통하여 내관자성(內觀自省)하여 자증삼매 (自證三昧)를 체득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3. 선·교 융섭 전개 시대
종래의 교종과 선종의 분립 교육으로부터 선·교 양자를 융섭하려는 교육이 실시된 시기로서, 대각 국사 의천의 천태종과 보조 국사 지눌의 조계종이 개종을 했다. 이 시대에 특기할 만한 것은 사찰 중심의 결사(結社) 운동이다. 사찰의 이름을 붙여 조직된 결사 운동은 사찰 중심의 신도 공동체로서, 승려와 신도를 함께 교육하기 위한 교육기관이었다. 결사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 잘못을 충고하고 잘한 일은 칭찬하였으며 매월 15일마다 점찰법(點察法)에 따라 참회 수행을 했다. 시주(社主)는 모인 사람들 가운데 덕망이 있는 사람을 추천하여 주지로 삼고 임기는 3년으로 삼아 번갈아 맡게 했다.
4. 선·교 양종 시대
숭유 억불 정책으로 불교가 크게 위축된 시기인 세종때, 관권의 강압으로 선종·교종의 양종체제로 학제가 정비되었다. 이 시기의 교육 내용은 승과의 출제경전인 선종의 전등·염송(傳燈·拈頌), 교종의 화엄경 십지론만을 공부하게 하여 다른 경전의 공부를 소홀히 하게 되었고, 그나마 중종 2년에는 승과를 완전히 폐지함으로써 불교 교육이 쇠퇴되었다.
5. 선·교 겸학시대
이 시기는 선·교를 겸수하되 교를 선의 예비문으로 보아 좌선견성을 최종의 목표로 삼게 하였는데, 이러한 경향은 강원 제도가 정착된 조선말까지 계속되어 강원의 교과 과정도 선학 중심으로 해석하고 편성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6. 강원 교육 제도 시대
강원 제도가 완비된 것은 대체로 조선시대의 인조~숙종때 까지로 본다. 강원제의 학제는 사미과(沙彌科), 사집과(四集科), 사교과(四敎科), 대교과(大敎科)의 4단계와 이 밖에 수의과(隨意科)가 있었다. 이를 오늘날의 학제에 견주어 본다면 사미과는 국민학교, 사집과는 중학교, 사교과는 고등학교, 대교과는 대학교, 수의과는 대학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사미과는 사집과의 예문으로서 10계, 조석송주(朝夕誦呪), 반야심경, 초섬문(初心文), 발심문(發心文), 자경문(自警文)을 1년 동안에 이수하고, 사집과는 경전을 볼 수 있는 기초 지식을 습득시키는 과정으로서 도서(都序), 서장(書狀), 절요(節要), 선요(禪要)를 2년 동안에 이수하고, 사교과는 능엄경, 법화경(후에 대승기신론으로 대치됨), 금강경, 원각경을 4년 동안에 이수하고, 대교과는 화엄경과 특수한 염송을 3년 동안에 이수하게 했다. 수의과는 대교과를 졸업한 사람이 입학하여 4년 이상 전공과목을 이수하도록 되어 있었다. 강원 조직은 강주(講主)가 있어 학사일체를 총괄하며 강경(講經)을 맡고 그 밑에 중강(仲講)이 있어 강주의 강경 내용을 복강(覆講)하기도 했다. 이러한 강원 제도의 조직 및 교과 내용은 수업 연한이 4년으로 줄어든 것 말고는 지금까지도 큰 변화 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제기된 문제점들
시대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강원교육 제도는 조선말에 정착된 내용을 거의 답습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수정의 폭을 갖지 못하고 답습되어 온 강원교육 제도는 현실 적응력을 결여한 채 더 많은 문제점만을 낳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지금까지 지적해 온 문제점들을 종합해서 추려 보기로 한다.
l. 모든 교과목이 선(禪)중심으로 편성되어 있다.
2. 강원 교육을 받기 위한 기초 교육이 결핍되어 있다.
3. 강사의 자질 향상과 전문 강사의 보강에 필요하다.
4. 학습 방법이 재래식 한문 해석 및 주입식 교육으로 그 영역이 한정되어 있다.
5. 사회 과학 계통의 외전(外典)이나 종무(宗務)행정 등의 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6. 수료자에 대한 적당한 지위가 배려되지 앓아 인적 자원의 낭비와 면학 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
7. 좁은 방에서 많은 대중이 함께 기거하는 등 교육 환경이 열악하다.
이상과 같은 문제점들을 부분적으로나마 수정·보완하려는 노력의 하나로서 “중앙 승가대학”이 설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앙 승가 대학은, 선(禪) 중심의 교과 과목 편성 체제를 탈피하고 나아가서 외전을 학습 과정에 보완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들은 아직 남아 있는 실정이다.

바람직한 방향과 개선책
앞머리에서도 밝혔듯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인식보다는 총체적인 인식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강원 교육의 개혁을 원만하게 치러내기 위해서는 오늘날 한국 불교가 안고 있는 모든 질곡들을 타파하는 일과 분리시켜 생각하면 안 된다. 이러한 입장에서 몇 가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1. 불교 재산의 운영 관리를 민주화해야 한다.
오늘날 불교 재산의 운영 관리는 이중으로 구속되어 있는 실정이다. 안으로는 직위를 가진 몇몇 승려에게 독점되어 있고 밖으로는 불교 관계 제악법으로 족쇄가 채워져 있다. 이렇듯 불교 재산의 관리운영의 비민주적 요인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모든 개혁 논의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으며, 나아가서 열악한 교육 환경의 개선을 위한 과감한 시설 투자는 요원하기만 할 것이다.
2. 올바른 수행관이 확립되어야 한다.
참다운 수행이란 공부와 실천이 일체화된 것이라야 한다. 올바른 실천에는 지위가 필요 없다. 오직 공부한 것과 실천하는 것을 일체화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므로 강원 교육은 포교사 자격증이나 따게 하고 종단 내의 직위를 취득하게 하는 것과 같은 기능적인 역할을 지양하고 수행자로서의 전인교육을 실시하는 데 그 방향이 주어져야 한다.
3. 출가자 중심을 지양하고 명실상부한 사부대중의 승단으로 복귀해야 한다.
사부대중의 승단으로 복귀한다 함은 출가자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승가의 본래 정신을 되찾는 일이며 사부대중이 창조적으로 만나는 행위이다.
이러한 사부대중의 창조적 만남이 가능해질 때 양질의 강사 확보도 손쉬워지고 외전의 학습 과정도 쉽게 소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더 나아가서 불교가 구체적인 역사 사회 속에서 진정한 자기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남는 문제
종단에서 강원 교육 제도에 대한 일대 개혁을 단행한다는 소식은 크게 반가운 일이지만 내심으로 조금은 우려가 된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해방이 된 뒤로 서구화가 곧 근대화라는 생각에서 민족적 주체성은 외면한 채 서구화 일변도로 나달렸던 기억이 문득 머리를 스친다. 강원교육 제도의 개혁이 서구식 교육 제도나 도입하고 교과 과목이나 바꾼다고 해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있어 왔던 사원 교육의 내용들 속에서 불교의 주체적인 정신을 얼마만큼 재창조해 낼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의 방향들을 지향하면서 성급하지 않은 수정 보완 작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