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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득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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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연재동화 - 권정생 1987년 03월 61호
점득이 나이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소련 군인이 쏟 총알에 맞아죽은 것이다.
점득이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죽인 소련 군인의 생각이 가슴 깊이 남게 된 것이다.
해방을 맞게 된 그 해 겨울, 점득이네도 다른 귀향 동포처럼 십년을 넘게 살아온 만주를 떠났다. 새해를 며칠 앞둔 십이월 그믐께였다.
매서운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압록강까지 왔을 때, 뜻밖에도 길이 막혀 있었다. 소련 군인이 총을 들고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함께 이웃하여 살던 명구네 다섯 식구 그 외 다른 한국 사람들은 울상을 짓고 한숨을 쉬었다.
“어떡하지? 그만 되돌아갑시다.”
명구네 아버지가 실망하면서 제의를 했지만 점득이네 아버지는 고개를 흔들었다. 바로 눈앞에 고향나라를 두고 되돌아간다는 것은 죽는 것만큼이나 싫었을 것이다.
“밤을 타서 건너갑시다. 설마 잠도 안 자고 지키고 있지는 않을 겝니다.”
몰려다니던 사람들은 거기서 모두 뿔뿔이 헤어졌다.
점득이네는 근처 사람들에게 물어 물살이 여리고 얕은 쪽강을 알아 뒀다가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숲이 우거진 한적한 곳으로 점득이네는 숨죽이며 걸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점례 누나와 점득이 넷이었다.
되도록 얕은 물을 골랐는데도 깊이가 점득이 가슴 위에까지 갔다. 양손은 어머니와 아버지 손에 꼭 붙잡힌 채, 점득이는 캄캄한 강물을 한 발 한 발 건넜다.
신발도 신은 채, 옷도 입은 채였기 때문에 몸이 무거웠다. 그것보다 힘든 것은 살을 도려내는 듯한 추위였다.
점득이는 걷는다기보다 그냥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둥둥 허우적거렸을 뿐이다.
강 한가운데쯤 왔을 때였다.
갑자기 요란한 총소리가 나고 아버지가 점득이 손을 놓고 넘어졌다.
“어윽…!”
한 마디 신음처럼 소리지른 아버지는 등에 짊어진 보퉁이와 함께 그냥 강물에 휩쓸려갔다. 눈 깜짝할 사이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허겁지겁 강을 건넜을 때, 결국 어머니와 점례 누나 그리고 점득이 셋 뿐이었다.
두려움과 추위 때문에 그때까지도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세 식구는 어두운 숲속길을 자꾸 걸었다.
한 시간쯤 헤매이듯 걸었을 때 오두막 몇 채가 웅크린 마을을 보았다.
염치도 체면도 없이 셋은 한 오두막을 찾아들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캄캄한 오두막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여보세요, 주무십니까?”
“……”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제서야 방 안에서 사람 소리가 났다.
“누구시오?”
“강을 건너 왔읍니다. 너무 추워서 죽게 되었읍니다.”
어머니는 얼어붙은 입으로 거의 울음에 가까운 소리로 말했다.
“여자요? 남자요?”
안에서 할머니인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린애 둘과 에미하고 셋입니다.”
문이 열렸다. 어두워서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들어오시오.”
목소리가 틀림없는 할머니 목소리다.
“저어, 옷이 젖었어요.”
어머니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강을 건너왔으면 옷이 젖었겠지. 어서 들어와 몸을 녹여야지.”
셋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가 화롯불을 뒤져 숯불을 찾아 훌훌불어 들기름 등잔불을 켰다. 방 안이 희미하게 밝아졌다.
저쪽 벽 밑으로 할아버지가 낡은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영감이 병이 났다오. 어서 갈아입을 옷이 있거든 젖은 옷을 벗어요.”
할머니가 딱한 듯이 점례와 점득이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젖은 옷은 빳빳하게 얼어 있었다. 뺨과 손과 발이 시리다못해 따가왔다. 방 안에 들어와서야 그것도 겨우 느끼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점득이의 옷을 벗겼다. 그러나 등에서 내려놓은 보퉁이의 옷도 흠뻑 젖어 그대로 얼어 있었다.
“어떡하지? 옷이 모두 젖었구나.”
“저런 쯧쯧!”
할머니가 혀를 차면서 일어나 시렁 위에서 조그만 버들고리짝을 내렸다. 거기에서 헌 옷가지들을 골라내었다.
“자, 이걸로 우선 몸뚱이나마 가리거라.”
점례는 할머니의 헌 치마를 몸에 둘렀다. 점득이는 할아버지의 저고리로 몸을 쌌다.
할머니가 부엌으로 나가더니 뜨거운 조당수를 끓여왔다.
“추운데 훌훌 식혀가면서 마셔라.”
셋은 죽을 마셨다. 서로 기대어 꾸부리고 누웠으니까 점점 따뜻하게 녹았다.
깜빡 잠이 들어 깨어보니 벌써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방구들이 윗목까지 따뜻했다. 할머니가 일찍 나가서 군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갑자기 퉁기듯이 일어나 앉으며 아버지를 불렀다.
“여보!”
그러고는 문밖으로 달려나갔다.
“애기 어머니 왜 그러시요?”
부엌에서 할머니가 쫓아나왔다.
“애비가 강물에 떠내려 갔어요. 소련군이 총을 왔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다오.”
할머니는 어머니를 불잡았다. 어머니는 울음을 애써 삼켰지만 겉잡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어서 방에 들어가 아침 요기를 해야지 강물에 떠내려 간사람 찾을 수는 없다오.”
할머니는 좀 엄한 말씨였다.
어머니는 방으로 다시 떼밀려 들어왔다.
아침밥은 역시 시래기죽이었다. 앓아누웠던 힐아버지도 일어났다. 콧등에 얽은배기 자국이 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눈빛이 살아서 빛나고 있었다.
모두 함께 둘러앉아 죽을 먹었다.
어머니는 목이 메어 죽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할머니가 윽박지르듯이 한사코 죽을 권했다.
“죽은 사람은 할 수 없는 거야. 살아 있는 사람이 더 소중하니까 어서 먹어요. 아니면 같이 죽을려면 먹지 말고 죽던지….”
할머니의 말은 매정스러웠지만, 속에는 깊은 뜻이 있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죽을 먹었다. 할머니 말이 너무도 정직한 말이라 생각했다. 이런 때 눈물을 흘리고 운다는 건 쓸데없는 투정일지도 모른다.
어제 밤에만 해도 추위와 두려움 때문에 서러워할 여유가 없었다. 사람은 모두가 그렇다. 슬픈 일도 지나치면 슬퍼할 수가 없다. 어느만큼 고통이 가시고 짬이 생겨야만 슬퍼할 수 있는 것이다.
아침이 끝나고 어머니는 떠날 준비를 했다.
“인지 가면 어디로 가지?”
할머니가 물었다.
“지향도 없어요. 애들 아버지 고향은 강원도지만, 찾아간다해도 반겨줄 사람도 없어요.”
“그래 모두 그랬지. 한번 떠나온 고향 빈몸으로 찾아간들 반겨 주겠느냐고 했어.”
“누가 또 그랬어요?”
“만주서 온 거지들 모두가 그랬어.”
“거지들이라뇨?”
“거지들이지, 그럼 애기 어멈은 거지 아닌 줄 아나 보지?”
할머니 말이 맞는 말이다. 모두가 거지다. 점득이네만 거지가 아니라 조선 사람 모두가 거지가 된 것이다.
“왜놈들이 쫓겨간 건 우리를 해방시켜 주려고 간 게 아니야.”
“그럼, 우리는 해방이 된 게 아니여요?” 어머니가 물었다.
한 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점례와 점득이는 두려운 마음으로 할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해방되었다면 왜 아라사놈(소련놈)이 사람을 죽이는 거야. 이젠 왜놈 대신 아라사놈들이 조선을 차지한 거요. 이남엔 미군이 차지했고, 주인이 바뀐 거지.”
“그럼, 앞으로 우련 어찌되는 거예요?”
“사는 데까지 사는 거지. 버티고 버티면 끝장날 때가 있을테니까. 벌써 5천년을 버티어 온 우리니까, 앞으로도 견뎌낼거요.”
할머니는 구석에 앉아 있는 점득이 손을 꼭 쥐고는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어머니는 새삼스레 할머니가 훌륭해 보였다. 그래서 물었다.
“할머니께선 힐아버지와 단 두 분이셔요?”
“안 그래도 지금 아들 생각하던 중이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직 소식도 없소.”
“아드님이 어디 가셨나요?”
“어딜 갔겠소. 왜놈에게 징용으로 끌려간 거지. 영감이 왜 놈들에게 밉게 보여 딸년도 같이 끌려갔다오.”
그때, 벽에 기대어 앉았던 할아버지가 기침을 했다. 점례와 점득이가 얼른 할아버지를 돌아다 보았다.
할아버지는 그냥 그 자리에 돌아누웠다. 기침을 더 세게 했다.
어머니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얼굴을 번갈아 보고 나서 물었다.
“할아버지께서 오래 편찮으셨어요?”
“감옥에서 얻은 병이야 4년 동안 갇혀 있다가 왜놈들이 쫓겨가고 나서 풀려났지.”
돌아누운 할아버지의 숨결이 거세게 들렸다.
모두가 한꺼번에 조용해졌다.
“그토록 정신없이 끌어 가고 잡아가두고 하더니 왜 쫓겨갔지, 도적놈들 같으니라고….”
할머니는 조금 목소리가 높아졌다.
“할머니, 대체 우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여요?”
어머니가 다시 울먹이며 물었다.
“아라사놈들과 미국놈들이 와 있으니 그놈들이 또 못살게 하겠지.”
“벌써 애비가 총에 맞아 죽었어요.”
어머니가 흐느꼈다.
“쫓아내야지. 온 백성이 일어나 모두 쫓아내야지.”
할머니가 점득이를 보듬어 안았다.
“이름이 뭐지?”
“점득이어요.”
“몇 살이니?”
“여섯 살입니다.”
“똑똑하게 생겼구나. 아버지 닮았니?”
“……”
점득이는 갑자기 목이 메었다. 어제 밤 캄캄한 강물 속으로 휩쓸려간 아버지가 머리 속에 스치고 지나갔다. (아버지는 정말 돌아가신 걸까? 아니면 헤엄쳐 나와 우리를 찾아오시는 건 아닐까?)
점득이는 손등으로 눈을 문질렀다. 그러고는 말했다.
“아버지, 살아나셔서 이리로 오지 않을까?”
그러나, 할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벌써 많이 죽었어, 아버지처럼 총을 맞고 강물에 떠내려간 우리 동포가 많어. 아무도 살아나지 못했어.”
어머니는 더 섧게 울었다. 점례가 따라서 입을 비쭉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의 눈에도 끝내 하얀 이슬이 천천히 맺히더니 두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넉 달 전, 해방을 맞이했을 때, 점득이네는 만주의 외딴 오두막에서 아버지와 함께 얼마나 기뻐했었나. 생각 같아서는 하루라도 서둘러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형편이 그렇게 되지 않았다.
가을 추수를 끝내고 돈을 얼마만큼 준비해서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소작으로 얻어지는 논에 벼가 한창 자라고 있었다.
결국 가을이 돌아와 추수를 끝냈지만 또다시 날짜는 하루하루 미루어 졌다. 11월이 후딱 지나가고 12월이 온 것이다.
“지금이라도 가면 고향에서 모처럼 설을 쇨 수 있겠지.”
아버지는 식구들에게 고향 이야기를 하면서, 여기 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같은 조선사람들과 의논을 해서 가까스로 떠날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