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인형극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꼭두각시극은 원래 남사당의 여섯놀음인 풍물(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보기(가면무극), 덜미(꼭두각시극)의 마지막 레퍼토리로 인형의 몸통에 목봉(木棒)을 넣어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인형의 목덜미 및 몸둥이를 쥐고 조종하는 인형극을 말한다. 이밖에 조선후기 남도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되어 새로운 민중예술의 장을 열게한 판소리가 있다. 창자(唱者) 1인이 반주자인 고수(鼓手)와 함께 연기와 노래, 해설까지 겸하는 1인극 형식의 민속극이다.
우리의 민속극은, 판소리의 ‘수궁가’나 ‘심청가’처럼 불교설화를 근거로 출발한 불교적 내용의 극이든, 혹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가면극에서처럼 승려를 조롱하고 불교를 풍자한 극이든, 음으로 양으로 불교와는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더우기 무속(巫俗)에서와 같이 불교가 전래하면서 슬며시 사찰의 그늘로 들어가 습합되어진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들(巫覡)은 ‘굿’이라는 민간신앙의 형식을 빌어 불교의 극락세계에 도달하려는 목적을 내세움으로써 스스로를 불교신앙의 하위로 귀속시켜 버렸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시되는 것은, 민속극의 양대산맥인 가면극과 인형극에 나타낸 어찌보면 지극히 반불교적(反佛敎的)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불교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공격이다. 한국의 가면극은 지역의 차이에 관계없이 내용면에서 거의 동일한 성격을 가진다. 그 대표적 유형으론 승려의 타락상, 양반에 대한 조롱과 풍자, 처첩간의 갈등, 벽사진경 (辟邪進慶) 의 축원 등이 있어 대부분 민중사회의 주요 관심사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의 주제인 첫번째 항목을 살펴보기로 한다. 기존의 가면극중 비교적 자주 공연되고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것으로 우선 양주 별산대놀이를 들 수 있다. 극의 구성을 볼라치면 서낭대와 탈들을 앞세우고 풍물을 울리며 동네를 한바퀴 도는 길놀이가 있은 후, 탈놀이의 무사평안을 비는 고사를 지내고, 이어 ‘사상좌(四上佐)춤’으로 시작되는 총 여덟과장의 탈놀이가 있다. 서막격인 사상좌춤은 명칭 그대로 고깔과 장삼을 입은 어린 상좌 넷이 사방신(四方神)을 향해 올리는 의식무(儀式舞)이다. 두번째 ‘옴중과장에서는 옴이 올라 옴벙거지를 쓴 옴중이 상좌에게 희롱을 당하고, 세번째 ‘목중과장’은 목중들이 놀이판에서 옴중에게 매를 맞고 수선을 부리는 내용이다. 이어 연잎과 눈꿈쩍이라는 고승이 팔목중들과 어울랴 한바탕 춤을 추는 제4과장. 팔목중들의 염불놀이로 시작되는 제5과장 및 산대극의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는 제6과장의 노장파계 등, 마지막의 샌님, 신할아비의 두과장을 제외한 여섯 과장어 모두 상좌, 옴중, 목중 노장 등의 승려에 의해 꾸며지는 무대이다.
봉산탈춤도 예외는 아니어서 전7과장 중 사상좌춤으로 시작하는 제1과장과 제2과장의 팔목중놀이, 제4과장의 노장파계과장, 사자가 등장하여 노장을 파계시킨 8목중들을 징계하는 제5사자춤과장 등 전체의 반이상을 역시 승려와 사자같은 불교적 소재로 메꾸고 있다. 이같은 양상은 강령탈춤 및 송파 산대놀이 등 중북부지방의 탈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으로 남부로 내려갈수록 그 농도는 다소 옅어지고 있다.
이상과 같이 언듯 구성만 보면 상당히 불교적일 것같은 느낌의 위 가면극들은, 실상 내용면으로 하나하나 따져 들어가면 불교나 승려에 대한 풍자와 모독이 이만저만 아니다. 양주 별산대놀이 중 팔목중들과 완보의 염불내용을 살펴보자.
팔목중들 : 나무 어미 타불. 나무 할미 타불.
말뚝이 : 나무 어미도 타불, 나무 할미도 타불.
완보 : 이 안갑을 할 녀석아! 세상에 나무 어미타불, 할미타불이 어디 있느냐.
……
팔목중 : 얘, 얘. 우리들은 겉은 중이라도 속은 멀쩡한 오입쟁이 중인데 염불이고 곱불이고 다 그만 뒤고 백구타령이나 한번 부르자. (제5과장)
이처럼 승려 자신이 스스로를 오입쟁이라 자처하며 자기 비하하기를 주저치 않는다. 게다가 염불 역시 엉터리다. 목중들의 자기폭로와 조롱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급기야 평생 도를 닦아 생불이 다 됐다는 노장에게도 일격을 가한다.
완보(팔목) : 어하하하. 스님이 나타나 계셨구려…… 스님 어찌 나다라 계시오. 스님이야 절간에서 천사 천왕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내다라니 염불이나 부르고 계시면 하루에 잎담배가 세매요, 송죽이 세 그릇이요, 돈이 석냥이요, 상좌뼉이 세판인데 무얼하러 나다라 계시오. (제6과장)
이처럼 지신들의 노스님인 노장에 대한 조롱과 풍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노골적이고도 공격적이다. 노장 역시 한술 더 떠서 젊은여인(小坐)을 보자마자 유혹되어 하루 아침에 파계를 하고 갖은 오입쟁이 짓을 서슴치 않는다. 이상은 대개 경기이북지방에 분포한 가면극의 공통된 내용으로 간혹 봉산·강령탈춤 등에선 부처님의 사자(使者)인 사자(獅子)를 내려보내 파계승을 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불교적 기강을 바로잡아 정법에로 회귀하려는 의미보다는 그저 한판 신명나게 추어대는 사자무의 율동이 관객에겐 더 관심거리다.
그렇다면 과연 전통민속극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가면극에서 이토록 승려의 타락상을 매도하고 또 과장하여 극화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양반계급처럼 그 위에 군림한 것도 아니요, 백정 ·무당 등과 더불어 조선시대 8천인(八賤人)의 하나였던 승려를, 그들은 무슨 이유로 이같이 조롱했을까. 조선사회가 비록 배불숭유정책으로 불교 탄압했다고 하지만 민중은 고난에 처할 때마다 여전히 부처를 불렀으며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난을 평정하고자 일어선 수많은 의승들을 그들은 존경하지 않었던가.
이점에 대해 산대극의 발생이 고려말기이고 그때는 요승이란 불리우던 신돈이 천하를 호령하던 시대였으므로 후일 탈선한 신돈을 풍자하여 가면극에서 파계승을 모독·조롱하게 되었으리라는 주장이 있다.*1 그러나 고려조에서 조선중엽까지 산대도감 혹은 나례도감에 소속되어 국중행사나, 불사, 외국사신의 영접에 쓰이던 산대극이 불교를 풍자하는 내용 일색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우기 신돈의 문제만 하더라도 당시 그는 혁신적인 민중정치로 일반에게 추앙을 받던 인물이다. 그래서 이씨왕조의 창업 당시 전대(前代)의 사적 및 영웅들을 비판 왜곡하던 추세하에 다분히 윤색되어진 사실(史賣)임을 상기할 때, 신돈과 조선 후기 가면극의 파계승 과장을 동일선상에 놓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이에 비해 조선 시대 억불정책의 일환으로 많은 승려들이 절에서 쫓겨나자 그들 중 일부가 절에서 익힌 기악 및 불사에 쓰이던 예능부분을 살려 승광대(僧廣大)로 나서게 되자 자연 민간의 탈춤과 합류하게 되고 절에 남아있는 고승·노장을 풍자하는 탈춤이 성행되었으리라는 추론도 있다.*2 이는 상당히 설득력있는 추론으로 그들(僧廣大)이 민간과 합류하여 기존의 가면극에 불교적 색채가 농후한 사상좌춤이라든지, 고승인 연잎과 눈끔쩍이, 활발한 목중들과 근엄한 노장 등을 등장시켜 한결 극의 내용을 풍성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희극적 요소까지 가미했다면 일반의 관심과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듯이 민속극이란 시대와 민중의 요구에 따라 변천 생멸하는 것인만큼, 민중이 희극적 요소만 선호할 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자체가 가지고 있던 원래의 의미를 차츰 상실하고 민중의 기호에 따라 수정 ·변질되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 한 예로 귀신을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종교의식의 하나로서 고려시대부터 행해 오던 나례(儺禮)가 조선조에 들어오면서 점차 원래의 종교적 의미를 잃고 다분히 관중을 즐겁게하는 구경거리로 연희되어진 사실을 보아도 쉽게 수긍이 갈수 있을 것이다. 자신(僧廣大)들이 내침을 당한 몸이니 절에 남아있는 고승·노장을 질시하여 그 비리를 풍자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은, 먼저 불교를 이해하고 승려된 자의 의식경향을 염두에 둔다면, 역시 무리한 상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더우기 불교를 외래종교 내지는 외세 (外勢)로 몰아붙여 가면극은 이를 극복·배척하려는 민중의 승리라고 결론을 내리는 이도 있으나, 이는 일고의 가치도 없을 뿐 아니라, 불교에 대한무지의 소치로 여길 수 밖에 없다.*3
참고
* l 金在喆「朝鮮演劇史」 (서울, 朝鮮語文學會, 1933) P. 53
* 2 崔正如 「山台都監劇 成立의 諸問題」 (大邱, 啓明大學 韓國學硏究所, 1973), 조동일 「탈춤의 역사와 원리」 (서울, 弘盛社, l980) P. 228에서 再引用
* 3 沈雨晟「韓國의 民俗劇」 (서울, 創作과 批評社, 1977) P. 7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