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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이라는 인격 동반자살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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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김동현 1987년 03월 61호
금강경에 이와 같은 말씀이 있다.
“수보리야, 내가 옛적에 가리왕에게 내 몸을 베이고 잘리고 할 그때에도 나에게는 아상도 없고 인상도 없으며, 중생상도 없고 수지상도 없었느니라. 왜그러냐 하면, 내가 그옛적에 온몸의 마디마디와 사지를 찢길 때에 만약 아상 · 인상 · 중생상 · 수자상이 있었다면 응당 성내고 원통한 마음을 일으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가리왕이라는 무도한 왕이 석가모니부처님 전생의 인욕선인을 고문한 셈이다. 고문은 고문당하는 사람을 굴복시키고 무력하게 하여 고문하는 사람 의사에 따르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폭력행위이다. 우선 고문을 하면 고문당하는 사람 이전에 고문하는 사람의 인격이 파괴된다. 사람은 시비선악을 분별하여 선을 좇을 수 있는 씨를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기에 사람이라고 하는 것인데 타인에게 고문이라는 포악한 물리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타인을 굴복시키기 이전에 자기 마음속의 선(善)의 씨를 말려버려서 스스로 자기 인격을 파괴하고 짐승의 지리로 내려뜨리는 행위에 다름아니다.
고문을 당하는 사람은 필시 고문하는 사람이 요구하는대로 검은 것은 희다고 하고 흰것은 검다고 아니할 수 없는 극한 상황이기에 생존본능에서 살려달라고 애결하는 인격체아닌 초라한 생물체로 전락한다. 얼마전 대한변호사협회가 주관한 고문근절대책공청회에서 한 고문피해자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다른 것은 단련이 되어도 고문만은 단련이 안됩니다. 평소 굳건한 가치관과 이상을 가지고 이 한몸을 던져 이 민족이 사회가 인간회복이 되고 민주사회가 되는데 헌신하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온 제가, 그 짐승같은 고문 자의 바지가랑이에 매달리고 저를 질질 끌고가는 그들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책상다리를 웅켜잡고 ‘선생님 살려주세요. 선생님 살려주세요’라고 애걸했읍니다.”

부처님 전생의 인욕선인처럼 수행을 성취하여 살을 저며내고 온몸의 마디마디를 끊어 내도 그러한 악행을 당하는 줄도, 또 그것을 참고있다는 의식도 없고, 욕이니 인이니 하는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다면 털끝만큼의 인격의 훼손이란 있을 수도 있지도 않겠지만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을 수 없는 우리 중생들이야 어찌 인격파탄이 없을 수 있겠는가. 매끝에 장사 없다는 속담도 있지만 아마 매질정도라면 혹 단련이 가능하고 견딜 수 있을지 모르나 현재 우리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고문은 그냥 매질정도가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극한적 고문으로서 아무리 단단한 사람이라도 땅바닥을 설설기면서 없는 죄도 있다고 하고 죄없는 친구도 공동범죄인인양 허위자백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의 고문피해자는 육채적 건강의 파탄도 문제이지만 더욱 참담한 것은 그토록 스스로 지키려고 노력했던 자기의 인생관·세계관이 스스로 부정되어지고, 참담하게 비굴해지고 허물어진 자기 인격에 대한 낭패감에서 헤어나오기 어렵다는 점이다.
도대체 우리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고문의 실상이 어떤 것인가 몇가지 예화를 들어보자.

이 태복씨의 경우 (82.4.26. 10:10. 대법정에서
-대한변협인권위원회 자료집에서 발췌. 이하 같음)
변호사 ; 연행된 경위에 대해 얘기하세요.
이태복 ; 6월 10일 혜화동로타리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4명한테 검은 차에 실려 연행되었읍니다. 처음엔 어딘줄도 몰랐는데 나중에 그곳이 남영동 대공분실인줄 알게 되었읍니다.
변호사 ; 그날부터 계속 구속상태에 있었죠. 고문내용에 대해 얘기하세요.
이태복 ; 맨처음 꿇어 앉히고 구타당했는데 “네가 수괴지, 꼬뮤니스트지”라고 했읍니다. 제가 처음 들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잘 모르겠는데 공산주의자이고 수괴가 아니냐고 추궁했읍니다. “꼼은 아니고 수괴가 아니다”라고 하니 다짜고짜 발가벗긴채 고문판에 사지를 묶고 물고문을 하며 “무조건 항복하라”고 요구했읍니다. 즉 “수괴이고 꼼이라는 걸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물고문을 하니까 토하고 위에서 심한 경련이 일어나 비명을 지르니까 수건을 입에 물려 물고문, 전기고문, 발바닥고문을 하고 들어오는 사람마다 때렸읍니다.
…중략…
변호사 ; 피고인은 전혀 민주학생연맹조직은 몰랐고 거기서 처음으로 알았다고 했죠.

이태복; 그 당시는 민주학생연맹이란 이름을 칭하지 않고 조직이라고 하며 욕설을 퍼붓고 고문을 했읍니다. 책임자가 “아직까지 항복받지 않았냐”고 하며 “고문하다가 죽여도 좋다. 항복을 받아라”고 했습니다. 그때 부인을 계속하니까 “네가 죽겠느냐, 이 선근이가 죽겠느냐”고 했읍니다. “한강에다 빠뜨려 죽이겠다”, “휴전선에다 버리겠다”는 등의 협박을 했고 각본이 다 짜여진 것 같았고 계속 부인하면 이로울 것이 없다고 판단하여 나중에 인정할 수 밖에 없었읍니다.
…이하생략…

부산미문화원사건 김 은숙 진술 (1차공판 진술)
“그리고는 눈을 가리고, 팔을 뒤로 묶고 욕조에 물을 틀면서, 나를 그쪽에 데려가 욕조 물속에다 대고 머리를 눌렀다. 기력이 다해 반항하지 못하면 세워두고 다시 깨어나면 반복하기를 수차례 했다. 나는 남자 앞에서 옷을 벗은 수치감과 물을 먹으니까 정신이 몽롱해져 그들이 해달라는대로 해줬다. 그후 나는 한때, 물트는 소리에 놀라는 병을 얻었다. 정신을 못차리게 되는 것이다. 대질심문 당시 나의 경우는 고문이 끝난 뒤였는데, 박정미는 벗겨진채 알몸으로 담요같은 것을 두르고 있었다. …하략…

김 태근씨의 경우(1차 공판 진술)
“본인은 9월 한달동안, 9월 4일부터 9월 20일까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각 5시간정도 당했읍니다. 전기고문을 주로 하고 물고문은 전기고문으로부터 발생하는 쇼크를 완화하기 위해 기했읍니다. …중략… 9월 13일 고문자들은 본인에게 “최후의 만찬이다”, “예수가 죽었던 최후의 만찬이다”, “네 장례날이다” 이러한 협박을 가하면서 두차례의 전기고문을 가했읍니다. …중략… 델시가방을 갖고 다니면서 그 가방에 고문도구를 갖고 다니는 건장한 사내는 본인에게 “장의사 사업이 이제야 제철을 만났다. 이재문이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느냐. 속으로 부서져서 병사를 했다. 너도 각오해라. 지금은 네가 당하고 민주화가 되면 내가 그 고문대 위에 서 줄테니까 그때 너가 복수를 해라” 이러한 참혹한 이야기를 하며 본인에 대한 동물적인 능욕을 가해왔읍니다. …중략… 고문을 할 때는 온 몸을 발가벗기고 눈을 가렸습니다. 그 다음에 고문대에 눕히면서 몸을 다섯 군데를 묶었읍니다.…중략… 머리와 가슴, 사타구니에는 전기고문이 잘되게 하기위해서 물을 뿌리고 발에는 전원을 연결시켰읍니다. 처음엔 약하고 짧게 점차 강하고 길게, 강약을 번갈아 하면서 전기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가 코 앞에 다가와 …중략… 결국 9월 20일이 되어서는 도저히 버텨내지 못하게 만신창이가 되었고 9월 25일에는 마침내 항복을 하게 되었읍니다. 하루만 더 버티면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마지막날이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더이상 버틸 수가 없었읍니다. 그날 그들은 집단폭행을 가한 후 본인에게 알몸으로 바닥을 기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면서 빌라고 하였읍니다. 저는 그들이 요구하는대로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들이 쓰라는 조서내용을 쓸 수 밖에 없었읍니다…하략”

도둑질을 하거나 폭행을 하거나 강간을 하는 자는 잡히면 재판을 받아 징역살이할지도 모른다는 겁이라도 먹고 있지만 국가기관에서 자행하는 고문행위는 위 예화에서 보다시피 국민의 감시에서 벗어난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질뿐만 아니라 국가공권력 자체의 행위이기 때문에 겁없이, 제약없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가히 헌법의 진공상태다. 헌법은 인권보장에 근본 이념이 있고 인권은 신체의 자유가 핵심이며 신체의 자유의 핵심은 국가로부터 불법구금, 고문을 받지않을 권리이다. 대개 시국 사건의 경우 불잡혀가는 본인이나 가족이나 어디로 왜 붙들려가는지 이유의 고지없이 불들려 가서 영장없이 불법구금 당하여 위 예화와 같은 참혹한 고문을 받는다. 땅바닥을 벌벌기면서 항복할 때까지. 고문을 받다가 죽어서 산이나 들에 버려진다 한들 붙잡혀 갈 때 본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왜 죽었는지 알 길이 없게 된다. 가위 무법천지다. 국민의 혈세로 고문기구가 설치되고 고문하는 사람들의 월급이 나간다는 생각을 하면 기가 찰 노릇이다. 지금 우리사회가 헌법의 진공상태라면 민주화라는 말도 너무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글 머리에 썼다시피 고문은 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 모두 인격파탄을 당한다. 우리사회의 한 귀퉁이에서는 그와같은 고문행위가 계속되고 있고 그 결과 얻어진 과실로 이 사회가 다스려지고 있다면 고문피해자는 우리 국민 전체일 수 밖에 없다. 우리국민 모두가 느끼는 불안감, 무언가에 의하여 자유의사가 억압되고 원하지 않는 무언가를 강요당하고 있는듯한 분위기, 어쩔 수 없이 굴복당하고 있는듯한 무력감… 이러한 분위기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다양한 생각과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사회에서 그와 같은 다양한 생각과 뜻을 가진 사람들의 생존과 뜻, 생각이 상호존중되는 사회가 된다면 우리사회는 광명천지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어느 힘있는 자가 나타나 자기 생각, 뜻과 다른 생각, 뜻을 가진 사람을 무력(無力)하게 하기 위한 유형 무형의 수단방법을 강구하는 사회라면 헌법이 진공상태인 사회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넓게 보아 국민을 무력감에 빠지게 하는 행위는 넓은 의미의 고문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한사람 한사람을 하늘아래 가장 존귀한, 우주의 무게만큼이나 엄청난 존엄 그 자체로 인식한다면 그와 같은 행위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고문은 인격동반자살행위이다. 이 사회에서 고문을 근절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공동체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인격소생을 위한 첫걸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