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지난 역사에서 보이는 불교의 종교 대화
석가모니께서 인도에서 성도하신 후 브라만교와 육사외도들의 사법을 꺾고 49년 동안 정법을 설하셨다. 붓다의 교설을 구체적으로 살피지 않더라도 불교는 분명 하나의 특수성을 갖는 진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 진리가 역사 속에 존재하면서 타 종교와 각 시대의 풍속과 가치관에 접촉하고 반응함으로써 또 다른 독특한 형태를 취하게 됨을 볼 수 있다. 그 형태는 각 시대와 지역 속에서 순조롭게 교도하는 선교 방편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종교의 긍정적인 면을 흡수하여 발전된 형태로 승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타 종교의 교리를 무절제하게 받아들여 불교의 본질을 변질시키고는 끝내 자신의 존립 이유를 스스로 폐기하여 자멸하는 경우도 있다. 또 자비나 평화라는 이름으로 간단히 타 종교를 인정하여 교화 의지를 상실해서 정체된 형태로 유명무실해지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선교 방편과 타 종교의 장점을 취하여 발전을 모색함은 분명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른바 격의화(格義化)된 불교는 습합-변질된 모습이요, 종교 대화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형태로서 문제가 없지 않다. 그러면 불교가 역사 속에서 타 종교와 어떻게 반응해 왔는가를 간단히 살펴보자.
인도에서는 불기 4백년 경에 출가 중심의 불교에서 탈피하여 재가자의 대중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대승불교가 흥기하였다. 외도의 신들은 초법선신으로 편입되었고 초기에 엄금된 주술은 방편의례화되었다. 그리고 번뇌의 가치 문제도 초기에는 제거대상이었으나 점차 활동하여 승화시킬 잠정적 가치로 달리 보았다. 마치 씨앗이 성장하기 위히여 거름이 필요하듯이. 후기 대승에서는 8세기에 힌두교 성력파(性力派)인 딴뜨라(Tantra)를 받아들임으로써, 결국 불교는 예배 대상과 의례와 수행에서 그 특수성을 찾을 수 없어 끝내 이교도와 같아지게 되었다. 석가모니는 힌두교의 비쉬누 신의 화신으로 전락하고 불교는 인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중국과 한국에서는 불교가 도교와 유교에 접촉하였다. 불교는 각 종교로부터 탄압을 받았으나 도교 허무 사상과 은둔 사상이 불교의 공(空) 사상과 출가(出家) 사상과 유사한 점이 있어 선(神)불교는 도교와 습합한 형태로 격의화(格義化)되었다. 유교는 불교의 출가사상과는 결합되기 어려웠으니, 특히 승려의 금혼과 비사회성이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이조 때에 대대적인 탄압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유교가 음양도리를 필연시하는 봉건적인 가부장적 가족 중심의 사회 윤리이기 때문이다. 교는 이에 대응하여 소극적인 유화론으로 공존을 호소한 형태가 주종을 이루었다. 그리고 자구책으로서 소극적인 방편으로 효 사상을 차용하였고 급기야는 그 한계를 넘어서니, ‘부모은중경’에서는 붓다가 부모 뼈에 예배하며 시종 속가 모에 대한 효도를 역설하는 것을 내세우기까지 하였다. 일본에서의 불교는 초기에는 토속 종교인 신도(神道)와 습합한 형태를 보였다. 그러다 근대의 명치유신 때부터는, 국수주의의 영향으로, 신도와 분리되면서 탄압을 받기에 이르렀고, 그러자 기회주의적인 자구책으로 황실 숭배를 지지하고 제국주의 정책에 편승하기도 하였다.
이상과 같이, 대승불교권의 역사를 살펴볼 때, 불교 역사는 결코 늘 찬란했다고만은 볼 수 없다. 불교의 이념을 당당하게 구현하는 의연함을 볼 수 없고, 타 종교를 지나치게 흉내내다가 똑같은 취급을 받거나, 비위를 맞추면서도 도리어 그들의 탄압을 받거나 타 집단의 들러리로 이용당하는 초라한 모습도 더러 보였기 때문이다.
2. 종교대화의 현황
현재의 한국불교는 기독교에 견주어 단연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과학 발달로 인한 신분주의 퇴조현상 외에는, 서구와 달리, 기독교가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득세를 하고 있다. 해방 후 불교가 무기력의 구습과 비구-대처의 내란에 빠져있을 때에 기독교는 미 군정의 지원으로 사회의 각계각층에서 활발히 선교를 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정치, 경제, 의료, 대중문화등에서 엄청난 활동 규모를 과시하고 있다. 기독교는 역사 의식이 있기에 반드시 기독교 국가 사이에 서로 동맹 지원을 하기 때문에, 한국의 기독교는 미국의 영향 밑에서 날로 번창하고 있는 현실이다. 피흘리는 예수의 상징을 표방한 적십자(赤十字) 단체의 남북이산가족찾기, 남북적십자회담, 또 적십자구호비모금 들이 그 보기들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의 선교는 지극히 은밀하면서도 당당하게 사회 각계각층에서 세계적 규모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은 불교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하고 감당해내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것 말고도 그들의 타종교에 대한 교화 열의나 자신의 종교에 대한 인식은 불교를 크게 능가하고 있다. 또 기독교는 중세시대에 한때 서구 유럽을 지배해 온 조직 활동의 긴밀함과 고도한 책략의 경험이 있는 반면에, 불교는 현실적인 종교이기는 하지만 출가 은둔주의 풍토로 역사에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기독교에 대한 불교의 이러한 열세 상태에서 종교 대화의 성공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종교 대화에 대한 우려가 최근의 기독교의 부정적인 태도에서 더욱 짙어진다. 곧, 재작년 여름에 천안과 대구에서 불교비방집회가 있었고, 또 실질적인 협력이 필요한 경승제 인정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NCC나 종교 대화의 열의를 보인 감리교단도 반대하였으며 그밖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같은 태도였다.(기독교연합회 새 회장단에서는 지난 경승제 허용저지 실패에 그책임을 묻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작년 10월 로마종교대화 모임이 끝난 후에 추기경 김 수환씨는 귀국시에 ‘인류복음화대화’에 참석한 것으로 신문에 보도되었으니, 이를 불교에서 보면 종교 대화가 도리어 특정 종교에 이용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더우기 재작년의 남북적십자회담에서는 기독교만 참가한 것에 대해 불교도가 조계종에 항의하였을 때, 총무원 답변은 ‘종교 대화가 진행 중이므로 잠잠하라’는 것이었다. 대화로써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거꾸로 대화 때문에 항의할 수 없다고 돌려버리면 대화에 스스로가 이용당하는 셈이 된다. 이러한 점들을 살펴볼 때 기독교는 분명 두 가지 태도를 취하고 있다. 대화로써 방어 의식을 붕괴시키고 있고 한쪽에서는 강한 교화 정책을 펴고 있다. 불교도는 순진하게도 이러한 양면공세의 대응에 실패하고 있다.
언젠가 불교정화의 선봉을 섰던 모 스님이 평화통일을 주제로 한 라디오 대담에서 ‘김일성과 한 시간반 대화하면 통일시킬 지신이 있다’고 외쳐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불교도는 만화 같은 공상을 경계하여야한다. 불교에서의 마음의 강조를 잘못 이해하면 정신주의의 환각에 빠져 현실의 냉혹한 문제를 간과한 채로 주관적이고 관념적인 태도로 ‘세상물정 모르는’ 발언을 선포하는 헛된 용기를 부리게 된다. 종교 대화문제에서도, 그같은 실속없 고헛된 자기과시의 태도를 버리고, 용의주도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여 대화로 인하여 방심한 순간에 불교의 멸망을 오히려 획책하는 ‘땅굴형 대화’를 사뭇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