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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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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이보리 1987년 02월 60호
병인년 가을도 한참이나 깊어서다. 대웅전과 칠성각을 지나 턱에 숨이 차도록 산 길을 오른 나는 화가스님이 혼자 살고 계시다는 조그만 암자에 닿았다. 꼭 한번쯤 뵙고 싶었던 분인지라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집 앞에서 서성거렸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과시나 하듯 벽의 토분은 얼기설기 붙어있어 얽어논 댓살이 훤히 뵈고 추녀끝의 풍경은 예전에 달려 있었다는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닮아서 모서리가 뭉툭해진 댓돌 위에 하얀 고무신 한 켤레가 뎅그러니 놓여있는 것을 보고서야 난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조용히 스님을 불렀다.
기척도 없이 살며시 문을 여신 스님께선 이 불시의 방문객에게 조금도 놀라시는 기색이 없이 환히 웃으시며 안으로 들이셨다. 한방 가득한 화선지와 책 사이를지나 아랫목에 앉자 스님께선 왜 왔느냐묻지도 않으시고 책상 서랍 속에서 무얼 꺼내셨다. 한약 봉지를 겹겹이 풀자 그 속엔 꼭 한약같이 생긴 것들이 수북이 들어있었다. 그리곤 이내 차(茶)를 한 잔 주시겠다며 물을 끓이러 밖으로 나가셨다. 가을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물끓는 소리는 산새소리와 범벅이 되어 사뭇 풍요롭기까지하였다.
산(山)이라 손님대접이 변변치 못하다고 웃으시며 스님께선 굽이 약간 높고 주둥이가 넓다란 질그릇에 두 모금 정도의 차(茶)를 따라 주셨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난 조심스레, 그러나 담박에 지리산 토종이란 차(茶)를 꿀꺽 들이켰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난 떨떨한 눈으로 스님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도 기대했던 그 차(茶)는 그야말로 별맛없는, 그저 떨떠름한 보리차 그것과 별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혹해 하는 나의 태도는 아랑곳 없다는 듯 스님께선 조용히 다도(茶道)에 관해 입을 여셨다 그 유래와 종류, 그리고 마시는 법….
차(茶)는 세 번 마신다 하였다. 즉세 번을 우려 먹는다는 것이었는데 내가 마신 그 처음 것은 다소 맛과 향이 진하며, 사람으로 치자면 20대의 혈기왕성한 젊은이와 같고, 두번째 것은 은은한 맛이 마치 불혹을 넘긴 40대 성인의 맛이며, 마지막 세번째 것은 무미무취한 것이 그저 담백하여 그 맛이 60대 이후의 도인의 경지와도 같은 것이라 하셨다.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처음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던 것이 차츰 한 모금씩 마시다 보니 참으로 이상한 자연의 풍취같은 것이 느껴오는 듯도 했다.그것은 커피나 우유의 맛같이 쓰거나 달지도 않았으며, 콜라나 사이다처럼 목을 콕 쏘는 그런 짜릿한 맛도 아니었다. 한가로운 저녁 매운 장작 연기가 희뿌옇게 산사의 처마끝에 스며들 때, 잰 걸음으로 산을 오르던 나그네의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는 먼 범종소리와도 같이 정겨운 그 무엇이라고나 할까.
아마도 오늘날의 젊은이라면 한잔 차(茶)의 정갈한 맛보다 비치 파라솔 밑에서 마시는 시원한 콜라 한잔이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오늘에야 유비가 오직 어머니에게 드릴 차(茶)단지를 얻기위해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보검을 내어주던 그때의 심정을 다소 헤아릴 것도 같았다.
짧은 시간에 비록 오가는 말은 적었지만 난 스님께 무척이나 많은 것을 느꼈다. 어쩜 내게 있어선, 그렇게 산에서 혼자 부처님을 모시며 그림과 책과 차(茶)와 더불어 사시는 스님이 바로 그대로 도인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워낙 외진 곳이라 손님이라곤 절의 큰 행사가 있기 전엔 도통 찾아오질 않는다시며 스님께선 이 꼬마손님을 보내기를 무척 서운해 하셨다.
자주 놀러오라는 스님의 말이 등너머에서 아슬해질 때 난 아쉬운 맘으로 돌층계를 내려서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돌아서는 내 발길을 못내 아쉬움에 젖게 한 것은 재스민의 향기가 담뿐 스민 그 방을 떠나는 것,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