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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월(指月) 선사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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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김원학 1987년 02월 60호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무엇인가에는 의지하면서 살아가게 마련이다. 이는 사람이 고독하거나 행복하거나 그 무엇엔가 의지하며 살아야만 하는 연약한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리라. 물론 즐겁고 행복함이 스스로의 마음가짐에 달렸다곤 하지만 그런 마음이기까지는 일생을 통해 마음깊이 간직할 만한 좌우명이 다만 한 두자라도 있어야 되지 않을까.
내게 있어 삶의 좌우명이란 위대한 인간의 명담(名談)도 아니요 뛰어난 영웅 변재의 설담(說談)도 아니다. 깊고 넓은 지식의 보고인 고서의 일절도 아니요 거룩한 금구(金口)의 무변교해 (無邊敎海)도 아니다. 그것은 한생을 살면서 오로지 삶의 일상에 어긋남 없이 끝모르는 정진과 소박한 산승(山僧)의 모습으로 일생의 시적(示跡)을 수범(垂範)하신 지월선사의 말씀이다. 내가 가야산 입산 후 노사의 시자 노릇을 할 때의 일이다.
지월노사께서는 방선(放禪)시간이 되면 의례 도량 주변을 다니시며 버려진 양말짝들을 하나하나 주워 모아 깨끗이 씻은 다음에 그것들을 두겹세겹 포개 기워서 후원에서 일하는 부목처사님들에게 나누어 주곤 하시었다. 그뿐만 아니라 심지어 버려진 옷가지 등을 주워 깨끗이 빨아서는 방안 벽장에 일일이 모아 두시는 것이었다. 나는 노사의 그 알뜰한 마음에는 아랑곳 않고 고물상 창고같은 스님의 벽장을 청소한답시고 안의 것들을 모두 쓰레기장에 내다 버렸다. 어느날 드디어 지월노사께서는 모아둔 물건들을 내게 찾으셨다.
“노스님! 그 더러운 물건들은 이제 그반 모으십시오. 냄새나는 것들이라 제가 모두 쓰레기장에 버렸읍니다.”
철없는 내 말에 지월노사께서는 빙긋이 웃으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록 버린 물건일지라도 기워 입을 수 있는 것은 알뜰히 기워 입고, 기워 신을 수 있는 것은 알뜰히 기워 신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더러운 데는 씻어내고 다시 입는
마음이 있어야 시은(施恩)을 덜 입게되는 것이야”
그제사 나는 고인들 말씀에 삼상(의,식,주)을 부족하게 하는 것이 수도인의 근본이라고 한뜻이 새삼 떠올랐다. 잘 먹고 잘 입고 안주하는 것에 마음바쁜 요즘의 공부인들에겐 참으후 아쉬운 귀감임에 틀림없다.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으시는 넉넉하신 자용(慈容)의 지월노사의 이 말씀이 언제나 부족한 나를 다잡아 주시는 것이다. 지월노사의 일생은 이처럼 겸박한 생활과 겸양과 미덕을 잃지 않으시고 시적 (示寂)의 그 날까지 공부인의 모습을 잊는 일이 없으셨다. 해인사 일주문에는 이런 끌귀가 적혀 있다.
‘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처럼 불변의 진리로 남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언행이 일치된 삶의 흔적들 뿐이다. 이는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남아 어둠을 끝까지 밝혀주기 때문이리라. 만나고 헤어짐이 수없이 반복되는 삶이다. 쉬이 만나기에 쉽게 잊혀지는 순간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지월노사의 이같이 정겨운 자양(滋養)의 말씀 한마디가 더욱 아쉽게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우리들 마음에 지월노사의 실천궁행하신 이 정신이 살아만 있다면,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옥천(玉泉)의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 포근한 정을 나누면서 살아가련만.
머지않아 봄이 올 것이다. 온 산천이 푸른 빛으로 채색될 즈음이면 나는 의례 해인사를 찾는다. 일주문이 바라다보이는 산사의 입구에 서면 나는 먼저 지월선사의 행적을 기린 비석에 눈길을 돌리게 되고, 이때 쯤이면 노선사의 말씀이 다시 내 귓전을 울리는 것이다.
뜻을 세우기를 산같이 하고(立志如山) 마음은 언제나 바다같이 넓어야 하느니(安心似海) 언제나 잔잔하던 미소에 조용한 그 말씀은 어디로 가고 봄을 맞는 초목의 동면을 깨우려는 계곡의 물소리와 나그네의 지친 여정을 풀어 주는 산사의 목탁소리만이 불고(不古)와 장급(長今)의 진리를 깨우쳐 준다.

가없는 자비는(諄諄慈悲)
중생을 편안하게 하고(物物斯安)
끝없는 정진은(乾乾精進)
마음에 두루하여 (心心無間)
많은 후학들에게(天下後來 本分衲子)
마음의 길잡이요(淺深心要)
영원한 모범일세 (萬古榜樣)

지족암 일타(日陀)큰스님은 노사의 모습을 이렇게 비문에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