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있었던 ‘9 ㆍ7 해인사 불교 자주화, 사회 민주화 선언’이 있고 난 얼마 뒤에 어느 지도적인 민주인사 한 분이 “이제 이 나라의 민주화를 불교가 이루고 말겠소”하고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말하던 기억이 새롭다. 그만큼 지난 한 해의 불교계의 움직임은 국내외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사실, 80년에 있었던 10ㆍ27 법란으로 불교계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유형-무형의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도 그동안 그에 대해 한 마디 공개 항의조차 하지 못했던 점을 생각하면, 그 해인사의 자주화 선언은 오히려 때늦은 감이 없지는 않다.
공자는 “불의를 보고도 항의하지 못함은 용기가 없는 탓이라”고 말했지만, 법란 이후로 7년 동안 불교계는 그 치욕적인 법란의 철저한 원인 분석을 통하여 잘못된 현실에 대해 과학적이고 구조적인 인식과 투쟁으로 적극적인 대응을 하기는커녕, 수 많은 민주 인사들과 학생들이 감옥에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oooo기원법회’다 뭐다하여 법석을 떠는 등,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짓들을 연출하여 민주화를 열망하는 많은 불자들을 위시하여 국민들을 실망시켜왔을 따름이었다.
지난 해인사 선언의 의미는 참으로 소중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돌이켜보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민족 문화의 꽃을 피웠으며 전통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불교가 이처럼 정치적 희생물로서 속죄양이 된 것은,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한 마디로 말한다면 힘이 없는 탓이다. 만약 현정권이 불교에 대해 개신교나 카톨릭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것처럼 전세계적인 조직망을 배경으로 하는 거대한 세력을 의식하고 있었더라면, 불교계가 군화발로 법당을 짓밟히는 것과 같은 전대 미문의 법란은 결코 겪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불교가 무력한 원인 중의 하나는, 필자의 견해로는, 다양한 불교사상이 전체적인 시각, 통불교적인 시각에서 체계적인 정리가 이루어져 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보기를 들면 다리를 틀고 앉아 “이 뭣꼬? “ 하고만 있으면 언젠가 깨달음이 벼락같이 도래하리라고 불교를 신앙하고 있는 사람이 뜻밖에 많다는 사실은 별로 놀라운 일이 못 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어쩌면 이것은 한국 불교가「부립문자(不立文字)를 내세우는 선종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귀결일는지 모른다. 일찌기 원효성사는 ‘금강삼매경론’에서 “선을 표방하는 것은 진정한 선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을 한 바 있거니와, 그것은 선을 하더라도 선이 목적이 아니라 방편이리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선이란 것이 우리가 몸 담고 살아가고 있는 구체적 삶의 현실에 원용되어질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라와 민족이 어떻게 되든 그런 것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나는 오직 내 공부만 하면 그뿐이라는 지극히 이기주의적인 선적 논리가 지금까지의 불교계를 이렇게 무기력하게 만든 근본 원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민족과 나라가 없는데 불교가 어디에 존재할 것인가?
지금까지 한국 불교가 개인적인 깨달음이 전체 공동체의 삶과 서로 뗄 수 없는 연기(緣起)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진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소극적이고 은둔적인 자세로서 현실 도피주의로 흐른 까닭은, 중국에서 무제(武帝)에 의한 폐불훼석(廢佛毁釋)과 몇 차례의 불교 탄압이 있은 뒤에 산중에 숨어 지내며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중국적인 선종의 폐쇄적인 흐름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수용하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불교 사상이 전체적인 통일성을 잃은 까닭에서 파생된 결과로 보여진다.
한국 불교는 형식적이든 어쨌든 대승(大乘)불교를 표방하고 있다. 대승 불교의 이상상(理想像)은 보살이다. 보살은 자기는 비록 성불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고통바다(苦海)에 빠져 허덕이는 일체 중생을 남김없이 구제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성불하겠다는 원(願)을 갖고 있다. 대승 경전에는 이러한 이상을 실천하는 한량 없는 보살들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 재야의 민주화 운동 단체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민통련 의장 문 익환 선생의 재판이 시작되었다. 이 때 문 선생이 재판을 거부하는 자신의 태도를 차례로 밝히고 난 다음 마지막 최후 진술에서 말하기를 “지금 감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모든 대학생들과 양심적인 민주 인사들이 한사람도 남김 없이 다 석방되기 전에는 결코 나 홀로 감옥 문밖을 나서지 않을 결심이다”라고 하는 것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었다. 오늘 이 땅의 불교가 요구하는 인물은 이러한 보살이다. 자기 혼자만에 구원받겠다는 소승적(小乘的) 아라한이 아니라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 자신을 던질 수 있는 대승 보살이 나타나 주기를 모두가 기대하고 있다.
옛날 선방에 있을 때, 함께 있던 도반(道伴)이 참선을 하면서 관세음보살 주력(呪力)을 병행히여야 한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우스개 얘기로 “보살을 찾지만 말고 자신이 보살이 되라”고 말한 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다. 우리 모두가 보살이 되려는 원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 불교는 우리 민족사의 과제인 민족통일을 성취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비록 서로 다른 이념으로 인해 30여년 동안 체제를 달리하여 서로 반목하며 질시하고 싸워왔지만 단일 민족 한핏줄인 우리가 서로 화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합쳐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러려면 남과 북의 우리 민족이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공통 분모를 찾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원효성사의 화쟁(和諍)의 논리가 양 극단을 여윈 이변중도(離邊中道)로서 남과 북을 가로막고 있는 분단의 벽을 허물고 화해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분단으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온갖 고통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통일에 이르기 위한 전제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사회의 민주화와 민족의 자주화이다. 이 시대 우리 민족이 처해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지상 과제라 할 수 있는 민족 통일을, 전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기반이 없는, 정통성이 결여된 정권이 참다운 통일 과업을 성취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잡으려고 하는 것(緣木求魚)처럼 얼마나 어리석고도 무모한 얘기일 것인가. 또, 민족의 자주화 없이는, 외세에 의한 간섭 때문에 민족 통일이란 현실적으로 성취되기 어려운 우리만의 기대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의 민주화와 민족의 자주화는 민족 통일에 다다를 수 있는 양쪽 수레바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 없는 민족의 자주화란 허구에 불과한 것이고, 만족의 자주화 없는 민주화란 공허한 것일 터이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의미에서 불교의 자주화란 사회의 민주화와 민족의 자주화가 이루어져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는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수레바퀴를 누가 끌고 가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 땅에서 고통을 이겨내는 보살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불자들은 무엇보다 불교의 자주화와 사회의 민주화, 그리고 민족의 자주화가 궁극적으로 서로 별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민중 해방과 민족 통일의 그날을 앞당기기 위한 사회 민주화의 대열에 동참하여 민족 종교로서의 긍지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오늘 우리는 민족사의 격동기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명에서 꽃다운 나이의 젊은 대학생들이 반외세, 민족 자주화를 부르짖으며 온 몸이 불덩어리가 되어 피맺힌 절규를 토하며 잇달아 장렬히 산화하는 충격적인 모습을 목도했다. 또 1960년대부터의 경제 성장 과정에서 가장 큰 공헌을 하고서도 그 성과로부터는 철저히 소외되어 온 대다수 노동자들의 기막힌 현실에 대해서 함께 아파하며 대학생으로서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그들과 더불어 노동자가 되고자 했던 순결한 영혼을 지닌 권 인숙 양은, 처녀로서의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뛰어넘어 온갖 오욕과 탄압을 뚫고 불굴의 용기로서 마침내 위대한 인간성의 승리를 획득했다.
이 절박한 민족사의 격랑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불자들은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생명을 던져 민족사의 재단에 바친 열사들의 투쟁에 대해서 깊이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대의 참담한 민중적 현실을 올바르게 직시하여 과학적이고 구조적인 인식과 조직적인 투쟁으로 온 겨레가 목마르게 염원하는 평화 통일의 그 날을 앞당기는 데 신명을 바쳐야 할 것이다. 민주화와 민족의 자주화를 위한 이들의 숭고한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 통일의 거름이 되어 찬란히 꽃피어날 것이다.
통일이 화두(話頭)되는 날
분단의 사슬을 끊어 버리고
우리모두 하나 되어
얼싸안고 춤을 추는
찬란한 정토 세계가 이루어지리라.
그리하여 이 땅에서
파멸로 치닫고 있는
세계 인류를 구원할
새로운 지평이 열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