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문을 들어서면 마치 열병(列兵)이라도하듯 하늘을 향하여 직립(直立)해 있는나무들. 대가람 역사를 대변(代辯)하기라도 하듯 아직도 푸르기만 한 이 나무들은 저마다의 굵기로 수문장(守門將)처럼 버티어 서 있다. 늦가을 닥엽져 내리는 이 길을 걷노라면 특히 그 정취의 아름답기가 그지없다. 이 천년 노목의 가로수를 따라 조금 올라가다 보면 일주문에서 300척 떨어진 곳에 봉황문(鳳凰門)이 나타난다.
정면에 큰 글씨로 해인총림(每印叢林)이라고 쓴 현판이 눈앞에 다가선다. 유당(惟堂) 정현복(鄭鉉輻)의 글씨이다. 문안쪽으로는 ‘봉황문’이란 현판이 있어 그 글씨가 천하의 명필이나 그 글씨의 임자를 알지 못하는데, 사중(寺中)현판 글씨 가운데는 가장 명필이라 한다. 또 과거 해인사의 대화재에 이 문이 타버릴 때에도 이 현판만은 날아나와 화재의 참변을 면했다고 하니 참으로 진기한 글씨이기도 하다.
이 봉황문은 천왕문(天王門)이라고도 불린다. 대부분의 큰 본사(本寺)에는 으례히 천왕문(天王門)이나 금강문(金剛門) 또는 사천왕문(四天王門) 등으로 불리는 문이 꼭 있게 마련인데 돌이나 냐무 등으로 조각된 사천왕상이나 탱화로 된 사천왕상을 모시고 있으며 이는 봉황문도 마찬가지이다.
믿음의 세계에서 천상의 세계로 이어지는 길목에 자리한 봉황문. 선업만을 이룬 이들에겐 무섭기만 한 사천왕의 모습이 차라리 믿음직스러우리라. 저 밖에 한가로이 일주문이 보인다.
사천왕은 본래 욕계(慾界) 6천(六天) 가운데 사왕천 (四王天)에 머물면서 천상으로 들어오는 여러 착한 사람을 보호하는 선신(善神)으로 수미산(首彌山)의 동서남북에 위치하여 악한 것을 멸하고 불법 (佛法)을 옹호하려는 서원(誓願)을 세웠으므로 산문입구(山門入口)에 봉안하여 수문역과 도량수호역(道楊守護役)을 맡게 하였다. 이러한 신중(神衆)들은 대부분 힌두교의 영향이며 불교가 대중화하는 가운데 인도의 민간신앙과 함께 접합될 때 생긴 사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미산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그 몸빛이 백색이고 손에 비파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이름으로는 건달바왕이라고 부르는데 건달바란 곧 제석천을 위하여 음악으로 대천세계를 다스리고 즐기는 천왕이다. 수미산의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오른손에는 활을 잡고 왼손으로는 이를 측정하는데 다른 이름으로 구반타왕(鳩槃棻王)이라 부른다. 구반타는 의심을 다루는 왕인데, 남을 의심치 말며 남에게 의심받지도 말아야 함을 뜻하고 있다. 수미산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오른손에 여의주(如意珠)를 잡고 왼손에는 용을 잡은 모습의 왕이다. 수미산 북쪽을 지키고 있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호법 (護去)과 복(福)을 주는 선신인데 오른손에는 보용(寶棒)을 잡고 왼쪽 손 위에는 보탑(寶塔)을 들고 있는 천왕으로서 다른 이름으로 비사문(毘舍門)천왕이라고 부른다. 이 사천왕들은 불 ㆍ 법 ㆍ 승(佛 ㆍ法 ㆍ僧) 삼보(三寶)를 수호하고 청정한 도량에 무사다복(無事多福)을 주는 선신이기도 하다.
전호(前號)에 일주문을 들어서면 믿음의 세계라 하였는데 천왕문은 하늘의 나라 즉 선인(善人)들이 사는 천상(天上)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이 사바세상에서 착한 일만 한 자들은 누구나 다 그들이 지은 선업 (善業)으로 인하여 천상세계를 가게되는데 천상으로 오르려면 꼭 사천왕문을 통과해야 하는 불교적 우주관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의 창건연대는 개산당시(開山當時)라고 하나 확실히는 알 수 없고 조선시대 영조(英租) 때 고승 해봉유기(海峰有璣)스님이 쓰신 봉황문의 상량문이 현존하므로 건축연대가 이보다는 훨씬 상대(上代)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그동안 이 봉황문은 여러 차례 중건되었는데 기록을 보면 조선숙종 3l년 서기 l705년에 중건(重建)한 사실이 있고 순조17년 서기 18l7년에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또 헌종(憲宗) 4년인 서기 1837년에는연월(淵月)스님께서 화주가 되어 가야(伽耶), 나제(那提), 문수(文殊), 보현(普賢) 둥의 영정(影幀)을 봉안하였다가 최근 1933년에 고경(古鏡)스님께서 화주(化主)가 되어 그 당시 화사(畵師)로 이름이 높던 송파정순(松城淨直)스님과 퇴경일섭(退耕日燮)스님의 솜씨로 현존하는 사천왕상을 봉안하였다. 이 문의 주련 글씨는 해강 김규진 선생의 글씨인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하늘이 무너질듯 벼락치며 부르짖더니
비 개인 뒤의 강산이 한결 푸르러
어룡(魚龍)이 이렇듯 조화를 나타내니
드높은 돌부처님마저 신령스럽도다
雷嗚天墜同時吼 雨霽江山一樣靑
物極魚龍能變化 尊精石佛自神靈
봉황문에서 벼랑처럼 서 있는 돌계단을 오르면 바로 해탈문에 이르게 된다. 일주문, 천왕문, 해탈문의 순은 사찰문의 기본양식으로서 이 해탈문은 다른 말로 불이문(不二門)이라고도 하는문인데 여기서 부터는 완전한 불법의 세계이며 부처님의 나라 즉 모든 중생적인 속박을 헌출히 벗어나서 해탈의 세계로 들어감을 상징하는 문이다. 천상의 세계가 선악(善惡), 시비(是非), 생사(生死)의 대립적인 세계라면 해탈 즉 불이(不二)의 세계는 이런 상대적인 세계를 초탈(超脫)하여 상대가 무너진 세계인 불사의해탈경계(不思議解脫境界)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들어 간다는 뜻이겠다.
이 해탈문은 모두 34평으로 6간 2면의 건물이며, 최초의 창건은 일주문과 같은듯 하나 이 또한 여러차례 큰 불을 만나 소실되었고 다시 중창되었으리라고 짐작된다. 현재의 건물은 고종 광무 3년인 서기 1899년에 범운(梵雲)스님께서 중수한 바 있고 지난 1936년에 다시 당시의 주지 설호(雪醐)스님께서 중수하여 석계를 개축하였으며, 지금은 해인사의 포교를 위하여 불교용품이나 서적을 비롯한 포교자료를 판매하는 연경당(硏經堂)이라는 곳이기도 하다.
‘해탈문’의 편액은 혜선(蕙山) 박해근(朴海根)선생의 글씨이며 ‘해동원종대가람(海東圓宗大伽藍)’이란 편액은 추사체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 선생이 존경해 마지않던 만파(萬波)스님께서 고종 2년에 쓴 친필이다. 해동원종이란 선종구산 13종을 통합 일원화한 진실 원만한 교리를 말하는 종파 즉 화엄종이란 말이니 ‘해동원종대가람’이란 말은 ‘우리나라 화엄종의 큰 절’이란 뜻이 되겠다. 주련의 글은 1939년 당시 주지 설호스님이 짓고 글씨는 l94l년 진주의 서예가 은초(隱樵) 정명수(鄭命壽) 선생의 필적인데 그 뜻은 이러하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원력이 법계를 두름에
최후의 승체로써 보리도량에 이르네
해탈로 말미암아 금강보좌에 오르니
가야산중에서 무상정각을 이루고
해인삼매의 대화엄경을 언제나 설하네
일백사십 공덕이 모두 이승(二乘)이 아니고
팔반사천 법문이 높이 십지(十地)를 뛰어 넘네
毘盧遮那佛願力周法界 以最後勝體詣菩提道場
因解脫深因登金剛寶座 伽倻山中成就無上正覺
海印三昧常說大華嚴經 一百四十功德不共二乘
八萬四千法門高超十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