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말(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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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편집실
1987년 02월 60호
갑자기 실어증이나 걸린듯 말하기가 싫어졌다. 아니, 우리들의 비겁한 의식과 방관의 거름을 탐욕스럽게 빨아 무성해진 말의 가화(假花)들에 식상했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할런지 모른다. 발이 곧 우리의 삶을 결정하고 의미지운다는 구절은 그래서 타당하다. 마찬가지로 말이 싫은 심정일 때 생과 세계에 대한 가치나 의미가 그 근거성을 상실해버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인듯 싶다. 오로지 무채색의 비애와 슬픔만이 가슴을 꾸역꾸역 메울 뿐이겠다.
말의 생명이 진실성 여부에 달려있는일종의 약속어음같은 의미와 책임성을 요구한다 할 때, 말이 곧바로 자신이어야 하고 사회이어야 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으리라. 하지만,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많은 말을 주고받는다. 정치인이 종교인이, 지식인이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장과 생각인양 진실과는 먼 말들을 속절없이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말들의 거울에 자신과 현실을 함께 비춰볼 때 얼마나 많은 허위와 공허함이 도사리고 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거들먹거리며 신트림하며, 쓴약을 삼킨듯 위엄을 부려가며, 얼토당토않는 말로 현살과 사실을 호도한다. 말에 말로써 끝나는 시한부적 나불거림같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고 길들여져 무비판적 사고에 하루하루 생활인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기필코 말은 살아야 한다.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만큼 말은 자유로와야하고 말에 걸맞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앞서 우리들 개개인의 내면 깊숙히 꽂혀있는 비언어적 패배성을 척결해야 함을잊지 말아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