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꺽어진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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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편집실 1987년 02월 60호
스물 한살이란 꽃다운 젊은 학생이 비명 한번 쳐보지 못한채 짐승처럼 죽었다. 피멍든 몸은 밧줄로 감기고 억센 두 경관의 완력에 두팔이 뒤로 비틀려 바르작거리며 욕조속의 가득한 물에 강제로 얼굴을 쳐박혀 이 시대의 단발마적 어둠처럼 죽어갔다.
그 어떤 반항도, 자기 주장도, 인간적인 호소의 틈도 주어지지 않은 그야말로 그들 식, 그들의 방법만이 두껍게 에워쳐진 밀폐된 공간에서, 그것도 국민과 사회를 위하여 국민의 혈세(血稅)로 세워진 공공기관 건물 속에서 티없이 맑은 한 생명에게 그 만행은 저질러 졌다. 인간의 기본적인 일말의 죄의식이나 두려움도 없는, 마치 한 생명에 있어 생사여탈권이라도 부여받은 망나니나 된듯 갖은 방법과 잔혹한 고문을 저지른 손끝에 고귀한 한 생명은 박탈 당하고 말았다.
우리의 안전이나 권리를 맡겨놓고 곤히 잠든 어둠 속에서 그들은 그렇게 공권력이라는 만능의 올가미로 우리의 한 젊은 생명을 발가벗기어 유린 능욕했으며, 이 또한 몇일이 경과한 후에야 우리의 눈이나 귀로 확인할 수 있었음에 이 얼마나 사무치는 분노이며 치떨림인가. 아직도 수사상의 의혹점은 밝혀지지 않은채 기술적인 거론만 무성할 뿐. 한 죽음에 대한 전정한 사인규명도, 범국민적 반성도, 슬픔의 기미도 노냥 미미할 뿐이다. 정녕, 이 나라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나라인지, 법대로 다스려지는 사회인지 우리는 그 애통한 원혼(冤魂) 앞에 망서려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작부터 우리는 자유니 법이니 하는 허구의 말을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떨리는 절망의 싯점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가 어느 짬이며 어떤 체제구조인지. 이러한 일이 이번 뿐이 아니겠고, 또한 앞으로도 이러한 불상사(치안당국자의 표현으로)가 다시 없으리라는 확신이 서지않는 것은 과거의 하위조작, 은폐성에서 뿐 아니라 사건의 심각성이나 중요성이 유명무실되어 결국에는 임시 조치에 불과했던 사례에서 짐작이 가고도 남기 때문이리라.
이번 사건에서야 비로서 기사화한, 그것도 몇줄 기사에 지나지 않는, 사실이지만 우리를 의혹의 늪으로 끌고가는 데에 가속을 더한다. 다름아닌, 시위도중 연행된 이나 운동권 학생들 중 변시체로 발견되었다는지 행방이 묘연한 학생수가 50여명에 이른다 하니 이 어찌 가당찮은 시국이며, 어둠의 시대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들에 핀 하잘 것 없는 한송이 꽃이 시들어도 천지간에 드리워진 침울을 느낀다할 때, 이번 가혹한 고문끝에 죽음으로 대신할 밖에 없었던 젊은 영혼의 처참함이야말로 이 나라에 사는 모두의 슬픔이 아닐 수 없겠다.
죽어서까지 부모의 손에 고이 돌아갈 수 없었던 원통함도, 짧은 시일에 부검과 화장을 해치워버린 냉혹함도 끝끝내 인간적 배려는 묵살된 처사다. 오직, 비뿌리는 임진강가에 한줌 재되어, 아버지의 그 복받치는 설움과 통곡 속에서 무심한 강물 위에 떠내려 보내는 호곡만이, 그어린 영혼을 뜨겁게 부둥켜 안았으며 펄펄펄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나라 사람들은, 상복을 입은듯한 처절한 오열과, 가슴깊이 억누르는 피끓는 노여움과, 경악의 눈초리로 암담하기만 한이니라 하늘을 치어다보는 것으로 그칠것이 아니라, 이득히 먼 자유와 민주의 그날까지 그 벌거숭이 추운 영혼을 기리며 눈물로 눈물로 피워야 하리라.”종철아 잘가거레이…”이 말을 뇌리에 새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