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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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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숲 - 편집실 1987년 02월 60호
믿음은 단순히 지속되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믿음 자체가 스스로의 껍질을 깨고 진리의 꽃을 피워야 한다.
단순히 지속되기만 하는 믿음은
그것이 아직 완전하게 자기 것이 되어 있지 않음을 가리키는 증좌(證左)다.
믿음 자체가 스스로의 생명을 꽃피울 때에
믿음은 비로소 진정한 믿음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믿는 것이 쉬운지, 어려운지 하는 따위는 이미 문제가 되지도 않을 터이다.
믿음은 오직 스스로의 크나큰 길을 걸어 감으로써
스스로의 세계를 열어 젖히는 것이다.
그러면 첫걸음을 내디딘 믿음은
어떤 경로를 거쳐서 화엄의 궁극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일까.
이것을 ‘현수보살품’의 논지에 비추어 밝혀 보고자 한다.

신심이 견고하여 동요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의 몸과 마음은 밝고 청정해질 것이다.
몸과 마음이 청정해지면,
모든 니쁜 벗에서 떠나, 오직 착한 벗만 사귀게 된다.
착한 벗과 사귀면 여러 가지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까닭에
많은 공덕이 얻어질 것이다. 그 공덕 속에는
여러 진실한 도리가 포함되어 있는 바, 그 도리를 이해하게 됨으로써,
궁극의 진리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無上菩提心)이 생길 것이다.
이렇게 궁극의 진리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면,
우리들의 미음은 모든 집착을 떠나, 부처님의 ‘집’에 태어날 수가 있다.
부처님의 집에 태어나면,
깊은 청정한 마음이 얻어져서 온갖 보살행을 실천하여
스스로 대송의 진리가 몸에 갖추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은 모든 부처님들을 공양하고
늘 염불 삼매 속에 살 수가 있다.
염불 삼매가 확립되면
늘 시방의 부처님들을 뵐 수가 있고,
부처님이 늘 안주하심을 알게 된다. 부처님이 안주하심을 알게 되면,
우리들은 이윽고 웅변의 능력을 얻어,
무량한 불법을 설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모든 중생은 해탈하게 될 가능성이 생기며,
대비심이 이 세계에 확립되기에 이른다. 대비심이 확립되면,
우리들은 항상 불법해서 환희를 느끼고,
만심이나 게으름으로부터 떠날 수가 있다. 만심이나 게으름을 떠나면,
고뇌의 생사 속에 있으면서도 조금도 근심하지 않고,
부단히 노력하고 정진할 수가 었다. 노력 정전하면,
인간의 온갖 능력이 얻어지고,
중생의 생활을 넓고 깊게 알 수가 있게 된다.
중생의 생활을 알면,
중생에 대해 진리를 설하고 재물을 보시하고
친애의 말을 하고 선행에 의해 인도하고, 이와 같이 활동을 하면서
헤아릴 수 없는 이익을 줄 수 었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는 궁극의 대도에 안주하여
악마에 의해 교란을 받지 않게 된다. 악마에 의해 교란을 받지 않으면
우리들은 절대 부동의 경지에 이르러,
불생 불멸의 진리를 체득하게 된다. 그 진리가 체득되면
이윽고 성불될 것이 약속되어 부처님들에 의해 항상 보호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부처님의 무량한 공덕이 몸에 넘쳐서,
그 얼굴은 광명으로 빛나게 될 것이다.

첫째는 부동의 신심이다.
둘째는 신심에 의해 생겨나는 궁극의 진리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
곧 보리심이다.
세째는 모든 집착을 떠나는 염불 삼매다.
네째는 염불 삼매에서 생기는 대비심이다.
다섯째는 그것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생기는 중생을 위한 이타행(利他行)이다.
여섯째는 자리 이타를 성취함으로써 도달하는 절대부동의 경지다.

옥성강사랑 저, 이 원섭 역, ‘화엄경의 세계’ 가운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