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의 방에 파리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파리는 시인의 눈길이 잘 닿지 않는 유리창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창 밖에는 바람이 불 때마다 낙엽이 우수수 지고 있었습니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자 파리의 마음은 퍽 쓸쓸해졌습니다. 이제 낙엽이 다지고 겨울이 오면 곧 죽음이 찾아올 것입니다. 파리에게 겨울은 죽음의 계절일 뿐입니다. 물론 봄이 오면 새 삶을 사는 새로운 파리들이 태어나겠지만, 그것은 자신의 삶과는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파리는 어떻게 하면 겨울을 이겨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곰곰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처서가 지나고 백로가 지나면서부터 슬슬 느껴지는 추위도 잘 견디지 못하고 있는데, 이제 입동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되면 도저히 추위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파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이제 얼마남지 않은 자신의 삶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왕성하게 사랑하고 번식하던 지난 여름이 한없이 그리웠습니다. 그리움은 곧 고통이었습니다. 책상에 앉아 시를 쓰고 있는 시인에게 자신의 고통을 호소해 보고 싶었으나, 아무리 시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해 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파리는 이제 마지막 남은 삶을 후회 없이 살고 싶었습니다. 곰곰 생각해 볼수록 그 동안 후회스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육체 없는 사랑은 있을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육체적 쾌락에 탐닉한 일도 후회스러웠지만, 무엇보다도 친구들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일이 후회스러웠습나다. 배가 부르면서도 배고픈 다른 친구들의 먹거리를 마구잡이로 빼앗아 먹은 일이 가장 후회되었습니다.
그런데 파리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한 것이었습니다. 음식 생각을 해서 그런지 겨울이 오기 전에 더욱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보지 못한다면 정말 후회스러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그 동안 살아 오면서 먹는 즐거움이야말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으나, 정작 지금 생각해 보니 무엇 하나 제대로 맛있게 먹어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리는 마지막으로 무엇이 가장 먹고 싶은 것인지 곰곰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시인이 늘 즐겨 먹는 꿀이었습니다. 시인은 설탕을 몹시 싫어한 탓으로 차를 먹을 때 꼭 꿀을 넣어 단맛을 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파리는 자기도 그 꿀을 한번 먹어 보고 싶었습니다만 단 한 번도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꿀은 얼마나 맛있는 것일까. 얼마나 맛있는 것이길래 시인이 저토록 맛있게 먹는 것일까.
파리는 그 동안 시인이 먹는 밥풀도 먹어 보고, 양념한 불고기도 먹어 보고, 시인이 술을 먹고 토한 토사물도 먹어 보았습니다만 꿀은 그것보다는 더 맛있을 게 분명했습니다.
파리는 죽기 전에 꿀을 한번 먹어 보는 것을 지신의 마지막 남은 일로 정했습니다. 그래야만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꿀을 홈쳐먹을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습니다. 시인은 시를 쓰다가 인삼차를 곧잘 먹었는데 그럴 때마다 꼭 꿀을 몇 숟가락씩 타 먹었습니다. 어떤 때는 쌍화차를 먹기도 하고 미숫가루를 물에 타 먹기도 했는데 그 때도 꼭 꿀을 타 먹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파리는 꿀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기를 끈질기게 기다렸습니다. 그에게는 엿보거나 기다리는 자에게 는 반드시 그 기회가 찾아온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과연 기회는 찾아왔습니다. 하루는 시인이 꿀을 넣어 인삼차를 타 먹고 꿀병의 뚜껑을 닫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파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먼저 뚜껑에 묻어 있는 꿀을 맛보았습니다. 처음 혀끝에 꿀이 닿는 순간, 파리는 자신도 모르게 “아!”하고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그것은 일찍이 맛보지 못한 달콤한 맛이었습니다. 정말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내가 이 꿀맛도 모르고 죽을 뻔했구나!’
파리는 그런 생각을 하며 뚜껑에 묻어 있는 꿀을 순식간에 먹어 치웠습니다. 그리고 꿀병의 가장자리에 묻어 있는 꿀도 먹었습니다. 시인이 뚜껑을 닫아 버리기 전에 마음껏 먹어 두는 것이 마지막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파리는 꿀병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날개에 꿀이 너무 많이 묻어 꿀병을 빠져 나오기가 힘들었습니다. 혹시 이대로 꿀병에 빠져 죽는 것이 아닌가 하고 덜걱 겁이 났으나 다행히 꿀병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제서야 더 이상 꿀병 속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꿀병 속에 빠져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꿀을 먹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그는 다시 유리 창가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여전히 낙엽은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마음 또한 여전히 쓸쓸했습니다. 꿀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그런 쓸쓸함 탓인지 자꾸 꿀 생각이 났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카시아 꿀의 그 달콤한 맛이 생각나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설마 죽기야 할라구.”
파리는 다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꿀병 속으로 날아갔습니다. 조심조심 날개가 닿지 않게 하고 살짝 꿀위에 앉아 꿀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조심을 한 탓으로 날개에 꿀은 묻지 않았습니다. 아, 그러나 이번에는 그만 한쪽 발이 꿀에 깊숙이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발이 빠져든다고 느껴지는 순간 얼른 발을 빼내었으나 그 순간 다른 한쪽 발이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발은 점점 꿀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이미 양쪽 날개도 꿀에 젖어버린 지 오래였습니다. 아무리 날개에 힘을 줘도 날아오를 수가 없었습니다.
파리는 달콤하나 끈적끈적한 꿀속으로 점점 빠져 들어갔습니다. ‘이왕 꿀속에 빠져 죽을 거 꿀이라도 실컷 먹자’하는 생각을 하면서 점차 의식을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