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열아홉일 때 나는 밀양 표충사에 있었다. 행자시절을 되돌아보며 내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거리를 활보하는 청소년들을 거론하는 것은, 아마도 내 출가에의 출발이 그들과 거의 비슷한 나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친구들이 부귀와 영예가 함께하는 세상에 관심을 가지며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나는 그저 절에 가고 싶었다. 도를 닦겠다는 거대한 이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름 없는 돌 사이로 불어 졸졸 흐르고 새소리 들리는 그런 산골짜기의 자연과 함께 하며 내 영혼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투명한 영혼, 영혼의 자유, 청소년 시절, 그런 것에 대한 지향으로 내 온 마음은 채워져 있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고향에 있는 표충사였다. 그 곳은 내 영혼을 맑힐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곳이었다. 딱히 도를 닦으러 간 것은 아니었으나 자연스럽게 머리를 깎고 행자가 되었다. 한여름 한 번에 나무 반 짐이 들어가는 아궁이에 앉아 불을 때 밥을 지으며 공양주 노릇을 했어도 더운 줄 몰랐고, 어른 스님들 시봉하며 하루 종일 잔걸음을 치던 나날이었으나 고단한 줄 모르던 표충사에서의 삶은 오랜 여행에서 집에 돌아온 것처럼 그렇게 아늑하고 편안했다.
염불하는 일뿐만 아니라 절집에서 하는 일 모두가 좋기만 하던 어느 날이었다. 한 스님이 표충사에 들렀다가 염불을 열심히 익히고 있는 내게 이런 말씀을 했다. ‘수행자는 수행 쪽에 정진해야 한다. 금강경을 몇 년 독송하고 참선하라.’ 객 스님의 그 말씀은 절집 생활이 그저 편하고 좋기만 하던 행자의 귀를 번쩍 뜨이게 했다. ‘금강경 독송’, 그것은 불교가 무엇인지, 금강경이라는 경전의 요체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호젓하게 독송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표충사를 떠나 옮겨간 곳이 청도 동문사였다. 마침 그 곳에 기거하던 대처승이 떠나고 나 혼자 머물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금강경을 독송했다.
낮에 나무 한짐 해다 놓고, 밥 한끼 먹는 시간을 빼놓고는 일념으로 금강경을 독송했는데 그렇게 신나고 좋을 수가 없었다. 밥하는 시간이 아까워 냄비에 밥을 앉혀 군불 때는 밥솥에 넣고 끓였던, 참으로 수행에만 전념한 시간들이었다. 시계가 없었으니 시간이 오고 감을 몰랐으나 독송을 하다 보면 문틈으로 새벽의 여명이 흘러들어옴을 보고 날이 밝는 것을 느끼곤 했으며, 밤새 문풍지 두드리는 바람소리를 벗삼아 독송을 하고 밖으로 나와 밝아 오는 아침을 맞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충만이 온몸을 휘감곤 했다.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순수하게 금강경 독송에 몰입하며 한 해 겨울을 보냈는데, 가끔 그 시절 눈 밝은 스승이 곁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볼 만큼투명하고 환희로웠던 나날이었다.
그렇게 한해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니 ‘중이 되어야지 그리 있으면 되겠느냐’는 말이 있어 계를 받으러 대구 대승사로 갔다. 봄이라고는 하나 바람이 꽤 쌀쌀했던 어느 저녁 공양 시간쯤이었을 것이다. 툇마루에 앉아 누른 밥을 먹고 있는데 행색이 초라한 사람 하나가 물끄러미 내 밥 먹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올려다보니 그는 남루하기 그지없는 행색에 얼굴에서 진물이 흐르는 문둥이였다.
숟가락 하나를 더 가져와 그와 함께 남은 누른 밥을 먹었다. 아마도 그 모습을 지금 파계사에 주석하고 계신 고송스님께서 보셨나 보다.
나중에 들으니 원주스님을 불러 ‘저 행자가 누구냐’고 물으셨다고 한다. 스님께선 그 뒤 나를 다시 불러 ‘내 상좌 살라’고 하셨고, 곧 나는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으며 한해 남짓한 행자시절을 마감했다.
가끔씩 밖에서 내게 묻는다. ‘출가자로서 당신의 한평생 테마는 무엇이었느냐’고. 그들은 아마 이리 먹물 옷 입고 수십 년 동안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이루었으며 무엇을 세상에 회향했는지를 묻고 싶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대답한다.
“계戒는 바로 선禪이다. 곧 계즉선戒卽禪이요, 선즉계禪卽戒이다.”
이는 내 한평생의 수행관이다. 계를 지키는 것 자체가 수행인데 자칫 잘못된 선사상으로 계율을 무시 또는 외변하면 뿌리 없는 나무를 키우겠다는 얘기일 뿐 온전한 수행이 결코 될 수 없다. 계정혜戒定慧가 한 뿌리이건만 오늘날 계율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열에 한 사람도 보기 어려우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또 하나, 남은 생애 내게 마지막 원력을 담은 테마가 있으니 그것은 앞에서 말한 ‘어질고 지혜로운 아이 태어나기’를 위한 ‘태교 교육’이다. 출가사문이 되어 부처님께 입은 한없는 은혜를 ‘좋은 아이 태어나기’를 위한 태교 명상법 포교를 통해 서서히 무르익혀 나가는 것이, 내 생애 마지막 테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