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전국귀농운동본부 여름현장학교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맑은 땅 좋은 벗 - 안혜령 1999년 09월 211호
지난 7월 28일부터 8월 1일까지 닷새 동안 전국귀농운등본부의 여름현장학교}전북무주의 푸른꿈 고등학교에서 열렸다.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의 산업문화로 말미암아 날로 심각해지는 생태 위기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으로 생태척 귀농을 제시하며, “농촌과 농업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도시의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돌아가 튼튼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자”는 기치 아래 96년 9월 창립한 전국귀농운동본부가 실시하는 열번째 예비 귀농자 교육이었다.
봄과 가을, 일 년에 두 차례 여는 귀농학교가 이론 교육에 무게를 두는 데 반해, 여름현장학교는 현장 합숙과정을 통해 집중 학습을 실시함과 아울러 이론 강의 중심의 한계를 보완하며, 귀농 희망자 사이에 공동체 의식을 깊게 하기 위해 해마다 여름에 실시하는 “열린 귀농학교”다.
올 현장학교의 참가자는 모두 백이십여 명으로, 귀농 교육이 실시된 이래 가장 큰 규모였다. 이백 명이 넘는 신청자들 중 고심 끝에 팔십 명을 받았는데, ‘푸른꿈 교실’이라는 어린이 반을 따로 운영하기로 하고 아이들까지 받고 보니 그만한 수가 되었다.
게다가 각 지역귀농학교 간사들과 귀농학교 선배들로 이루어진 자원봉사자들, 귀농본부 식구들이 스무 명 남짓 되니, 백사십여 명이라는 대인원이 ‘귀농’의 깃발아래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었다.
올해 참가자가 이렇듯 많은 까닭으로 먼저, 아직도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IMF 관리 체제를 들 수 있겠다. 또 근래에 이르러 점차 높아지고 있는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과 현대산업문화가 불러일으킨 생태 위기에 대한 각성도 한 요인이 된 듯하며, 교사들 스스로 “즐겁지 못한 교사생활”이라 실토할 정도로 획일화되고 경직된 제도 교육에 대한 반정도 주요한 동기로 보인다.
수가 많은 만큼 그 면면도 다행해서, 그저 흙이 좋아 왔다는 평범한 주부에서부터, 사업가, 노동자, 수의사, 농장주, 현직 농부, 환경운동가 컴퓨터 박사 들이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한데 모였다. 귀농과 대안교육을 함께 모색하기 위해 왔다는 교사들이 많았으며, 「녹색명론」을 정기 구독하다가 그 “감당 못할 내용”에서 오는 무력감을 씻기 위하여 싱가폴에서 온 열성적인 모녀도 있었다.
비가 내리는 탓에 교실에서 열린 개강식에서 이병철 본부상은 참가자들이 현장학교에서 “무엇을 배워 가려고 하기보다 느끼고 가기”를 당부하였다. “생태적 삶이란 자연과 공존하며 생존하는 삶의 지혜이므로” 머리는 발달했으나 몸은 굳어 있기 십상인 참가자들에게 이 닷새가 “자연과 함께, 흙과 함께 생활하려는 감각을 일깨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 것이다.
이어 그는 “왜 귀농인가”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오늘날 삶의 위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이 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길이 귀농임을 역설했다. 현실적으로는 닥쳐올 식량문제를 해결하며, 도시산업문명 속에서 뿌리뽑힌 제 존재의 의미를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되살리고, 자립적이고 주체적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길이 귀농인즉, 귀농어란 단순히 직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바꾸는 중대한 결단임을 강조했다.
“생태적 귀농과 자립적인 살림의 지혜”를 주제로 한 올 여름현장학교의 교육 내용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었다. ‘생태적 유기농업’으로는, 생명의 벼농사와 자립적인 밭농사에 관한 강의와 현장 답사. 환경 농산물과 품질 기준 강의가 마련되었고, ‘살림의 지혜’로 효소, 식초, 차 만들기, 황토로 하는 천연염색 실습, 황토방 만들기, 숯 목초액 만들기, 전통술 빚기, 들꽃 가꾸기, 목공예가 다루어졌다.
아울러 ‘귀농을 꿈꾸며’ 부분으로 귀농과 자녀 교육강의, 우리 춤 우리 가락 강의와 실습, 생태마을 둘러보기, 몸 스스로 돌보기, 마음다루기와 함께, 귀농 생활을 좀더 구체적이고 실감나게 이해하기 위하여 무주지역 선배 귀농자와의 만남의 자리가마련 되었다.

‘생태적 유기농업’은 귀농의 본질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연생태계와의 조화를 꾀하며 땅을 살리기 위하여 기계나 농약을 쓰는 손쉬운 길을 버리고 제 몸과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일인즉, 당장의 수익도 기대하기 어렵고 나날의 노동 또한 만만치 않을 귀농 생활은 거개가 농사 경험이 없는 귀농 희망자들에게 벅찬 과제가 될 것이다.
벼농사는 벼 박사로 알려진 전남 벌교의 강대인 씨가, 밭농사는 변산농부 정경식 씨가 맡아 저마다 오랜 세월 고집스레 유기농업을 지어 온 경험을 들려 주었다. “먹는 음식이 곧 생명”임을 강조한 강대인 씨는 유기농법으로 짓는 논농사의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고, 정경식 씨는 유기농업이 상업성을 띠어 가는 현실을 우려하며 더욱 바람직한 형태로 공생농업을 제시했다. 특히 그는 “도시에서 오염 다 시키면서 앉아서 무농약 먹을려고만” 드는 태도를 따갑게 질책했다. 소비자와 생산차가 함께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며, 따라서 도농직거래운동에 예비 귀농자들이 관심을 가지기를 당부했다.
현장 견학으로 인근 귀농 선배들의 논밭을 둘러보면서, 퇴비 마련에서부터 세부적인 농사 기술에 이르기까지 참가자들의 질문과 강사들의 대답이 오갔는데, 예비 귀농자들로서는 막중한 농삿일을 일부나마 실감하고 생태계의 상부상조함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을 터이다.
그 중 자연 조건에 영향 받는 바가 크기 때문에 “십 년을 짓든 일 년을 짓든 해마다 새로운 농사”라는 귀농 선배이자 밭 주인인 김광하 씨의 말은, 자칫 농사 기술 익히기에 급급할 수도 있는 이들에게 자연 질서 안에 놓인 사람의 자리를 돌아보게 하는 귀한 조언이었다. 모두 일곱 개의 강의가 마련된 ‘자립적 살림의 지혜’는 하나하나가 바로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내용들인지라 참가자들의 관심이 높았으며, 그 중에서도 전남 화순의 농부 정옥기 씨가 지도해 준 황토로 하는 천연염색 실습이 큰 인기를 모았다.
과정은 의외로 간단해서 미리 준비해 온 흰 광목 또는 면 티셔츠 등을 황토물에 담꿨다가, 손으로 잘 문질러 가볍게 싼 뒤 밀린다. 밀린 다음 맑은 물에 깨끗이 빨아 주면 빛깔 고운 황토색이 나오는데, 계속 비가 들락거린 탓에 애 태운 이들이 꽤 되었을 게다.
생태마을 둘러봐와 선배 귀농자와의 만남 또한 현장학교 참가자들에게는 현실적인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유용한 시간이었다. 무주 생태마을 조성 사업의 주도자인 허병섭 목사의 강의에 이어 직접 생태마을과 윗마을 광대정 일대를 찾았는데, 함께 예정되어 있던 진도리 마을회관 견학이 드센 빗줄기로 취소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비를 맞으며 산길을 오르내려야 했음에도 모두들 성심껏 현장을 둘러보았으며, 흙 벽돌로 지은 살림집과 특히 뒷간에 관심이 집중되었고 질문이 쏟아졌다. 광대정 귀농자들 가운데 김근희 씨는 여자 혼자 몸으로 농사짓고 낡은 집 보수해 가며 사는 남다른 생활로 감탄을 자아냈다.
그 날 저녁에 마련된 ‘선배 귀농자와의 만남의 자리’에는 광대정뿐만 아니라 무주 인근 지역의 귀농자 열세대쯤이 초대되어 막걸리 통을 놓고 예비 귀농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배들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농촌 생활의 어려움과 주의점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는데, 귀농생활의 방법과 책임은 결국 “각자의 몫”임을 강조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부부가 함께 일할 수밖에 없는 농촌에서 서로 의지함이 도시에서보다 절대적으로 크다는 점이었다. 또 농촌 여자의 삶이 결코 쉽지는 않되, 농사란 생명을 키우는 일일진대 모성을 가진 여성들에게 알맞은 일이라고 입을 모았으니, 혼히 남자보다 귀농에 소극적이기 쉬운 여자들의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날마다 아침이면 운동장에서 하는 명상 체조로 하루를 열었다. 새롭게 몸과 마음을 닦는 시간이었다. ‘마음 다루기’ 강의에서 박석 교수는 명상이란 자신의 삶을 날마다 아름답게 꽃피운다는 점에서 귀농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호흡을 통하여 제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며, 명상으로 마음의 유연성을 기르고 내적 자유를 얻는다
했다. ‘몸 스스로 돌보기’에서 송방호 씨는 몸은 자연의 축소판인즉, “몸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일 것을 간곡히 일렀다. 몸의 훈련법으로 요가를 예로 든 그는 요가가 단순한 건강법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한 길이라 했다.
그러므로 참가자들에게 아침 체조는 단순히 몸 풀기 운동이 아니라 깊게 호흡하며, 그 숨결에 맞추어 조용히 온몸을 움직여 나감에 따라, 물질문명이 주는 안락함에 젖어 잊어 버렸던 제 내면을 들여다보는 깨우침의 길이었다.
맨발이 주는 자유로움이라니! 비에 짖어 미끌거리는 흙이며 발바닥을 찌르는 풀잎의 감촉, 내 살과 대지가 알몸으로 만나는 순간에 짜릿하니 느껴지는 생생한 생명력. 그것이 자유였다. 첫날 체조시간 뒤로 대개의 사람들이 맨발이었다. ‘우리 춤 우리 가락’과 신명을 설명하는 채희완 교수를 재촉하여 운동장으로 달려나가 어깨를 들썩일 때에도 많은 이들이 신발을 벗어 던졌다. 이제 저이들은 논매고 밭 맬 때라도, 그저 논둑길, 밭둑길 걸을 때라도 종종 저렇듯 맨발일 것이다.
어른들이 강의를 듣고 현장견학을 다니는 동안, 아이들은 저희들대로 바빴다. 닭싸움, 말뚝박기 같은 전래놀이도 하고, 물놀이도 가고, 태견을 배운답시고 교실을 통째 뒤흔들어 놓기도 했다. 틈틈이 운동장의 풀을 뽑았고, 저희들 간식거리인 감자 껍질을 깎고 옥수수 다듬는 일을 즐겁게 해냈으며, 어설픈 솜씨로나마 제 밥그릇은 제가 씻었다. 밥상에 놓일 콩나물까지 다듬었으니, 일이 곧 놀이요 놀이가 일인 셈이었다.
‘귀농과 자녀 교육’이란 강의에서 푸른꿈 고등학교 김경남 교장은, 대안학교란 ‘기 살리는 교육’ , ‘참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하고자 하는 학교라 했다. 그 지향하는 바는, 사람의 도리를 아는 사람, 자신의 빛깔을 찾아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사는 사람, 생태적인 사람이라 했으니, 소비지상주의와 획일적 가치관이 판치는 도시문명 안에서는 기대하기 힘들 터이다. 도리어 대자연과 온 생명체가 삶의 터전이며, 교육 환경인 농촌에서 아이들의 전인교육은 좀더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도 귀농은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길임에 틀림없다.

마지막 밤, 축제가 열렸다. 그 날 낮에 비로소 하늘이 개었다. 그 틈을 타 아이들까지 온 참가자들이 진안의 토곡동 계곡으로 물놀이를 다녀온 사이, 몇몇 사람들이 돼지를 잡았다. 닷새 내내 풀만 먹나 싶던 사람들을 들뜨게 한 소식이었다. 그렇게 돼지 한마리 잡고, 막걸리와 수박이 날라져 오고, 귀농 선배들은 물론이려니와 무주군수까지 참석했으니 성대한 잔치였다.
밤마다 조별 모임을 통해 지난 삶의 내력과 귀농에 대한 생각들을 털어놓으며 서로의 벽을 허물어갔으니, 그렇게 다진 공동체 의식을 열어 보일 때였다 모닥불을 가운데 놓고 조별 장기자랑을 하고, 장구와 북 장단에 맞춰 한바탕 춤판이 벌어졌으며, 모처럼 밤하을에 별빛 총총한 가운데 늦도록 노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마지막 날, 종강식에서 이병철 본부장은 이번 교육이 “귀농 생활의 체험이며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만남의 장”이었다고 말했다. “함께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맛보는” 자리였으니, 여름현장학교 모든 참가자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동지로서, 하나의 두레”를 이룰 것을 당부했다.
생태적 귀농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단순히 농촌으로 돌아가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깨어지고 부숴져 버린 우리의 전통두레를 되살리는 일이라고 볼 때, 어느 참가자의 말처럼 이들이 “당장 귀농하든 안 하든, 애초에 참가한 뜻”을 지키고, 닷새 동안에 체험한 ‘농심’을 제 처한 자리에서 살려 나간다면 이 또한 ‘농적문화’의 확산에 일조하며 도농을 가리지 않고 공동체적 삶의 길을 한 발 앞당기는 것이리라.
‘10기 귀농학교 수료증’을 받아들고 사람들은 다시 떠나온 자리로 돌아갔다. 일정이 빡빡했다든지, 현장성이 좀 부족했다든지, 가족 단위의 프로그램이 아쉬웠다든지 하는 문제들이 새로운 과제로 남긴 했지만, 새 삶에 대한 희망을 키운 날들이었다. 백사십 명 모두 하나로 어우러진 마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