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된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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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암 이야기 - 법장
1999년 09월 211호
이제 지닌 자의 고통을 말해야 할 것 같다. 어느새 , 오막살이나마 가진 자가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우려는 곧잘 현실로 나타난다. 이번에도 현실에서 즉시 나타나고 말았다. 그래서 가지려고 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집착이었나를 알게 된다. 이러려고 이렇게 시작한 것은 아닌데 정말 그랬다. 예전에 몰랐던 잔 걱정거리가 예측도 못한 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집을 지으면서부터 였으리라. 비만 좀 많이 온다 싶어도 편치가 않았다. 비구승, 비 와도 고무선 닦아 엎어놓으면 거기에 더 무슨 근심 걱정 있으랴던 말이 실감 나면서, 하긴 이즈막의 중노릇이 어디에 머물든 걸망 한 개의 단출한 살림살이는 아니라서 쓸데 없는 번뇌를 동반하며 살긴한다만, 무엇을 지닌다는 게 이토록 걱정이 많이 쌓일까 싶다.
이 곳에 들어오는 데는 꽤 긴 비포장 도로가 산길로 이어져 큰비만 오면 난리다. 좁은 계곡과 얕은 지반이 삽시간에 달라드는 물줄기를 지탱하기 어려운 지대라서 였다. 작년에도 태풍이 길을 망가뜨려 장마 전부터 조마조마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와 태풍은 그냥 지나가 주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마을과 멀어 전기는 물론 흔한 통신 수단 하나 못 갖춘 채 원시의 생활로 돌아왔는데, 길마저 끊어 놓아 별 수 없는 유배지가 되고 말았다.
그랬다. 흡사 유배지처럼 되었다. 안락하고 썩 괜찮아 자신을 유배시켜 놓고 묻혀 있기 꼭 알맞은 유배지, 이렇듯 좋은 곳에 어찌 유배지일 수 있을까만. 그런데 꼭 한 번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짐차에 짐을 실리우고 길 안내를 하며 이 곳으로 들어오던 그 날. 터를 닦으며, 집을 지으면서 한번도 그런 마음이 든 때가 없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이긴 해도 묻혀 지내기에 맞춤한 곳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웬 주책이었을까. 짐 실은 차를 뒤에 세우고 먼길을 오는 동안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자동차가 마을 어귀를 넘어서는 순간 갑자기 였다. ‘아하, 이제부터 유배의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눈언저리에 알지 못할 눈물이 맺혀져 왔다. 바라던 생활이었다. 오래도록 계획해 온 것이었다. 유배되듯 정말 속세를 떠난 듯싶게 살아보자던 것이었다.
그랬으면서도 막상 바랜 그 앞에 이르러 두려움이 일고 있었다. 알지 못할 눈물의 근원은 분명 두려움이었다. 여태껏 살아왔던 삶의 형태에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거기에 안주해 있다가 여기서부터는 혼자여야 한다는 것이 잠시 심악해졌던가 보다. 지금부터 견뎌야 할 외로움과 어려움 또한 그리움들이 그러했으리라. 뼛속 깊은 외로움까지 맛보고 그것을 진정 즐길 수 있을 때 도道의 맛도 알게 된다는데 정말 그리 돼 주려나.
이렇듯 혼자만의 생활이 아직 길지 않았지만, 고백하건 데 생각보다 무지 어렵다. 그 중에도 적막 속에 끝없이 이어지는 외로움은 누구와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넘기는 날들이 많다.
저번 태풍이 지나가며 큰비 오던 밤 같은 때, 누구와 걱정거리를 나눌 수 없어 더욱 외롭고 심란해진다. 혼자서 꽁꽁 앓으며 궁리할 밖에. 이 정도면 길이 남아 나지 않겠군, 무슨 힘으로 보수를 하나, 고추 밭은 무사할까 등 걱정은 꼬리를 문다. 아니나다를까. 날이 밝아 나가보니 계곡 안에 채워 둔 반찬 상자는 흔적도 없고, 길 위로 범람한 물줄기는 상상을 넘고 있었다. 망연하게 바라다볼 뿐 물이 빠진 길들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으로 황폐되어 한숨만 길게 하였다. 정말 홀로 유배되고 만 느낌.
고무신 한 켤레 들여 놓으면 아무 걱정 없었을걸, 이제 와서 어쩔 것인가. 가진 자의 고통과 근심이 이다지도 크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