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청계산 국사봉 자락,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낙조는 그것이 과연 실재한 것이기는 했던지, 생겼다가 사라짐이 순간이었다. 맑고 버언하던 하늘에 마지막 남은 빛조차 까무룩 사라진 뒤, 오른편 산등성이 위로 깎은 손톱 같은 달이 떠올라 제 세상을 이룬다. 정토사 도량의 발치에 무리져 피어난 연못 속 연꽃은 끝물이라 꽃 한 송이 없이 이파리만 무성하니, 사위는 그저 어둠일 뿐이었다. 어두워져서 더욱 환해지는 것은 불 켜진 극락전이다.
그 안에 모셔진 아미타불이 두 손으로 펴 보이시는 뜻, 설법인, “내가 너희를 위해 지금도 설법하노라.” 그 앞에서 지심으로 송경하며 절하는 사림들 있다. 원왕생, 원왕생…
그 곳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어지러운 바 없이 오체투지로 사뢰는 바 있나이다. 들어 주소셔. 일념에 부처 한분 태어난다 하셨나이까. 그 부처까지 들으소서.
지난 유월. 이 곳에서는 내년 유월에 입제될 “만일万日 염불 결사회” 준비 법회가 열렸다. 이미타불 염불에 관심 있는 사부대중이 만일(27년 5개월)에 걸친 긴 장정을 시작하기 전의 도움닫기, 전날은 철야 염불 기도로써 함께 결의를 다졌다. “오늘날 한국 불교가 질곡의 수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만일염불 결사의 전통을 계승하여 21세기 불교 신앙과 수행의 방향을 제시하고, 신심을 더 굳건히 하는 신앙 공동체를 결성”하려 함은 동국대 선학과 교수이자 이 곳 정토사의 주지인 보광스님이 그 동안에 펼쳐 온 행장과 앞으로 꾸려 갈 삶의 방향을 나타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한국 불교가 질곡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겸허히 인정한다면, 그것이 주류인 간화선 일변도의 한국 불교의 현주소임을 인정한다면, 그는 그 회생의 가능성을 염불결사 운동의 부홍을 통해 모색해 보려고 한다.
올로써 속랍 쉰살, 경주가 속향인 그는 열일곱살 되던 해인 1967년에 분황사로 출가했다. 용성스님의 손제자인 은사 도문스님은 원효스님이 17년 동안 주석했던 분황사 보광전의 이름을 따 그의 법명을 “보광”으로 지어 주셨지만, 그 인연의 씨앗이 어떤 싹으로 터 나갈지 미리 내다본 것은 아니었을 터였다. 동국대 학부때에「정토삼부경」을 읽은 뒤로 그의 삶의 지남이 되어 준 정토신앙은 원효의 정토 사상을 중심으로 한 박사 학위 논문인 “신라정토사장의 연구”로써 중간 결산을 한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경도불교대학에 유학하여 6년 세월 보낸 끝에 이룬 것이었다. 쯔보이(정토불교), 마끼다(중국 불교사), 야나기다(선)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불교학 교수들을 스승으로 삼았던 유학 시절은, 선학과 정토 신앙의 학문적 접근을 위한 이론 체계를 닦는 시기였을 것이다.
귀국한 뒤로 86년부터 동국대에서 선학과 교수로 지내게 된 최근 6년 동안에는 한국 불교 속의 신앙결사체에 관한 연구로 일관, 수다한 논문을 발표해 왔다. 일본에서 8OO쪽에 이르는 분량의 책으로 발간된 그의 박사 학위 논문말고도, 용성스님에 대한 최초의 학문적 연구의 결과물인「용성 선사 연구」를 책으로 펴냈고, 「정토교 개론」「선과 일본 문화」 「선정禪淨쌍수론」 등을 번역했다.
최근에는 지루가참의「반주섬매경」을 “부처님을 친견하는 삼매경”이란 제목으로 우리말로 옮겨 책으로 펴냈다. 국내 초역인 이 책은「정토삼부경」과 함께 정토 신앙에서는 주요 소의경전으로 삼는 것으로서 중국 여산의 혜원과 천태 지의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경전이다.
염불을 하면 부처를 볼 수 있다 이르는 책, 마음이 곧 부처이며, 그 마음은 곧 불성이므로, 마음과 부처와 불성은 하나가 되니, 견불과 견성은 둘이 아님을 이르는 책이다. 자신도 「정토삼부경」과 「반주삼매경」을 소의경전으로 삼고 있는 바, 그 또한 칭념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잠자리에 들면서 아미타불을 왼다.
방 안에서 둘이 나누면 둘밖에 못 들을 말, 그러나 방송국에서 전파를 태우면 온 나라 사람이 두루 들을 수 있는 방도, 무량수, 무량광, 다함이 없고 어디에나 충만하니 한량 없는 능력을 가진 아미타불이라는 전파에 제 마음을 싣는다. 부처 앞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열어 보이어 지극하고도 순수한 마음이 되게 해라.
신도에게 이르는 것도 그렇게 단순하고 소박하다. 환희심이 넘치는 마음으로 염불하여 나날의 생활에서 부처를 구체적이고도 지속적으로 느껴라. 지심신락욕생아국至心言樂欲生我國 (「무량수경)), 지극한 마음과 즐거운 믿음으로 부처 앞에 순일하게 나아가노니, 이 모두 님에게 회향하여 극락왕생한다는 것에는 이미 더 이상 개인적이고 배타적인 기복의 요소는 발견되지 않는다.
아미타불은 법장비구의 몸일 때에 세자재왕불 앞에서 48가지 중생제도의 대원을 세워 보였다. 그 가운데서도 열여덟 번째 원, “설사 내가 부처가 될지라도 시방 중생이 지심신락하여 내 나라에 태어나고자 하되, 열 번만 명호를 외고서도 극락왕생하지 않으면 정각을 이루지 않겠다”는 원은 중생에 대한 자비심의 정점으로서, 대승 불교의 요체이자 귀결지로 볼 만한 것이다.
법장이 성불한지도 10겁이 지났다 하니, 열 번만 그 명호를 외어도 왕생할 수 있음은 이미 10겁 전에 이루어진 약속이 된다. 그러나 부처도 이러한 약속이 믿음을 쉬 얻지 못하고 분별사량의 원천이 될 수 있음 또한 10겁 전에 밝혀 놓으셨다. “내가 이 오탁악세에서 이 어려운 일을 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모든 세간을 위하여 이 믿기 어려운 법을 설하는 것이 진실로 어려운 일이니라” (「아미타경)).
“시심작불是心作佛이면 시심시불是心是佛이라 했어요. 그러나 선종에서는 부처 만드는 일은 젖혀 놓고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만 강조합니다. 방하착하라 하나 수승한 근기가 아닌 중생으로 그 일이 어디 쉽습니까. 부처를 만들어야 해요. 부처를 만들면 그 마음이 부처가 됩니다. 중생심이 부처가 되도록 염불하고 기도해야 해요.”
정토사, 그가 일본으로 유학 가 있는 동안 신도들의 주선으로 마련된 작은 공부방은 스무 해 만에 법당과 식당과 요사채 등을 앉힌 사천 평 도량의 번듯한 기도처로 바뀌었다. 인근의 분당과 성남, 강남 등지에서 모이는 신도들을 이끌어 초하루와 보름은 그가 법회를 인도하지만, 지장재일과 관음재일 등에는 정토삼부경, 보왕삼매론, 법화경을 교재로 소그룹 형태의 자체적 경전 공부가 이루어진다.
그들은 염불할 때 모두 목탁을 친다. 좋은 음악에는 정신 없이 푹 빼져 들듯이, “음악 소리 중에서 가장 좋은 염불”이지만, 목탁 소리는 정신 집중에 더욱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목탁뿐 아니라 전통을 살리어 북, 장구, 꽹과리 등 사물도 곁들여 볼 생각이다.
신도들은 저마다 염불 달력이 있어서 집에서 행한 수행의 내용과 분량을 기록하고 제출하게 된다. 칭념과 관념염불과 염불선은 단계에 따른 정토신앙 수행의 방법이다. 관념염불은 관상법으로서,「관무량수경」에서 이르는 16관법처럼, 해나 물이나 부처의 상호 등 구체적인 형상을 떠올려 삼매에 드는 것이다.
염불선은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염불하는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참구하는 것이다. 초보 단계에서 쓰는 방법은 달라도, 염불함으로써 생각이 끊어지지 않게 하다가 궁극에는 생각의 끊어짐 자체도 없어지게 되니 간화선과 근본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염불선이 들어온 고려 광종 이후로 천 년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선사들이 법문을 할 때는 게송을 읊고 나무아미타불로 회향하고 있지 않습니까. 원효스님은 말할 것도 없고, 선교를 회통시킨 보조스님의 정혜 결사문에서도 영명 연수의 「만선동귀집」의 뜻과 일치되는 내용이 열여덟 군데나 돼요. 그 흐름은 서산 대사의 「선가귀감」에서도 짚어집니다.”
한국 불교가 임제종이 아닌 조계종이라면, 묵조선이든 염불선이든 다양성을 존중함으로써 실질적인 통불교의 면모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불고가 모두가 함께 성불해야 한다는 개공성불도에 이르려면, 그런 인식의 공유 속에, 보편인을 위한 새로운 수행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력행(참선)과 타력행(염불)의 조화, 참선의 지혜를 체로 삼고 염불의 자비심을 용으로 삼는 염불선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대사회적인 실천면에서의 한계를 극복해야 할 참선과, 지나친 타력 일변도가 된다면 신비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는 염불과의 조화, 그는 앞으로 그 일에 매진하려 한다.
정토신앙에 대한 척박한 학문적 연구 토대와 구체적인 실천 그룹의 부재, 그러한 그의 문제 인식은 앞으로의 자신의 삶의 방향이 되어줄 모양이다.
중국 동진의 여산 혜원의 백련결사가 그 효시가 되거니와, 우리나라에서는 미륵 신앙 결사체로 보이는 화랑도, 성덕왕대에 보천이 주도한 오대산 결사 등으로 비롯되어 근현세의 건봉사 만월염불결사 운동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결사 운동의 의미는 한 마디로 이르면 “실천 불교”가 된다. 호법과 자정自淨을 위한 자기 수행의 실천과, 자비심을 가지고 중생을 구제하려는 대사회적 실천 행위, 염불결사의 근본 도량이라 할 만환 강원도 건봉사에서 98년 만일염불결사가 결성된 데 이어 이 곳 정토사를 만일결사의 또 다른 도량으로 삼으려는 뜻 또한 그러하다.
올해 안으로 마무리될 원묘 요세의 백련결사에 대한 논문으로 결사 운동에 관한 6년 동안의 학문적 천착은 일단 끝을 내고, 앞으로는 역사 속에 나타나는 염불선을 그의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 삼으리라 한다.
만 일의 염불결사, 그것을 “장시長時”와 “평생”의 뜻으로 녹여서 생각하더라도, 작정하고 펼치려는 운동의 가간은 걸어서 듣기만 해도 숨이 찬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만일결사, 그것은 우리나라에서만 있었던 장기 결사 형식이었다. 저술과 역경 등을 겸하는 세월이긴 했으나 혜원은 칩거 끝에 필경 ‘”사고(思)를 오로지 하고 생각(思)을 고요하게 하니, 뜻을 하나로 하여 분별하지 않고 기를 텅 비워 정신은 맑아져서 어떤 깊고 미세한 도리에도 투철해지는” 삼매를 얻었을 것이다. 그는 어느 날 도연명과 육수정 두 친구를 맞아 전송을 나가다가 다리 건너 산문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는 서원을 잊고 호계의 다리를 지나치게 되었다. 이 일을 알게 된 세 사람은 함께 크게 웃으니 이를 두고 사람들은 “해삼소”라 했던 것이다.
그에게 부처를 관하여 삼매에 드는 수행을 하실 틈은 있으신가. 학부와 대학원 수업말고도 그가 관여 하는 일은 많아서 공연한 걱정이 든다. 2006년 동국대 개교 백주년 기념 사업(불교 종합병원, 일부 이전될 제 3캠퍼스와 기숙사 및 법당 건립 등)을 위한 대외 협력 일을 지휘하고, 전자불전연구소 소장으로서 신라대에서 근세에 이르는 불교 관련 저술을 한데 모은「한국 불교 전서」 전산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개원한 재단법인 대각회 부설 대각사상 연구원에서는 일 년에 한 번 학술 연구 모음집을 펴낼 뿐 아니라 용성스님의 유업을 계승하고 오늘에 되살리려는 갖가지 행사도 벌이고 있으니 그 또한 원장 소임을 맡고 있는 그의 몫이다. 그뿐인가 했더니, 앞으로도 20년은 더 걸릴 것이라는 일본 도원스님의 「정법안장」번역 일도 10년 가까이 해 오고 있었다. 내년부터는 그 성과물이 나오리라 한다.
그러나 그는 그저 태연해 보인다.
오늘 아침도 공양을 앞에 놓고 대중과 함께 게를 외었다. 스스로 만들어 오관게 대신 외는 것이다. “위로는 제불보살님과, 가운데는 일체 현성賢聖과 아래로는 많은 중생이 이 공양을 함께 들고 모두 배 불러지고, 악한 일을 멀리하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며, 생전에는 안락하고 사후에는 왕생극락하여지이다. 나무아미타불.”
십념十念이면 왕생한다 했어요. 내일 아침은 못 먹게 된다 하더라도, 오늘 염불하였으니 극락왕생하게 되겠지요. 삼십 년 걸릴 길 작정해 놓고 그는 그저 그리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