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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佛事와 관련하여 스님들께 올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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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강우방 1999년 09월 211호
세간世間에서 집을 짓고 글을 쓰고 제사를 지내고 강연회를 가지듯이, 절에서도 법당을 짓고 경전을 쓰고 법회를 갖습니다. 세간에서 스승을 찾아 지식을 배우듯이, 절에서는 선사禪師를 찾아 지혜를 깨칩니다. 그러니 절에서 사람들이 영위하는 행위 일체가 불사입니다. 속세의 일상과는 다만 모습과 목적이 다를 뿐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마음가짐이 다릅니다.
스님은 속세를 떠난 분들이라 합니다. 절은 속세와 멀리 떨어져서 산곡山谷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절은 스님들에게는 수도의 장소이며 속세인들에게는 예배의 장소입니다. 스님들은 삭발하므로 속세인들과 곧 구별할 수 있습니다. 또 무소유를 지향하므로 세속인이 버린 헌 옷을 주워 다 빨아서 조각조각 기워(糞掃衣) 입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채식을 합니다. 스님들이 사는 절은 수도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속세인들에게는 불국토입니다. 정토입니다. 공덕으로 장엄한 극락입니다. 속세인이 절에 들어가는 것은 보문普門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진리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절 안의 집 모양이나 채색은 속세와 다론 분위기를 띠어야 합니다.
절 집안의 생활은 속세의 생활과 차츰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되어 가고 있지만, 엄격한 차이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번뇌와 보리가 둘이 아니고 생사와 열반이 다르지 않으며 세간과 출세간이 다르지 않고 불심이 곧 평상심이라 하지만, 그래서 법당에 들어가기 전의 문을 바로 불이문이라 하지만, 그래도 다른 차원의 세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다른 차원의 사람들과 세계가 있기에, 고통스럽고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스님들을 찾고 절을 찾는 것입니다. 장엄하고 고요하고 평온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불이문이란 절대 진리의 문이므로 오히려 안과 밖의 구별을 엄숙하게 구별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마힐거사가 침묵으로 응대하였던 불이不二라는 궁극의 진리의 문은 모든 차별상을 없애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본디 불교는 정의定義를 거부해 왔습니다. 획일화를 거부해 왔습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불교의 독특한 진리관에 연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늘 새롭고 개혁적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불교 최대의 강점이자 최대의 약점입니다. 약점이라기보다는 허점虛點입니다.
이미 신라시대 7세기에 고매한 정신을 지녔던 원효 성사는 절을 뛰쳐나와 파계를 하고 대중을 구원하고자 시정市井에 뛰어들었습니다. 아이러니가 아닙니까. 그는 파문 당하지 않고 오히려 보살로 칭송을 받았으며 오늘 날에는 성인聖人으로 추앙 받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그에게는 성속聖俗이 하나였습니다. 그는 불이의 진리를 실현하였습니다. 그는 바로 유마힐이었습니다.
불교는 실천자인 보살을 더 중요시 하고 그래서 대승大乘을 보살승菩薩乘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보살의 지위에 이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재가신자인 유마힐거사를 내세웠습니다. 그는 부자이며 많은 시종을 거느린 세속적인 사람이었으나 청정한 마음은 오히려 보살들보다 더 거룩하였습니다. 원효는 시정에 바로 뛰어들었으나 대중을 구제하고자 하는 마음은 절에 있으면서 논소論疏를 저술할 때보다 더 절실하였을 것입니다.
불교의 역사를 보면, 지금 얼핏 살핀 것처럼, 성聖과 속俗의 간격을, 부처와 범부의 간격을 점차 좁혀 가는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불교가 바라는 대로 승속僧俗이 하나인 불이의 진리가 실현된 듯합니다. 평등의 세상이 온 듯도 합니다. 세간도 출세간도 다름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속세라는 예토穢土를 정토爭土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절은 정토의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절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나쁜 의미의 세속적인 것에 오염될 수도 없고 오염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때때로 오히려 절이 속세를 오염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세간의 도덕성 상실이 출세간에서도 명료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불사를 담당하는 스님들은 세간의 안목만큼은 지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만이 오늘날과 같은 무질서한 불사를 막고 우리니라 전통문화의 최후의 보루인 사찰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불사란 총체적인 문제입니다.
아름답고 그윽한 산사山寺의 정취는 무분별한 확장으로 날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법당도 크게, 강당도 현대식 극장처럼 지으니 기존의 건축과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법당들의 배치에는 법도가 있는 법입니다. 절 가까운 곳에 있는 넓은 주차장, 절의 턱밑까지 몰려드는 무질서한 식당들, 사찰 주변 환경은 차츰 유흥장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투어 동양 최대의 불상을 만드느라 주변의 풍광을 무자비하게 해치고 있습니다. 탑이나 석등도 꼭 있어야 할 곳에 자리잡아야 합니다. 그것은 얼굴에 눈이 두 개이고 코가 하나인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고풍어린 탑과 석등이 있는데도 기계로 깎은 기품 없는 탑과 석등들이 서너 개씩 아무데나 줄지어 있는 곳이 많습니다.
부도浮屠만 해도 그렇습니다. 조선
시대 고승들의 부도는 산중 호젓한 곳에 다소곳이 지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중장비로 터를 넓게 닦고 큰 부도와 큰 탑비塔碑에 탑전塔殿까지 갖추니, 절 안에 또 하나의 절이 있는 셈입니다. 그 광경은 적멸의 세계를 무색케 합니다.
한편, 스님들은 불상을 잘 모릅니다. 불화도 잘 모릅니다. 너무 정신적인 것만 추구하다 보니 예술을 등한시 여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스러운 것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은 성스럽습니다.
옛날 천여 년 전에 만들어진 석불사石佛寺(石窟庵)나 불국사, 성덕대왕 신종을 보십시오. 부석사를, 그리고 해인사 장경각을 보십시오. 옛 스님들은 정신도 고매할 뿐만 아니라 안목도 범상치 않았습니다. 옛 스님들은 우리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문호유산을 남겼습니다. 그것은 고매한 정신의 구상화입니다. 요즈음은 그 가치를 잘 이해하지 못하니 보존하기도 어렵고 그러니 계승도 없습니다.
최근에는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전국의 불화들을 모두 촬영하여 40권의 책으로 집대성하여 출간하려는 열의를 가진 스님도 계십니다. 바로 이런 것이 훌륭한 불사입니다. 그러나 그런 스님은 너무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깨치다 또는 눈을 뜨다 라는 말은 정신적인 것만을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사물을 보는 눈이 떠져야 올바른 지혜를 얻는다고 저는 믿습니다. 위대한 스승 석가모니께서는 자연의 관찰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연과 어울린 훌륭한 불교미술은 우리 선인先人들의 고매한 정신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산업사회와 자본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승단마저 대처를 올바르게 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과거의 모든 것도 하루가 다르게 변질시키고 잃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불교를 좋아하고 불교미술을 사랑합니다. 저는 불교를 좋아하기에 오늘날의 불교를 미워합니다. 하루를 자고 나면 변해 버리는 한 나라의 인상印象을 도시에서보다 산곡의 절에서 느낀다면 이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님들께서 합리적인 사고 방식과 높은 안목을 갖추어서 불사를 올바르게 이끄는 수밖에 없습니다. 불사는 우리나라 불교 종단의 총체적인 문제이므로, 먼저 종단이 개혁되어 정화되어야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자력문自力門을 역설하셨습니다. 그러니 이, 삼십 년이 걸리더라도 자력으로 올바른 불사를 일으킬 수 있을 때까지 스님들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종단의 개혁 없이 오늘날의 정신적, 물질적 난맥상으로는 지금 다른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